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
2017년 가을의 일이다. 한 온라인 음악 커뮤니티 회원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평소 내가 쓰는 글을 재밌게 읽어주신 분이 넌지시 한 마디 건넸다.
"경화씨, 글 재밌는데 책을 한번 써보는 게 어때?"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해주었을지도 모를 그 말에 가슴이 일렁거렸다.
어릴 때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중학생 때부터 친한 친구 놈들과 모여 가사를 쓰고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나에게는 태어나 처음으로 생긴 무언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이걸 다른 말로 '꿈'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오랜 시간 놓지 않고 살아온 꿈이었다.
스무살 시절엔 무대에도 가끔 오르고, 객원이라는 명분으로 라디오 방송에 나가거나 대학로 코미디쇼의 게스트로 나가기도 했다. 내 목소리가 담긴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도 몇 번 있었지만, 뮤지션으로 데뷔하는 길은 나에게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점차 시간은 흐르고 나이를 먹었다.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놀고먹을 수만은 없는 일. 결국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놓지 못한 나는 직장인 밴드에서 활동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음악 대신 선택한 보통의 삶, 조금 허무했다
직장인. 결혼. 아이 둘 아빠.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은 거대한 현실 앞에 조금씩 덩치를 줄여나갔다. 그렇게 나는 어느샌가 꿈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숨을 쉬고 살아간들 꿈이 없는 사람은 앞이 막막하다. 쳇바퀴 돌듯 변함없는 일상에서 나는 안정이 아닌 무료함을 느꼈다. 사는 게 조금은 허무했다.
무료한 삶을 살며 음악에서 쉽게 멀어질 순 없었다. 하는 음악에서 쓰는 음악의 길을 찾았다. 여러 음악 커뮤니티를 돌며 음악 관련 글을 썼다. 일개 커뮤니티 이용자에 불과했던 나는 한 음악 웹진의 필진으로 참여하며 지면을 할애받기도 했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서 '음악 에세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꿈을 잃어버린 후로 꽤 오랜 시간 음악 글을 써오다가 불현듯 "책을 한번 써봐라" 하는 권유를 듣게 된 것이다. 책... 책... 내가 쓰는 책. 나의 책. 꿈이 사라진 텅 빈 내 마음엔 '책'이라는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아 꾸준히도 파문을 만들어냈다. 나에게는 한동안 잊고 지낸 새로운 꿈이 생긴 것이다. 생애 두 번째 꾸움.
"책을 내고 싶다."
책을 내고 싶은 꿈은 생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몰랐다. 그때부터 관련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때로는 작법서를 읽기도 했고, 또 때로는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 등이 적힌 책을 보기도 했다. 그즈음 인터넷에서 <소년의 레시피>를 쓴 배지영 작가의 출간 후기를 보았다.
'
책으로 나올 확률 1%... 그게 나였다'라는 제목이었다. 아, 이 분도 출판사에 투고해서 출간을 했구나. 그런데 투고로 출간되는 가능성이 겨우 1%인가. 호기심에 열어본 배지영 작가 글의 첫 문장은 이랬다.
'나는 메일함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 첫 문장에 반했다. 배지영 작가의 투고 출간 후기의 첫 문장에는 출간이라는 꿈이 생긴 이후로 내가 느꼈던 희망과 흥분의 순간들이 모두 들어 있는 듯했다. 다음날 바로 배지영 작가가 투고로 출간했다는 <소년의 레시피>를 사서 보았다.
<소년의 레시피>에는 과하지 않은 유머와 가볍지 않은 감동이 묻어났다. 재미와 감동은 내가 글을 쓰면서 항상 추구하는 것들이었다. <소년의 레시피>는 그 모든 것을 갖춘 책이었다. 투고로 출판사에서 책을 내려면 이 정도로 써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배지영 작가의 팬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왔을 때 나는 인터넷에 흩뿌려놓은 조각 글들과 새로운 글을 써서 '음악 에세이' 원고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원고만 있으면 책은 금방 나올 수 있겠지. 세상에 출판사는 많다는데 책 내줄 출판사 한 곳쯤이야 쉽게 만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투고를 시작했다.
