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8년 유럽의 한 시골마을에는 낯선 사내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 사내는 30대 후반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 교황과 귓속말을 나눌 만큼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다. 글씨체가 좋았고 영민했던 그는 교황 요한네스 23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교황이 실각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여행 자체가 위험천만 행위였던 중세시대에 이 실업자는 목숨을 건 도박을 건다.
포조라고 불리는 이 야심만만한 사내의 목표지는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에서 먼지와 곰팡이를 뒤집어 쓴 채 감금된 희귀 고서를 훔쳐내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울러 수도원 도서관에서 묵혀있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고서를 구출해서 후대에게 물려주겠다는 사명감으로도 불타있었다. 포조는 책 도둑이 침입하면 언제라도 철퇴를 내릴 준비를 하는 수도사의 감시망을 뚫어내고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서사시<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전리품으로 획득하는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며 종교는 미신이고 사후세계는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갈릴레오와 뉴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포조의 책 도둑질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향하는 근대의 문을 연 것이다. 포조의 성공에 고무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에서 잠들고 있는 고서를 찾아서 읽고, 주석을 붙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책 내용을 전파하는 이른바 대(大) 책 사냥시대가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런 발견과 해석이 우리가 오늘날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의 시초가 되었다.
인문학은 놀이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매한 학자들이 주고받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혼자서 공부할 수 없고 학문이 높은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시작이 되었던 포조의 책 도둑질을 생각해도 인문학은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에 가깝다. 좋은 책을 읽고 자기만의 해석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 전파를 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인문학적 행위인 것이다.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문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애당초 인문학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 '재미난 것'을 전달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면 요리사의 수고가 필요하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에게 자랑하려면 앞서간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 나무늘보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에는 28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책을 선정했다. 인문학의 시작이 보통사람은 알 수 없는 지식인들만의 암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이 재미난 것을 나 혼자서만 알 수 없지'라는 '퍼 나르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도구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겠다는 선한 의지의 산물이 인문학이기도 하다. 재미에 푹 빠져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을 골라 나만의 양념을 가미했다.
가령 얼마 전에 나무늘보와 퓨마가 사투를 벌이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나무위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잘 생활하는 나무늘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배변을 위해서 나무에서 내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나무늘보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퓨마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나무늘보는 체념한 듯한 슬픈 눈을 남기고 퓨마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네티즌들은 나무늘보를 동정할 뿐 나무늘보는 왜 나무 위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볼일을 보지 않고 위험천만한 나무 밑으로 내려왔는지 잘 모른다. 알고 보면 나무늘보가 나무 밑으로 내려오는 기가 막힌 이유는 따로 있다.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를 읽다 보면 나무늘보의 사연을 알 수 있다. 또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자주 먹는 단팥빵과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얽힌 사연도 알게 된다.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를 읽고 나면 또 다른 몇 가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