하기 싫은 일이라도 참고 견디라고 배웠다.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먼 훗날의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켠 꿈꿔왔다. 하고 싶은 일 해도 굶지 않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읽던 중 언뜻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인 고등학교 교사 강교민은 입시에 지친 제자들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해법은 '억대 연봉 대장장이'였다. 입시 성공 후 유수 대학 입학, 취직으로 이어지는 빤한 코스가 아니더라도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는 의미였다. 입시에서 벗어나자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으로만 봤을 때는 전혀 보편적이고 현실적이지 못 했다.
원하던 답이 아니었다. 운이 좋은 소수의 이야기 말고 누구에게나 좀 더 넓고 활짝 열린 길이 있기를 바랐다. 그러던 중, 미국의 사회 운동가 제프 시나버거와 일본 아사히 신문의 기자 곤도 고타로가 쓴 두 권의 책에서 참신한 해법을 찾았다.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의 다른 해법. 그것은 냉장고 파먹기와 벼농사였다.
[해법 1] 욕구를 줄이는 것
소비 대신 냉장고 털어 먹기 <이너프>
<이너프>의 저자, 제프 시나버거는 어느 해 1월, 카드 청구서를 받아들고 기겁한다. 고지서에는 1600달러가 찍혀 있었다. 저렴해서, 친구가 기뻐할 모습에, 독특한 상품이라서 등 다양한 이유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구 사들인 게 화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긁었던 카드는 1600달러가 되어 되돌아 왔다. 1월 생활비 잔고는 0원이었다.
그놈의 카드빚. 태평양 건너 사는 그들에게도 왔다. 굶주림의 공포였다. 더이상 쓸 수 있는 돈이 없었다. 제프 시나버거는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우리 한 달 동안 장보지 말자."
1월 한 달 식비 0원. 아내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당장 갚아야 할 돈이 1600달러다. 더 이상 고집피울 수 없었다. 우유만 빼고 일절 사지 않기로 한다. 냉장고와 찬장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한 달 살아보기로 한다.
제프 부부는 냉동실에서 고기를 발견한다. 냉장실 채소 곁들여 건강식을 만든다. 다음에는 옥수수 머핀이 나오고, 냉동식품 다섯 통도 냉동실 밑바닥에서 찾아냈다. 더 뒤지니 브라우니 두 상자, 케이크 믹스가 나오고, 냉동실을 더 파보니 냉동 빵 여섯 통이 있었다. 통조림 수프를 먹고, 스파게티, 마카로니, 사과주스, 젤리, 라면, 분말주스, 그리고 팬케이크.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먹을 게 나왔다.
1월 동안 '식비 무지출'은 성공했을까? 물론! 심지어 7주나 이어갔다. 그 사이 체중도 3kg 더 늘었다고 하니, 굶으면서 한 건 아닌가 보다. 단지 잊고 살았던 어마어마하게 많은 식재료들을 먹었을 뿐이다.
당장 카드 빚에 쪼들리던 한 사람이 변화할 수 있던 계기는 눈 앞의 냉장고였다. 마트에서 더 많이 사지 않아도, 그의 살림은 책 제목처럼 이미 이너프(enough)! 충분했다. 그동안 돈이 없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그득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가진 게 너무 많았다. 가진 것을 활용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쟁이려고 했던 욕심에, 더 소비하고, 더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는 냉장고 파먹기 이후, 넘치는 자신의 자본을 나누기 시작했다. 잔액이 애매하게 남은 기프트카드를 모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뒷마당을 마을 공동체의 텃밭으로 내놓아 함께 작물을 거뒀다. 자신에게 너무 많아 소화하기 힘들던 강의 자리를 이제 막 강사를 시작하는 이웃에게 양보했다. 광고를 마친 현수막을 모아 그 천으로 가방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에는 난민들이 취직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굶지 않을' 첫 번째 대안은 욕구를 줄이는 것이었다. 부족하지 않았다. 충분했다. 가진 것이 충분히 많다는 것만 깨달아도 소비할 일이 줄었다. 삶의 유지비가 줄어들면, 적은 돈으로도 겁나지 않는다.
만족을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계속해서 더 많이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욕구를 줄이는 것이다.
- <이너프> 중, 제프 시나버거 지음
[해법2]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 찾기
1일 1시간 벼농사 지어 쌀 마련하기, <최소한의 밥벌이>
미국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왕창 사대다가 냉장고 파먹기를 하게 된 사내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더 사연 많은 괴짜가 있다.
