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통해 끝없이 길게 늘어선 마스크 구매 행렬을 봤지만 그 긴 줄에 합류할 자신도 없었고 할 필요도 못 느꼈다. 그러나 예상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갖고 있던 마스크가 바닥을 보이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3월 2일 월요일] 약국 구매 실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체국이나 농협 하나로마트보다 구매가 수월해 보인 약국에 들렀다. 역시나 마스크 판매대는 텅텅 비어 있었다.
[3월 3일 화요일]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일까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하지만, 동네 약국은 이미 공적 마스크 200여 장이 다 팔린 후였다. 다음으로 찾은 농협 하나로마트는 오후 2시부터 판매를 시작한단다. 5시간 이상의 대기 시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인근 농협 하나로마트로 차를 돌렸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대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차 한 잔을 하며 무심히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 다시 농협 하나로마트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이 안 보인다. 오히려 불안했다. 판매원에게 번호표 배부 시간을 물었다.
"번호표 배부는 끝났는데..."
어쩔 도리 없이 자리를 떠나와야 했다. 등 뒤에서 마스크를 사러 왔다 허탕 친 손님들의 원성이 들려왔다.
오늘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 싶어 다른 판매처를 찾아갔다. 번호표를 기다리는 줄이 보였다.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80명 정도는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긴 줄 끝에 서며 순번을 세고 또 세었다. 아,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줄 선 사람들끼리 마스크 구매의 애로를 토로하다 보니 번호표 배부를 시작한다는 마트 직원의 멘트가 들렸다. 예상대로 80명에게 번호표가 나누어졌다. 귀하디 귀한 번호표를 드디어 손에 넣었다. 만일에 대비해 사진을 찍어 놓고, 행여 잃어버릴라 힘껏 움켜쥐었다.
줄이 줄어들자 이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설레기 시작했다. 먼저 매장 안으로 들어갔던 앞번호의 구매자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주위 요청으로 3매가 든 마스크를 내밀어 보였다. 마스크 구경 처음 하는 것처럼 다들 신기해 했다.
드디어 나도 3매에 2780원인 공적 마스크를 손에 넣었다. 어렵게 구한 데다 약국보다 저렴하게 마스크를 구매해서 당당히 귀갓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귀갓길에 다른 약국보다 배송 시간이 늦은 곳에서 마지막 남았다는 5매짜리 마스크를 추가로 구매할 수 있었다.
전리품처럼 손에 쥔 마스크 때문에 모르고 있었는데,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하니 온몸이 쑤셔댔다. 그리고 하루를 곰곰이 되돌아보니 허탈하기만 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일까.
[3월 4일 수요일]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서둘렀다. 멀리까지 마스크 원정은 도저히 못 나갈 것 같아서였다. 약국 문도 안 열린 이른 시각이었지만 이미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약국에서 순서대로 이름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입고될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한 대기 명단이었다. 약사는 하루 20명까지는 마스크 수령이 확실하지만, 당일 마스크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며 출발 전에 반드시 전화 문의를 꼭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약국의 현명한 대처로 하염없이 대기하지 않아도 된 날이다. 크게 이문이 남는 일이 아닌데도 본업에 지장을 받아 가며 격무에 시달리는 약국을 보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3월 5일 목요일] 줄만 보면 괜히 서보고 싶은 마음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 20분에 맞춰 약국으로 향했다. 전날 18번째로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기에 신분증을 들고 마스크를 사러 나선 것이다.
5매가 든 마스크를 사 들고 나오며 다시 명단에 이름을 올려주소 하니 내일부터 정책이 바뀌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공적 마스크는 판매 이력 시스템을 이용해 일주일에 1인당 2매로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관련기사 :
마스크 일주일에 1인 2매 제한, 출생연도 5부제 구매 시행).
돌아오는 길, 멀리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 줄지어 앉아 있는 분들이 보였다. 마스크 구매를 위해 선 줄이 그리 길지 않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뿔싸! 그러나 이날부터 이곳도 오전에 번호표를 배부하고 오후에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단다. 매장 앞에 계신 분들은 전부 오전에 번호표를 받으신 분들이었다. 판매처마다 판매 시각과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러웠다.
[3월 6일 금요일] 줄 그만 서자고 다짐했건만...
오전 11시, 잠시 짬을 내 농협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길게 선 번호표 대기자 수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 나오려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긴 줄 꽁무니에 서 있어 봤다. 이날은 1인 1매씩 판매돼 100명에게 마스크 판매를 할 수 있단다.
주초만 해도 마스크 행렬에 합류하지 말자 작심했건만, 막상 현장에서 마스크 대란 사태를 직접 겪게 되자 조바심은 더욱 커졌다. 전날 뉴스에서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본 게 기억났다. 결국 불안감 때문에 줄을 서고 말았다.
마침 공주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시간을 보낼 겸 공주산성시장으로 가보았다. 공주산성시장상인회에서 내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3월 6일부터 공주산성시장 오일장을 잠정 폐쇄합니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서인지 일찌감치 다른 오일장들이 폐쇄된 것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공주 오일장도 결국은 잠정 폐쇄에 들어갔다.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한 상인들과 허락을 받은 지역 상인 몇몇만이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전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지만, 계절이 바뀔 때면 제일 먼저 색다른 먹거리와 볼거리를 선보여 많은 사람이 찾던 곳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역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걸 실감한다.
오후 2시, 다시 농협 하나로마트로 향했다. 직원은 빠른 판매를 위해 지역 화폐나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준비해 달라고 안내했다. 곧바로 번호와 상관없이 줄 선 대기자들에게 마스크가 1매씩 판매되기 시작됐다. "이거 한 장 받고 가네." 할머님 한 분이 허탈한 듯 마스크 한 장을 내어 보이셨다.
'마스크 원정'을 멈추기로 한 이유
그날 밤, 다음 주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다는 소식을 접하며, 앞으로 다시는 약국 이외에서 마스크를 구하려고 줄 서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변경된 마스크 판매 방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나보다 더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느껴서였다.
방송 뉴스를 보면 쪽잠을 자며 코로나19와 사투 중인 의료진들의 얼굴마다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방역 고글과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그들의 얼굴 앞에서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불평도 늘어놓을 수 없었다. 조심하며 개인 수칙을 잘 지키면 날마다 KF94 마스크를 바꿔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지자체마다 방역과 검진에 힘쓰고 있다. 영업이 안 돼 문을 닫은 식당 사장님은 의료진들을 위해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찬 바닥에서 식사하는 소방공무원들에게 카라반(이동식 주택)을 제공한 업체 대표님도 있다. 지인 한 명은 SNS에 '마스크 5부제가 시행돼도 자신은 한 달간 마스크 구매를 하지 않겠노라'고 글을 올렸다. '나도 그러마' 하고 댓글을 단 이들이 많다.
어려운 시국에도 나만 살겠다고 생활용품을 사재기하며 다투지 않는 사람들. 나가지 않게 되니 쓸데없는 지출이 줄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나는 이들에게서 또 한 번 배운다.
3월 9일(월), 마스크 5부제가 본격 시행됐다.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고 마스크를 제때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불평으로 해결되지 않을 사안임을 알기에,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면 아이디어 공유 차원에서 민원을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마스크 구매 사정에 어두운 분들과 정보를 나누고, 여분의 마스크를 가진 분들과 마스크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드리려 한다. 그러고도 여력이 생기면 적은 금액이나마 기부 활동에도 동참할 생각이다.
마스크 구매는 타인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애써 방패 삼으며, 일주일간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소시민의 뒤늦은 반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