원고를 가장 먼저 보낸 곳은 배지영 작가의 <소년의 레시피>를 만든 곳이었다.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곳이라면 분명 투고 원고를 꼼꼼히 읽어줄 것 같았으니까. 나도 배지영 작가처럼 멋진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을까. 일주일 후에 온 출판사 답변 메일에는 출판사의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 반려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배지영 작가 글에서, 투고가 성공할 확률이 1%라고 하더니. 나는 상심하면서도 다른 출판사에 차례대로 글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후에 받은 답변 역시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반려 메일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답변이 없는 출판사도 부지기수였다. 사람은 꿈 때문에 웃으면서 꿈 때문에 운다는 말을 좋아한다. 내게는 딱 그런 상황이었다. 책을 내고 싶은 꿈 앞에서 나는 조금 많이 울었다.
수없이 많은 반려 메일 속에서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 답변도 있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나에게 글쓰기 플랫폼을 알려주며 글을 써볼 것을 권유했다. 글이 괜찮으니 분명 구독자도 생길 테고, 글이 알려지면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거라고 했다.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났을까. 누군가 내 글을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알람이 떴다. 다름 아닌 <소년의 레시피>를 쓴 배지영 작가였다. 와. 맙소사. 내가 좋아하는 필력의 작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니. 작가와 독자 사이였던 우리는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온라인 친구가 되었다.
귀찮을 법도 했을 텐데, 배지영 작가는 내가 붙이는 댓글 하나하나에 답변을 달아주었다. 때로는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고, 때로는 각자 사는 곳의 날씨 이야기를 나누었고, 때로는 출판사 투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군산에 사는 배지영 작가와 서울에 사는 나는 오랜 시간 함께 글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갔다.
시간이 흘러 음악 에세이 투고는 백 곳이 넘어 어느샌가 이백 곳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의 계약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계약을 앞두고 번번이 이런저런 일로 무산이 되었다.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듣고 1년이 지나 새로운 가을이 왔을 때 나는 출간의 꿈이 허물어지는 것만 같았다. 마음 속에서는 두 번째 꿈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깊어질 때쯤 한 출판사 편집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을 앞둔 시간이었다. 그는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작가님 글은 시선이 따뜻하고, 섬세하게 파고드는 게 장점이라고 해주었다. 글의 흐름이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해주었다. 이제 막 시작한 신생 출판사라 현실적으로 계약을 맺기는 어렵지만, 여유가 있다면 같이 하고 싶은 원고라고 해주었다.
글을 쓸 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내 글에 확신을 가지라고 해주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생면부지의 편집자와 퇴근을 앞두고 이십 분을 넘게 통화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했던 나는 새로이 희망을 다지게 된 시간이었다.
낮은 확률을 뚫고서 투고로 소설을 냈다
다음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날 통화에서 편집자가 말해준 내 글의 장점. 따뜻한 시선. 무리 없는 흐름. 문득 음악 에세이 원고는 잠시 묵혀두고 배지영 작가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원고로 녹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지영 작가와 주고받은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따뜻하고 진실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배지영 작가에게 들려주었던 내 꿈 이야기는 정말 간절했으니까. 많이도 간절했으니까. 내 생각을 배지영 작가에게 묻자, 꼭 했으면 좋겠다는 답이 왔다.
소설 <작가님? 작가님!>의 원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자전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소설로 읽히길 바란 서간체의 이야기다. 음악 에세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지난 2019년 11월 1일에 출간되었다. 진실된 마음을 사람들이 알아주어서였을까.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책에 담긴 '작가의 말'에서 나는 미등단 무명 신인 글쟁이라고 썼다. 책을 냈다 하여도 여전히 '작가'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어렵고도 생경하다. 책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제임스 미치너가 쓴 <소설>을 읽었다. 거기에는 투고로 책을 낼 확률로 900건 중 하나. 0.11111%를 얘기한다. 배지영 작가가 말한 1%든, <소설> 속 0.1%든 투고로 책이 나올 확률이 낮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처음으로 준비한 음악 에세이는 여전히 미출간이지만 나는 낮은 확률을 뚫고서 투고로 소설을 냈다. 소설 <작가님? 작가님!>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면 그저 '실패담'이다. 책을 내기 위한 도전과 그에 따른 실패가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패를 함께 아파하고 들어준 배지영 작가님이 있다.
소설 <작가님? 작가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도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어쩌면 99%의 실패를 앞둔 '작가 지망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더 나은 실패를 앞둔 세상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나에게 배지영 작가님이 있었듯이 <작가님? 작가님!>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