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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오마이뉴스 에디터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편집기자의 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뭔가요?"
"판단하는 일이요."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내 본다. 나는 하루 동안 일을 하면서 몇 번을 판단할까. 궁금했지만 세어보지는 않았다. 대신 내 하루 일과를 찬찬히 세세하게 복기해보기로 한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의자에 앉기도 전에 노트북 전원을 켜고, 회사 관리자 창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넣고 로그인을 한다(가끔은 이곳이 진짜 내 일터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러니 재택근무 같은 것도 가능하겠지).

가장 먼저 새로운 쪽지가 왔나 확인한다. 급한 내용과 아닌 내용으로 나눈다. 채택된 기사 수정 요청과 같은 내용들은 바로 처리한다. 안 급한 내용은 업무 틈틈이 할 수 있게 메모해둔다. 

이제 본격 기사검토 모드로 들어갈 시간. 기사 리스트 카테고리에 진입한다. 어제 퇴근하고 오늘 출근하기 전까지 들어온 기사 수가 대강 어림된다. 급하게 검토해야할 기사가 있나부터 본다.

시의성 있는 기사들. 가령, 어젯밤 눈이 많이 왔는데 동네 뒷산 풍경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나, 마침 이름난 산에 갔던 시민기자라면 한라산 눈꽃 같은 기사들이 올라와 있기도 할 거다. 폭설이라면 아침 상황 출근길이 어떻다는 이야기도 있을 거고.

또 계절마다 '어땠다'는 이야기들. 봄에는 꽃이 피었네, 여름에는 어디 계곡, 해수욕장이 좋았네, 가을에는 어느 산사 단풍이 미치도록 고왔네, 겨울이면 겨울왕국이 따로 없네 같은 이야기들. 시의성 있는 기사들은 지체 없이 검토에 들어간다.

그리고나서 확인하는 것이 메인면 상단에 배치된 '톱(오름) 기사' 후보 수(물론 선후가 바뀔 때도 있다). 톱 후보 카테고리에 가서 어제 후보 기사들 가운데 몇 개가 밤 사이 풀렸는지 본다. 밤 사이 혹은 주말 사이 후보 기사들이 다 채택되었으면 자동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후보 기사가 없네, 새로 들어온 기사 가운데 톱 후보감이 있나 빨리 찾아봐야겠다' 다시 기사검토 모드 재장착. 물론 얼마 안 있어 에디터 단톡방에서 '후보 기사가 없습니다, 각 부서에서는 후보 기사들을 적극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메시지가 울려대는 건 안 비밀. 

이때 괜찮은 소재의 기사가 있으면 '아이고 하느님(시민기자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검토한다. 시민기자들이 내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검토중' 표시는 편집기자가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퀴즈. 만약 후보 기사가 많을 때면? 정답 논다?!! 땡이다. 땡땡땡땡! 늘 느끼는 거지만, 남의 돈 벌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급한 기사가 아닌 기사들은 시간 순서대로 검토한다. 시민기자들에게 "내 기사가 왜 아직 미검토냐"는 말이 가능한 나오지 않도록 적절하게 시간을 안배해 가며 검토한다. 검토한 기사들은 메인면(버금이나 으뜸 등)에 적절히 걸기도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당일 오후 8시까지 들어온 기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부 검토해야 퇴근할 수 있었다. 그것도 오후 6시 이후에는 편집기자가 혼자 근무하는데, 기사가 많은 날이면... 저녁도 못 먹고 기사를 봐야했다. 그래야 빨리 집에 가니까. "그때는 정말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탄 기분이었어."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편집기자들에겐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다.

기사로 채택은 못했지만 마음 속에 남은 글
 
 원하던 기사가 시민기자의 스타일대로 딱 맞게 들어올 때, 우리가 예측한 그 가능성 확인될 때 편집기자는 일의 기쁨을 느낀다.
원하던 기사가 시민기자의 스타일대로 딱 맞게 들어올 때, 우리가 예측한 그 가능성 확인될 때 편집기자는 일의 기쁨을 느낀다. ⓒ unsplash
 