아사히 신문에서 30년 넘게 글을 써 온 기자, 곤도 고타로다. 그는 협동 능력 제로의 사나이다. 정해진 주제로 협업해서 글쓰는 일을 못 한다. 결국 쓰고 싶은 글만 쓰느라 승진을 못 했다. 아사히 신문 도쿄 지국 부장들은 모두 그의 후배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본 출판계는 점점 사양 산업이 되어 가고, 아사히 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처리 문건에 대한 대형 오보를 내버린다. 사장이 사퇴하고, 독자들의 실망은 극에 치닫는다. 글쟁이로서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부업을 할 수도 없었다. 일본에는 비합리적인 과잉노동이 흔했다. 적은 돈을 더 벌려면 글 쓸 짬을 모조리 내놓아야 한다. 글은 쓰고 싶고, 글로 밥벌어 먹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진퇴양난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타로씨의 선택은 압권이다. 반 백 년을 도쿄에서 살아온 중년 남성은 나가사키 현으로 벼농사를 지으러 가버렸다. 호기롭게 상황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사회는 바뀔 리 없으니 벗어나면 된다면서 말이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벼농사를 짓는다. 나머지 시간은 글쓰기에 몰두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글쟁이로 사는 것.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이 일에 몰두하려면 최소한의 식량이 필요하다.
벼농사를 지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 흰쌀밥을 이제 내 손으로 마련하겠다. 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생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글쓰기. 그게 바로 얼터너티브 농부다.
- <최소한의 밥벌이> 중, 곤도 고타로 지음
그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자연주의나 유기농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1인분의 쌀만 목적이었다. 벼농사는 어디까지나 대안이었다. 목적은 글쓰기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벼농사인만큼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다.
알로하 셔츠를 입고, 중고 포르쉐 오픈카를 타고, 멕시코 모자를 쓰고 논으로 나간다. 동시에 하루 1시간만 일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1년을 지어보니, 60평 논에 하루 1시간 '씩'이나 들일 필요도 없겠다고 말한다. 1시간도 많았다.
하루 한 시간 벼농사의 결과는? 대풍이었다! 85kg의 흰 쌀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두 번의 태풍을 맞고도 그랬다. "바보가 심고 얼간이가 베도 쌀은 나온다"던 고타로씨의 말은 참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원고 청탁도 더 늘었다. 행복을 찾아나선 사람의 글에는 힘이 있었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일만 했다. 하루하루가 즐거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라 말하는데, 그의 마음이 글에 실리지 않았을 리 없다.
"저는 벼농사 지을 땅이 없어요."
"저는 도시에 살아요."
걱정 마시라. 벼농사는 상징일 뿐이다. 먹고 사는 일에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자립의 은유다. 텃밭 한 뙈기 없는 아파트에서는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자급자족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식당 사장님의 노동력을 돈 주고 사기보다, 집에서 가볍게 요리해 먹기. 튿어진 옷 직접 수선하기. 최신 가전 제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설거지 하고, 빨래를 널고, 바닥을 쓸고 닦기.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원과 산, 들, 바다에서 여가를 즐기기.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모시지 않고, 직접 책 읽고, 한글과 셈을 가르쳐주기.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굶지 않을' 두 번째 대안.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알아채는 거다. 쌀을 상품으로 팔면 헐값이지만, 직접 먹을 쌀이라면 먹거리 자립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집밥과 바느질과 설거지를 상품으로 팔면 헐값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삶의 기본을 꾸리는 일이라면 '자립'이다.
냉장고 파먹기와 벼농사의 닮은 점
냉장고 파먹기와 벼농사는 닮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자립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는 점이 비슷하다. 충분히 많이 가졌음을 알고 돈 주고 바꾸던 일들을 직접 해낸다면 먹고 사는 고민을 덜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풀꽃도 꽃이다>에서 상정한 많이 벌어 많이 쓰는 대장장이의 삶은 이상향일 수 있다. 우리가 줄곧 생각해 온 '행복은 곧 소비'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상식 안에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억대 연봉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너프>와 <최소한의 밥벌이>가 보여주는 덜 쓰는 삶의 모습은 누구나 해 봄 직한 일이다. 진입장벽이 낮다. 행복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여기서 행복한 사람은 자유롭고 안정적인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서 자유롭되, 동시에 적게 소비하고 직접 생산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든다.
우리는 많이 가질수록 좋고, 최신 물건일수록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세계관 속에 살고 있다. 이 보편의 상식은 공장을 바삐 돌아가게 하고 소비를 촉진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 카드 빚에 허덕이고,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 굶어 죽을 각오가 만연한 세계관이라면?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봄직하다.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무시가 답이다. 남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튿어진 옷을 꿰매 입고, 인스턴트 커피 한 잔에 책 한 장 읽는 시간을 즐기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