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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구 구암동의 창리어린이공원. 텅빈 놀이기구가 쓸쓸하다.
유성구 구암동의 창리어린이공원. 텅빈 놀이기구가 쓸쓸하다. ⓒ 한미숙

동네마을버스가 오가는 길목 경로당의 들마루가 썰렁하다. 3월 이맘때면 동네 고등학교 학생들 등교로 북적거릴 골목도 한산하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태우던 노란차도 보이지 않는다.

옥상에 빨래를 널면서 확 트인 공간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맙다. 빌라가 모인 동네, 옆 빌라 옥상에 다섯 개 마스크가 널려 있다. 면 마스크일까 싶었는데 가운데 각이 나 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웃빌라 옥상 빨래줄에 걸린 마스크
이웃빌라 옥상 빨래줄에 걸린 마스크 ⓒ 한미숙
 
    다섯개의 마스크가 빨랫줄에 걸렸다.
다섯개의 마스크가 빨랫줄에 걸렸다. ⓒ 한미숙
 
집 밖엔 마스크맨들이 수두룩하다. 오랜만에 친근하게 지내는 이웃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안아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스크를 쓴 할머니도 나도 서로 눈을 바라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가 빠져 합죽한 할머니가 활짝 웃었다. 할머니는 다행히 건강해 보였다.

"애들이 꼼짝 말구 집에 있어야 된댜~. 며칠 들어앉아 있다가 갑갑해서 나왔어. 날씨가 따땄한 게 좋긴 헌데 코로나 땜에 걱정이여. 지금은 경로당에두 못 가. 그냥 여기 슬슬 걷다가 또 들어 가야혀."

할머니 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내가 속한 소모임이나 자원봉사활동은 아예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자치위원으로 활동하지만 3월 마을 주민자치회 회의도 잠정 연기됐다. 교회예배는 2주 전부터 가정예배로 대체하고 단톡방을 통해 교우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다.

공공도서관과 동네 작은도서관도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휴관이다. 덕분에 빌려온 책을 느긋하게 읽고 있다. 지난 분기에 놓쳤던 평생교육센터 프로그램 신청을 하려고 하니 센터운영이 중단되었단다. 2분기 접수도 잠정 연기되었다. 
 
    구암역에서 반석역으로 가는 전철역. 아무도 없었던 전철역
구암역에서 반석역으로 가는 전철역. 아무도 없었던 전철역 ⓒ 한미숙
 
오일장이 서는 9일 이날도 휴장이 아니라면 도로에서부터 사과나 귤 등을 쌓아놓고 팔거나 봄꽃 화분들이 진을 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텐데 휑하다.

치매센터(센터)에서 보호자로 만나 '헤아림교육(치매 보호자들이 받는 교육)'을 받을 때 알게 된 언니가 있다. 언니의 75살 남편은 현재 치매 4등급이다. 두 부부는 센터에서 일주일에 세 번 각 2시간 30분 동안 진행하는 또 다른 관련 프로그램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센터에 오는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와서라도 하고 가면 그래도 나아. 여기 오려고 아침에 씻고 밥 먹고 움직이잖아. 와서 사람들 하구 노래도 부르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차도 한 잔씩 마시는 거, 그 시간이 나도 즐거워. 이거 아주 작은 거 같아도 우리한텐 작지 않아. 저 양반 집에 있으면 잠만 자거든."

코로나19로 치매센터에 갈 수 없는 요즘, 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부를 묻는 내 말에 언니는, 요즘 코로나19가 시끄러워도 햇살이 좋으면 마스크를 챙겨 쓰고 남편과 둘이 갑천변을 걷는단다.

언니의 남편은 꽤 안정적으로 돌봄을 받고 있는 편이지만, 독거 노인들의 경우 지금 상황에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복지관에서 아쿠아 운동을 하는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대부분 관절염이나 파킨슨 등의 병으로 물에서 운동을 해야만 했던 분들인데 지금은 코로나19로 복지관 수영장도 문을 닫은 상태니 말이다.

길에 걸린 펼침막에는 보건소 일반진료와 민원사무가 잠정 중단됐다는 글도 보인다. 궁금한 마음에 유성구 치매안심센터 어르신프로그램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해 봤다.

"지금 치매 관련해서는 조호물품(어르신들에게 지급되는 기저귀, 방수용매트, 미끄럼방지양말, 소화제, 비타민제 등)만 지급되고 있어요. 전 직원이 코로나19 민원업무에 집중하느라 '본업'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죠. 이게 갑자기 터진 일이라 프로그램은 시작 자체를 못하고 있어요. 기다렸던 가족분들은 대체로 이해해주세요. 전화로 안부를 묻다가 필요하면 직접 직원들이 찾아가 사례 관리를 하고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없는 코로나19가 우리 주변의 풍경을 확 바꿔 놓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식도 바꿔놓았다. 친밀함을 나누던 악수가 '악수'(惡手)가 되기도 한다. 서로를 보듬는 스킨십이 서로에게 해독이 될 수 있음을 환기시켜준다. 코로나19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전혀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마스크#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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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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