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맞벌이 부부이자 주말 부부였다. 지난 2년간 남편은 집이 있는 대구와 직장이 있는 다른 도시를 오가며 지냈다. 사택 생활을 한 남편은 금요일 저녁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 주말을 오롯이 우리와 함께 보낸 뒤 월요일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
6살 딸아이를 너무도 사랑하는 남편은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주중에도 가끔 우리를 보러 왔다. 남편은 떠나기 전날 밤이면 늘 "아빠가 이번에는 세 밤 자고 올게, 다섯 밤 자고 올게" 하고 약속하곤 했다.
그러던 남편은 올 2월 중순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3월 중순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 출근까지 여유가 생긴 남편은 가족과 함께 대구에서 지내기로 했다.
함께 먹고 자고 눈 뜨고... 열흘간의 행복한 시간
2월 18일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연일 대구경북에서만 확진자가 수백 명씩 쏟아져 나왔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바로 다음 날 서둘러 종업식을 했다.
우리 가족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친정 부모님 댁만 왕래하며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지내게 됐다. 걸어서 2분 거리인 옆 동이지만 부모님 댁에 갈 때도 장갑과 마스크는 필수가 됐다. 아이에게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기대지 마라, 하고 잔소리를 했다. 옷은 빨래 건조기에 넣고 돌릴 수 있는 것들로만 입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면 바로 장갑과 겉옷은 건조기에서 고온으로 20분 정도 돌렸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지만,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우리 나름의 장치였다.
아이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매우 정확하게 구사하게 됐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미세먼지가 어떻게 다르냐면..." 하며 어린이집에서 배웠던 내용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어린이집 선생님 놀이는 긴 시간 집에서 지내며 하는 놀이 중 하나가 됐다. 아이가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속상하기는 하지만, 뭐 어쩌랴. 이제는 아는 것이 힘인 것을.
바깥 외출은 아이를 맡기고 다녀온 집 앞 슈퍼, 그리고 너무 답답해서 차를 타고 팔공산 드라이브를 다녀온 게 전부였다. 팔공산에 가서도 내리기가 무서워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워 두고 차창을 통해 시원한 공기를 마실 뿐이었다.
'주말가족'으로 지내던 우리는 그렇게 오랜만에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떨어지지 않고 함께 생활했다. 삼시 세끼 집밥을 해 먹으며, 부모님 댁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매일 오롯이 우리 세 식구, 그리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자발적 자가격리를 실천하며 꼭 달라붙어 있었다.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3월 1일, 남편은 다시 떠났다. 이직한 곳 역시 대구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다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첫 출근일은 3월 16일이었지만 남편은 일을 시작하기 전 그곳에서 자발적으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하고자 일찍 짐을 꾸려 출발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지금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서로의 안전과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남편은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그곳에서 이동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떠날 때도 아이에게 예전처럼 '몇 밤 자고 올게'라고 약속하지 못한 채 기약 없이 현관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때 주말가족이었던 우리는 이제 그마저도 이룰 수 없는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다.
나는 아이와 함께 아예 친정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재택근무를 한다.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거의 매일 영상 통화를 건다. 그것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밤에 자려고 누우면 "엄마, 아빠는 몇 밤 자면 와?" 하고 묻는다. 그러고는 금세 "아, 코로나바이러스가 다 없어져야 올 수 있지"라며 자문자답을 한다.
잠들기 전 아이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으며 말한다.
"엄마, 코로나바이러스가 빨리 다 없어져서 아빠가 집에 오게 해 달라고 우리 기도할까?"
어느 날은 내 목을 말없이 끌어안더니 "엄마랑 아빠랑 우리 가족 모두 예전처럼 같이 살면 좋겠다"라고 털어놨다.
얼마 전 한 책방에서 진행하는 블로그 이벤트를 남편에게 알려줬다. 대구경북 지역의 지인·친척·가족에게 그림책을 선물로 보내는 이벤트였다(그림책도, 배송비도, 손글씨로 쓴 엽서까지 모두 책방에서 부담해주셨다).
남편은 곧바로 신청했고, 적절하게도 <사랑해, 아빠>라는 책을 선물로 받게 됐다. 아기 펭귄이 어른이 되고 또 다시 아빠 펭귄이 될 때까지를 예쁜 그림과 글로 풀어낸,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책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요즘, 이런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작은 일들에서 커다란 위안을 얻는다.
3월 27일 현재, 대구경북의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여전히 다른 지역에 비하면 조금 더 많은 숫자다. 언제쯤 남편이 다시 대구로 돌아올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전 세계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걸 보면 아직은 더 조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이 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기란 늘 어렵다. 아이는 아빠를 만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루빨리 아이의 기도가 이뤄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