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의미를 확립한 1960년 4월 혁명이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전염병, 선거 등 굵직한 현안들에 밀려 기념 분위기가 잔잔하기는 하지만, 민주라는 말과 그 뜻이 지금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게 된 데에는 60년 전 혁명의 희생과 성과 덕이 크다. 그 4월 혁명 60주년을 기념하는 작업으로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는 1960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만들어진 혁명 관련 대중가요와 관련 자료를 한데 모은 음반을 제작했다.
<혁명의 기록, 4월의 노래> 음반에는 노래 열두 곡과 음성 자료 두 건이 수록되었다. 혁명의 희생을 기리고 성과를 찬양하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남은 이들의 아픔과 다짐을 담은 곡도 있다. 직설적이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혁명을 초래한 부정과 부패를 꼬집은 작품도 아울러 수록되었다. 4월 혁명의 상징적 희생자 김주열의 어머니인 권찬주의 인터뷰, 그리고 혁명으로 쫓겨난 권력자 이승만의 성명이 노래들 사이에 음성 자료로 함께 실렸다.
1960년 3월부터 4월까지 혁명이 진행되었던 때에는 사실 이번 음반 수록 곡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함성과 피가 가득했던 당시 거리에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 여유는 없었기에, 적당히 분위기가 맞고 여러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곡이 선택되어 불렸다. 당시 시위 현장의 노래로 기록에 전하는 것은 <애국가>, <독립 행진곡(일명 해방가)>, <전우야 잘 자라>, <6·25의 노래>, <학도호국대의 노래> 등이 있다. 사실상 정권 유지를 위해 동원되었던 관변단체 학도호국대의 노래가 정권을 뒤엎는 혁명 대열에서 불렸던 것만 보아도 당시 상황의 급박함이 충분히 짐작된다.
대중가요 중에는 1959년에 발표된 영화 주제가 <유정 천리>가 시위 군중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혁명과 아무 관련 없이 만들어진 노래가 그렇게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민중에 의한 개사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원래 가사 '유정 천리 꽃이 피네 무정 천리 눈이 오네' 대신 분노한 민중이 거리에서 불렀던 것은 '자유당엔 꽃이 피네 민주당엔 비가 오네'였다. 혁명 전야였던 1960년 2월 하순 무렵 대구 지역 학생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가사로 알려져 있다.
대중가요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혁명 관련 노래를 만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때는 이승만이 망명하고 새 헌법이 만들어져 혁명이 성공했음을 실감케 된 1960년 여름 이후부터였다. 눈치 보기나 무임승차를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자본이나 권력이 정해 놓은 경계를 쉽게 넘지 못하는 것이 대중문화의 태생적 한계임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사월의 깃발>, <어머니는 안 울련다>, <4·19 행진곡> 등이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0년 6월 무렵 발표된 것으로 확인되는 곡들이다.
혁명 열기에 동참하고자 했던 대중가요계의 움직임은 작품 발표를 넘어 새로운 가사 공모와 발표 공연으로도 이어졌다. 작곡가 김교성, 가수 남인수와 현인 등을 중심으로 7월에 '4·19혁명의 노래 전국 보급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8월에는 실제 작품을 발표하는 공연도 개최되었다. 다만 당시 가작으로 선정된 <분노의 양들> 등 노랫말이 어떻게 노래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아, 이번 음반에서도 관련 자료를 수록하지는 못했다.
4월 혁명 관련 대중가요는 1960년을 지나 혁명 1주기를 앞둔 1961년 봄까지도 여러 작품이 계속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이번 음반에 다 수록하지는 못했지만, 관련 작품은 최소한 스무 곡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혁명의 성과가 온전히 이어졌다면 그런 노래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자료도 오늘날 더 많이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1961년 5월에 일어난 군사정변은 혁명의 의미를 비틀고 깎아내렸다.
군인이 국권을 탈취해 헌정을 중단시켜 버린 군사정변으로 인해 혁명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도 조용히 사라지거나 왜곡되었다. 일례로, 원래 시위 군중의 함성 소리와 <애국가>를 차용한 간주 등이 있었던 김주열 추모곡 <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군사정변 이후 LP음반에 다시 수록될 때에 그런 요소들이 모두 삭제되었다. 이번 음반에는 물론 1960년 여름 발표 당시 원곡을 그대로 살려 수록했다.
원래 기획에서 의도했던 만큼 많은 곡을 수록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앞서 짚어 본 노래들 외에도 이번 음반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희귀 자료가 상당수 실려 있다. 1960년 11월에 세상을 떠난 가수 한정무가 녹음한 <아 4·19> 같은 곡은 사실상 6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된 경우이다.
200부 한정으로 이번 음반을 제작한 유정천리에서는 회원 배포가 마무리된 뒤 4월 혁명 유관단체에도 음반을 기증할 예정이다. 배포와 기증 이후 여분이 있을 경우에는 일반 구매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