지금까지가 채택이 되는 기사들에 대한 브리핑이었다면, 채택이 되지 않는 기사들은 어떨까. 아쉽지만, 편집기자인 나를 포함해 수십 혹은 수백명의 독자들이 보는 데서 그치는 비채택 기사들. 그 중에 지난해 기억나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지나왔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낯선 이국땅에 와서 산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을 텐데
부모 형제 떠나서 고향생각에
밤에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고
용기와 인내로 지금까지 잘 참아왔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지나왔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안 좋은 시선과 편견들
아픔과 슬픔, 그리움과 외로움 다 이겨내고
내색한번 내지 않고 꾹꾹 참아왔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지나왔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 사회에 발을 내 딛었건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배움만이 선택의 길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나는 스스로 칭찬한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는 시민기자의 글이었지만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 알 것 같아서 몇 번을 읽었다. 편집기자는 본인이 채택, 비채택을 판단한 모든 기사에 대해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소견란에 남긴다(시민기자는 취재경위를 쓰고, 편집기자는 소견을 쓴다). 나는 이 기사에 '채택하지 못해서 죄송해요'라고 썼다. 시민기자에게 닿을 수도 없는 말인데... 가끔 이런 글이 있다. 기사는 안 되지만, 편집기자 마음에는 남는 글.

이 글이 이랬으면 좋았을 걸... 왜 이민을 갔는지, 어떤 일을 겪으면서 '밤에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고' 살았는지, 또 그럼에도 '어떻게 혹은 왜,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안 좋은 시선과 편견들 아픔과 슬픔, 그리움과 외로움'을 이겨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썼다면. 독자들이 기자의 상황과 마음을 알 수 있게 썼다면 어땠을까.

그로 인해 '나 스스로 칭찬'할 뿐 아니라, 독자들도 정말 잘 살아냈다고 칭찬할 만한 이야기가 됐으면 어땠을까, 그런 점에서 아쉬웠다. 이 짧은 에세이가 품고 있을 더 깊고, 귀한 이야기들이 궁금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기사로 채택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다시 써주세요, 라고 이야기 하지도 않았다. 그건 내 판단이었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많은 경험상, 기사로 채택하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그 부분을 보강해서 다시 써달라고 했다치자. 다시 몇 시간을 공들여 쓴다고 해서 그 글이 완전 100% 바뀌어 오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러니 당연히 수정한 글이 100% 채택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이때, 기사가 채택되지 못한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다. 시민기자의 책임일 때도 있고, 편집기자의 책임일 때도 있다. 책임 여부를 떠나 분명한 건, 양쪽 모두 난감하고 때로는 불편한 관계가 된다는 거다. 편집기자 일이 힘든 이유 중의 하나다.

그래서 편집기자가 먼저 시민기자에게 비채택 사유를 말해주는 경우는 드물다(물론 '먼저 이야기 하길 잘했어!' 싶은 결과가 도출될 때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는 게 슬픈 현실). 시민기자가 요청하면 비채택 이유를 말해주는 기사클리닉이란 제도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원래의 의도대로, 목적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사람은 대부분 실패나 거절을 두려워한다. 안 좋은 경험은 두 번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당장 기분이 나쁘니까. 서운하니까. 물론 실패와 좌절을 좋은 경험으로 삼고 서로 미안해 함과 동시에 고마워하며 끝났다면 계속 시도하고 일을 벌일 거다. 실제 그렇게 일을 하고 있지만, 100% 그렇게 일이 술술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편집기자 역시 일의 효율성이라는 걸 안 따질 수 없다. 정해진 인력과 시간 안에서 기사 검토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 기획도 해야 하고, 시민기자도 만나야 한다. 기자게시판 관리도 해야 하고, 회사 메일도 돌아가며 체크하고, 각종 민원, 명함 신청과 제작 주문, 연재기사 관리, SNS 게시 등도 처리해야 한다. 달마다 이달의 새뉴스게릴라, 이달의 뉴스게릴라 후보를 추리고 심사도 해야 한다(써놓고 보니, 정말 할 일이 많다).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또 한번에 처리되는 기사도 있지만, 데스크를 거치는 동안 두 번 세 번 검토해서 보완이 끝난 뒤에 처리되는 기사들도 있다.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내 일로 남아 있는 거다. 넘치는 의욕만으로는 일이 항상 잘 되지는 않는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런 불확실성을 늘 염두에 두고 매 순간 판단하는 일이 편집기자 일이다. 내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그래도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는 없다. 기본 업무를 충실히 하는 것도,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일도 편집기자에게는 모두 다 중요한 일이니까. 시민기자들에게 이런 기사도 저런 기사도 써보라고 제안하는 청탁이 계속 되는 이유다.

원하던 기사가 시민기자의 스타일대로 딱 맞게 들어올 때, 우리가 예측한 그 가능성이 확인될 때 편집기자는 일의 기쁨을 느낀다. '이 맛에 편집기자 일 하는 거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일은 시민기자의 질적 성장과 동시에 편집기자가 자기 색깔(콘텐츠)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말을 하려고 쓴 글은 아닌데요, 2020년에도 기획과 청탁 업무는 계속 될 테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편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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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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