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굴욕으로 시작해 굴욕으로 끝났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지난 5개월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12월 9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그는 오는 8일 신임 원내대표단 선거와 함께 152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의 임기가 이렇게 일찍 종료되는 건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했기 때문이다. '총선 선봉장'을 자임한 그였지만,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패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 의원은 초선을 상대로 색깔론까지 꺼내들며 공세를 폈지만 12.42%p, 1만1309표차로 패했다.
순탄치 않았던 시작, 아름답지 못한 결말
심재철 원내대표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나경원 전임 원내대표가 황교안 대표 등을 위시한 지도부에 의해 내려오자, 심 원내대표는 '강한 투쟁력'을 강조하며 빈자리를 꿰찼다. 당시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 도입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을 두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정국으로 여야 갈등이 심했을 때다. 예산안 처리를 두고도 첨예하게 맞서고 있었다.
심 원내대표는, 선출된 직후 국회 원내대표단 협상에 나서 '필리버스터(합법적의사진행방해)'를 철회하고, 예산안 심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법안도 처리하기로 했다. 대신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회기 중 패스트트랙에 오른 사법개혁 법안들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협상안이었다
.
그러나 의원총회에서 부결돼 협상안이 파기되는 굴욕을 겪었다. 결국 4+1 협의체의 예산안 등 처리를 막으려던 당의 원내전술은 실패했고, 이는 '필리버스터 회군'으로 조롱받았다.
심 원내대표의 끝도 아름답지 못했다. 총선 당일, 통합당이 대패하자 황교안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했다. 당대표 권한대행을 떠안게 된 심 원내대표는 당의 운명을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에게 맡기려 했다. 하지만 비대위 권한과 임기 문제가 불거지자 당내 갈등이 폭발했고, 당헌에 따른 8월 말 전당대회 개최와 비대위 체제 전환을 두고 당내 여론이 양분됐다.
20대 현역 의원과 21대 당선자 142명에게 '전화'를 돌려 의견을 수렴한 그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 전환을 꾀했으나, 절차적으로 무리한 추진이라는 반발에 부딪힌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됐으나, 상임전국위원회가 무산되며 비대위 임기 문제를 풀지 못했다. 결국 김종인 비대위는 개문발차도, 폐기도 못하고 있다. 최고위원회에서도 결론이 나오지 않자, 심 원내대표는 결국 차기 원내지도부에게 결정을 위임하고 본인은 손을 뗐다.
이 와중에 심 원내대표가 한밤 중 김종인 전 위원장을 만나 고개를 숙이며 악수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그는 "정상적 악수 이후 김 전 위원장이 손을 잡고 이끄는 사진을 언론이 굴욕적인 악수 사진으로 보도했다"라며 "심각한 왜곡 보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총선 참패 원인은 매표용 현금살포"
7일 오전, 심 원내대표는 임기 종료를 하루 앞두고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그는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김대호‧차명진 막말" 등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건 매표용 현금살포"라고 짚었다. "선거 이틀 전 아동수당 40만 원씩을 뿌려댔고, 3월 말부터 코로나 지원금을 '100만 원씩 준다'라고 했다"라며
"선거에 들어가서는 전 국민에게 100만 원씩 주겠다고 했는데, 이는 매표용 헬리콥터 현금살포"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도 전 국민 50만 원 지급을 공약한 바 있다.
그 다음으로 그는 "공천 실패"를 거론했다. "개혁 공천과 이기는 공천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인 것처럼 잘못 공천했다"라며 "현장에서 생존능력이 안 되는 젊은이들을 퓨처메이커라는 이름을 붙여서, 안 되는 지역에 투입했다"라고 언급했다. 심 원내대표는 '공천 실패'에 이어 "황교안 당 대표의 리더십 부재"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당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게 사후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거의 가장 핵심은 공천인데, 그 공천 과정 자체가 안 좋게 나왔다"라며 "공관위원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당을 최고로 이끄는 당 대표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라고 재차 황 대표 책임론을 언급했다.
그러나 당 최고위가 '이기는 공천'을 내세우며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무효화하고 기회를 준 민경욱 의원(인천 연수을)은 해당 지역구에서 생환하지 못했다. 또한 원내대표 역시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최고위 일원이다. 현장의 기자들로부터 이런 지적이 나오자 그는 "그러니까 나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잖느냐"라고 답했다.
특히 이날 그는 "맨 처음에 자기들이 도입할 때는 '정치개혁이다' '선거개혁이다' '사표방지 위해 소수 의견 반영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건 말짱 거짓말"이라며 "이런 괴물 같은 누더기 선거제도로 인해 대한민국 선거가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를 비난했다.
하지만 곧이어 "전체 득표율을 봤을 때, 49대 41이라는, 크게 뒤지지 않는 정도로 여전히 성원해주시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라며 "단순 소선거구제에서는 한 표라도 지면 탈락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과는 84석밖에 안 되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왔다"라고 소선거구제를 탓했다.
그의 추후 계획은 '연구소 설립'
그는 지난해 원내대표 출마선언문에서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반대를 하면서도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대안정당의 참모습을 되찾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어 "우리 당이 취약한 사회소외계층 등을 포용하는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인 복지정책과, 침체된 경제 활성화 정책으로 자영업자 등 중산층의 지지를 견인하겠다"면서 "경제를 살리는 합리적인 정책에는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과연 152일 동안 애초 약속한 모습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심 원내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본인의 임무수행에 대해 몇 점 정도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스스로 평가하기 어렵다"라며 "국민들과 당원들이 하실 것이다, 기자들이 점수를 많이 좀 주시라"고 답했다.
추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글쎄, 연구소 하나 만들어서 이런저런 공부도 하면서 지낼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