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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밥돌밥'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한다는 뜻이다. 지역 사회를 벗어날 수도 없다. 쇼핑몰에서 외식하고 쇼핑하고 영화 한 편 보며 한나절 때웠던 주말을 되찾기 어려워졌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관통 중이기 때문이다.

'돌밥돌밥'에 돌아버리겠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지언정, 별 도리가 없다. 어쩌겠는가. 남이 차려준 밥보다 돌밥이 안전하다. 순대국밥 먹는 내가 감염자인지, 아니면 이제 막 옆 테이블에 앉아 순대국밥 시키는 저 손님이 감염자인지, 모르는 일이다. 밖에서 밥 한 끼 사먹는 일이 뭐 대수라고! 식당에서는 밥을 앞에 두고 조마조마하다.

별 것 아닌 일상마저 살얼음판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나를 보며 '토퉁한(소중한) 우리 엄마'라고 말하는 둘째가 예뻐 뽀뽀했다가, '혹시 내가 감염자면 어떡하지?' 하며 후회한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던데, 2주에 한 번 찾아오는 주기적인 편두통에 열은 없고 호흡기 증상도 없다.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회적 거리두기 = 최소한의 소비
 
 치킨을 참고 두부조림과 고등어 구이 먹는게 절약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치킨을 참고 두부조림과 고등어 구이 먹는게 절약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 최다혜
  
 돈 없이는 쉼 조차 무능한 스스로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는 자연으로 나갔다. 코로나 이전부터도.
돈 없이는 쉼 조차 무능한 스스로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는 자연으로 나갔다. 코로나 이전부터도. ⓒ 최다혜
 
코로나 이후의 시대, 모든 게 고민거리다. 하지만 내가 자신있게 가장 잘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왜냐하면 나는 4년 전부터 절약을 위한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 중이기 때문이다. 돈 쓸 일은 주로 '다중밀집시설'에서 이뤄지고, 돈 덜 쓸 일은 자연에서 일어난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집에서 밥을 먹고, 인적 드문 넓은 공원에서 주말을 보낸다.

4인 가족 우리집 예산은 식비 하루 15000원, 기타 생활비(의류, 의료, 여가, 유류, 교통, 생활잡화)도 하루 15000원이다. 외식보다 집밥을 해먹었다. 냉장고 속 재료를 다 쓰기 전에는 마트에 안 갔다. 치킨이 먹고 싶어도, 냉장고에 두툼한 돼지 앞다리살이 있으면 된장을 풀어 마늘 넣고 수육을 삶았다. 하루 세 끼 먹을 거 두 끼 먹는 일도 아니고, 밥에 쌈장만 비벼 먹어야 하는 극단적 절약도 아니다. 고작 외식 대신 수육을 먹는 게 절약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여가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도 우리 가족은 산책하며 쉬었다. 키즈카페나 대형 쇼핑몰 쇼핑이 재밌다는 걸 알면서도 강변을 걸었다. 처음에는 절약하느라 동물농장 입장료를 아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돈 덜 쓰는 여가가 재밌지만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우리가 돈 없이는 즐거움조차 느낄 수도 없는 건가 하며 놀랐다. 돈으로만 이어가는 즐거움은 외부 상황에 따라 쉽게 위태로워졌다.

돈이 없으면 쉴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가진 후, 검소한 생활을 훈련했다. 억지로 산책한 게 아니었다. 몸에 밴 소비 의존적 여가를 고치고 싶었다. 잘못들인 습관을 고치려면 공들여 연습해야 했다.

처음에는 절약이 어려웠다. 동물농장 먹이주기 체험 대신 아이 손 잡고 들꽃을 찾아 걸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품이 주는 기쁨 말고도, 자연과 친구, 가족이 주는 행복이 크다는 걸 깨달아 갔다.

이젠 단순한 생활이 좋아 단순하게 산다. 상품에 가까운 여가 생활도 종종 즐기기는 하지만, 여가가 상품이어야'만' 한다는 오해는 사라졌다. 화려한 여가가 아니어도, 다양한 방법으로 쉴 수 있다. 되레, 갖가지 복잡한 규칙이나 도구를 멀리할수록, 더 자주, 더 소박한 곳에서 행복해진다.

집밥과 공원 산책만큼은 자신 있었다
   
정부는 친절하게 '거리 두라' 말했고, 우리집 네 식구는 우아하게 '사지 않는 일'을 계속했다. 괜찮았다. 단순한 삶은 강하다. 자연과 책, 사람, 차 한 잔, 맛있는 음식에서 즐거울 줄 알면, 어지간한 상황에서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돈이 많이 드는 복잡한 삶이 더욱 연약할 때가 많다. 돈이 없으면, 혹은 '코로나 사태'처럼 다중이용시설으로 갈 수조차 없어지면, 여가를 잃어버린다.

위기의 강도가 세질수록 절약하며 소박하게 사는 삶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신종 감염병 유행을 겪어내고 있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또다시 소박한 삶이다. 호화로운 사치품이나 넓은 집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살아있고 일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며 남는 돈을 저축했다. 풍요로울 때 곳간을 비축해놓아야, 어려운 시기 동안 힘내서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개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이다. 약 4년의 절약 생활 동안, 봉투에 만 원씩 꽂아 쓰면서도, '무지출 데이'를 작정하고 실천했을 때에도, '이게 잘 하고 있는 건가?' 궁금했다.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서 생존을 걱정하다니. 이렇게 아껴 모아서, 과연 죽기 전까지 다 쓰고 죽을 수는 있는 건지. 오늘 소비할 수 있는 즐거움을 쓸데없이 내일로 미뤘던 건 아닌지. 일어나지도 않은 언젠가의 어려움을 앞서 걱정해, 인생의 즐거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던 건 아닌지.

