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입니다. 몇 회에 걸쳐 이 책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편집자말] |
<반일 종족주의>가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 일본어판은 7월 10일 공식 발행된 한국어판보다 넉 달 뒤인 11월 14일 발행됐다. 일본인들이 책도 많이 구입하고 언론보도도 비중 있게 나오고 있다.
한국어판은 공식 발행 1개월 뒤인 8월 10일에 교보문고에서 종합 1위, 다음날인 11일에 예스 24에서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반응이 훨씬 빨랐다. 책이 공식 발행일보다 일찍 시판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일본어판은 발행 당일인 11월 14일부터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 저팬'에서 도서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11월 29일 현재도 여전히 1위다. 사전예약 판매가 활발했던 데다가 대표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언론 인터뷰가 관심을 끈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은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약간 다르다. 주 제목은 똑같이 '반일 종족주의'이지만, 부제목은 한국어판이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인 데 비해 일본어판은 '일·한 위기의 근원'이다. 반일 종족주의로 표현된 한국인의 반일 감정이 한국어판에서는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으로 지칭된 것과 달리, 일본어판에서는 한일관계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된 것이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근본 원인이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에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 부제목이라 할 수 있다.
산케이 칼럼 "<반일 종족주의>에서 한 줄기 광명을 봤다"
한국 언론과 마찬가지로 일본 언론의 반응도 대단한 편이다. 단, 차이가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부정적인 보도가 주류를 이루는 데 반해 일본 언론에서는 그렇지 않다. <반일 종족주의>가 한국 내 반일감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 보도하고 있다. 특히 극우파 언론들은 찬양 일색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 극우 신문인 <산케이신문>에 '가와무라 나오야의 시사론(河村直哉の時事論)'을 연재하는 가와무라는 대표저자인 이영훈 교수에게 대단한 경의를 표시했다. <반일 종족주의>를 읽으면서 "한 줄기 광명을 봤다"고까지 소감을 피력했다. 11월 19일자 기사 '반일종족주의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反日種族主義, 敬意を表した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서두를 시작했다.
"한국 현 정권의 끝없는 반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일한관계에서 한 줄기 광명을 봤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반일 종족주의>에 뒤늦게나마 경의를 표했으면 한다. 자국 내의 비판을 각오하고 사실과 진실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이다."
꽤 긴 장문의 기사를 통해 이영훈 교수를 극찬한 가와무라는 이영훈을 양식 있는 지식인으로 극찬했다. 그런 지식인의 목소리가 한국에서 높아지고 있어 다행이라는 인식을 표시했다.
가와무라는 자신이 그간 '가와무라 나오야의 시사론' 코너에서 강조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필자는 이 코너에서 한국의 양식 있는 보수파가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글을 써왔다"고 말했다. 이영훈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니, 그 같은 소망이 머지않아 이루어지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면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보수든 아니든 간에 한국에서 반일사관(反日史觀)의 재검토가 진전되고 확산을 보이려 하고 있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한관계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이 커다란 단서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한일관계가 회복된다고 하면, 그것은 이영훈과 <반일 종족주의>에 힘입은 결과일 거라는 언급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영훈 류의 인식이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리 없다. 가와무라의 전망은 그런 류의 인식이 한국 여론을 바꾼다는 전제 하에서 한일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일본 극우파의 희망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일본이 바뀌지 않고 한국이 바뀌는 전제로 한일관계가 원상복구되기를 원하는 그들의 인식을 표출하는 기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영훈과 <반일 종족주의>를 직접적으로 칭송하는 것 외에, 이영훈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해주는 방법으로도 일본 극우파는 그와 그의 책에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극우파 잡지인 <보이스(Voice)> 12월호에 실린 이영훈 교수와 홍현 <통일일보> 고문의 대담 기사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통일일보>는 1959년 1월 도쿄에서 <조선신문>이란 이름으로 창간됐으며, 그해 11월 <통일조선신문>으로 개칭됐다가 1973년 9월 <통일일보>로 개칭되면서 주5일 일간으로 발행됐다. 1998년부터는 주간지로 발행되고 있다. 홍현 고문은 1948년 서울에서 출생해 육군사관학교 졸업 뒤 국방부·외교통상부에서 근무했으며 주일한국공사를 역임했다. 퇴직 뒤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이스>는 이영훈-홍현 대담 기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이영훈의 대일 인식을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준거로 치켜세웠다. 이런 기사를 통해 아베 신조 정권의 한국 정책에 정당성을 실어주려 하는 것이다. 대담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보이스> 편집자는 이렇게 썼다.
"문재인 정권의 관제 반일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영훈씨(전 서울대 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의 편저작 <반일 종족주의>. 과거에 집착해서 배상청구를 되풀이하는 정신의 부패는 어째서 끝나지 않는 것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2인이 문제의 근본을 바로잡는다."
<보이스> 편집자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배상 문제를 다 끝났다고 말한 뒤, 배상청구를 하는 한국인들을 겨냥해 '정신의 부패'를 거론했다. 그런 정신 부패의 원인을 이영훈 대담에서 알게 될 거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부패해 있다는 인식은 <보이스> 편집자 같은 일본 극우파한테서만 나온 게 아니다. 이영훈 교수 자신이 그런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 제13장 끝부분에서 그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저열한 정신세계"로 폄하했다. 제23장에서는 "무한히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로 스스로 추락하는 정신세계가 다름 아닌 반일 종족주의"라고 비판했다.
이런 류의 문장은 이 책 공동저자들한테서도 자주 드러난다. 일본을 광풍으로 몰아넣고 있는 혐한(嫌韓)을 정신세계 측면에서 이론적 뒷받침을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혐오하는 이영훈 교수의 인식이 <보이스> 대담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한국인들이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받아내려 하는 것이나 민주화운동가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아내려는 것은 다 똑같이 저급한 물질주의 문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급한 물질주의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몇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예산으로 보상을 받고 나아가 공무원시험의 우대나 각종 특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급한 물질주의도 반일 종족주의의 신학으로 비판하고 싶습니다만, 너무나 커다란 과제입니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특권을 물려주는 것이 허용돼서는 안 됩니다. 청구권 문제 같은 것은 모두 다 양심의 마비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의 배상 청구를 양심의 마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배상금보다 사과가 먼저라며 사과부터 요구하고 있지만, 이영훈 교수는 그들의 진짜 목적이 사과 받는 데 있지 않다고 일본인들한테 귀띔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 학자가 '식민지배 배상 청구는 양심의 마비에서 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니, 안 그래도 배상할 마음이 없는 일본 정부나 기업에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일본 극우파가 이영훈과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을 '양식 있는 한국인'으로 치켜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일본 정부와 극우파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한국인들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