고민은 짧게 했다. 풍요로울 때 곳간을 채우길 잘했다.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만 소비했다. 그리고 적금을 들어 미래를,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두려운 일들(경제공황, 휴직, 실업, 재난)을 준비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놀았다. 입장료 없는 절간의 숲길에서, 직접 해 먹는 하루 세끼마다 돌아오는 밥들 속에서 만끽했다.

다 같이 사지 않는 삶, 괜찮은 걸까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외식을 꺼리자 2월 22일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 상점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외식을 꺼리자 2월 22일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 상점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때로는 소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행정당국이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이들이다.

절약의 역설이 시작됐다. 절약은 개인을 풍요롭게 하지만, 사회 전체의 부를 줄인다. 원리는 단순하다. 나의 소비는 누군가 소득이 된다는 점이다. 내가 돈을 쓰면 쓸수록 누군가의 곳간이 넉넉해진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비가 나의 소득이 된다. 코로나19에 따른 소비 감소는 절약이 모두에게 좋지만은 않다는 걸 증명했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비단 사망자와 위중환자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다 같이 사지 않는 삶, 아니 살 수 없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모두 집밥을 먹고, 여행을 취소했다. 아이들은 키즈카페에 갈 수 없게 됐다. 지출이 끊긴 만큼 누군가는 수입이 끊겼고, 일자리를 잃었고, 가게를 닫았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전례 없는 경제 위기가 전망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위축된 지역경제 살리자'며 아동수당을 지급받는 가정에 아이 한 명 당 아동돌봄쿠폰 40만 원을 지원했다. 우리 부부 사이에는 애가 둘이다. 우리는 80만 원이란, 한 달 생활비에 맞먹는 돈을 받았다. 지역의 이웃들을 살리기 위해 써달라는 뜻의 지원금이었다.

아동돌봄쿠폰에 이어 긴급재난지원금이 날아들었다. 나를 포함한 교사들은 상반기 내에 복지포인트를 모두 소비하라는 권고 공문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돈 쓰는 게 서로를 돕는 일이란 신호탄이었다. 최근 뉴스 인터뷰를 보면 소상공인들이 '장사가 조금씩 잘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온 마음으로 기쁘다. 이웃의 살림이 펴서 안심이 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동안 빨래 건조기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물건을 사기보다 내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빨래 건조기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폐기하는 데 들어갈 쓰레기, 그리고 건조기가 뿜어댈 탄소배출물까지 걱정됐다.

하지만 빨래 건조기를 만드는 회사가 내는 각종 세금 덕분에 아이들은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는다. 실업자들은 수당을 받아 재기의 기회를 얻고, 어르신들은 노령연금으로 월세를 내신다. 소비는 단순히 집 앞 마트 사장님의 소득일 뿐 아니라, 더 크게는 취약층을 위한 복지로도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함부로 절약을 노래할 용기가 안 났다. 연재 중인 '최소한의 소비' 또한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의 소비, 그리고 사회적인 소비
     
그렇다고 무조건 '가진 돈을 다 쓰자'고 말할 수도 없다. 적금 붓는 사람은 미래를 꿈꾸는 중이다. 지금 당장 돈을 써버리면 오늘만 살자는 태도지만, 만 원을 저축하면 그 돈은 100살 호호 할머니가 되어 책 읽으며 차 마실 시간을 위한, 책 값과 차 값이다. 

적당한 절약은 공익적 가치도 있다. 검소한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면, 그 자체로 숨막히는 '소비지상주의' '체면문화'를 느슨하게 해주기도 한다. 비싼 옷을 걸치지 않아도 멋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증명해내기 때문이다.

또한 절약가들은 경제 위기가 와도 당장은 믿을 구석이 있다. 모아둔 돈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기적으로 꾸준한 소비자다. 소수의 부자 다음으로 내수경제를 길게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다수의 절약가다. 필요한 데 필요한 만큼 돈을 쓸 수 있다.

오랜만에 '냉장고 지도'를 붙였다. 빈 종이 위에 냉장고와 찬장의 식재료들을 모두 적었다. 그리고 그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요리 메뉴들을 추려봤다. 요즘 식비에 돈을 많이 써서 몹시 침울했는데, '냉장고 파먹기'로 돌파구를 찾은 기분이다.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 

다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좀 다르다. 소중하게 가꿔온 '최소한의 소비' 원칙을 잘 지키되, 정부와 지자체 등의 지원금을 토대로 우리 지역을 위한 '사회적인 소비'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싶다. 

토요일 점심, 남은 두부로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네 식구 다 같이 동네 책방으로 걸었다. 책방지기가 새로 개발한 딸기 라테 두 잔과 에그 타르트 두 개, 어른이 마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아이들이 읽을 책 한 권과 남편과 내 책도 한 권씩 샀다.

집에서 원두를 직접 갈아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실 수도 있고,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된 가격에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소비는 단순한 낭비나 손해가 아님을, 코로나 시대에 동네 책방을 소중히 지키는 길임을, 이제는 알게 됐다.
   
 2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못골종합시장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2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못골종합시장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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