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중년'이란 타이틀로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가 나왔다. 단편 기사로 쓸 때는 덜했는데, 나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막상 책으로 나오고 보니 옷 벗고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뭐 대단한 비밀을 털어놓은 것도 아닌데 부끄러운 생각에 책이 나오고 선뜻 누구에게 선물하지 못했다. 책이 나오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시골에 계시는 친정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어이, 딸! 책 나왔다며? 왜 아부지한테 말을 안 해?" 나는 당황해서 "아니, 첫 책도 아니고 그동안 뭐 좀 하느라 바빴어요." 대충 얼버무리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복지관에 갔다가 영양사분께서 "문 선생님! 따님이 책 또 내셨던데 보셨어요?"라고 아는 척을 했다는 거다. 아버지는 모르는 이야기라며 책 제목이 뭔지 물으셨는데, 그분께서 제목이 길어서 잊어버렸다고 했단다(눈물이 핑 ㅠㅠ).
아버지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화제가 된 딸
아버지는 뭔 제목을 기억도 못 하게 길게 지었냐고 훈수를 두시더니 내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걸 서운해 하셨다. 이게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가족이 내 근황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왜 그렇게 민망한지.
아버지는 책 세 권만 보내달라셨다. 나는 죄송하단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5분 뒤, 아버지로부터 다섯 권을 보내라는 문자가 왔다. 또 오 분 뒤, 딱 7권만 보내달라는 문자가 또 왔다. 나는 열 권을 보내드렸다.
다음날 책을 받으신 아빠는 '내가 딱 열 권이 필요했는데 계속 말하기 뭐해서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열 권을 보냈냐'고 고마워하셨다. "어떻게 알긴요, 제가 아버지 딸이잖아요. 척하면 척이죠!" 아버지에게 책 열 권은 식권 열 장이다.
책을 돌리면서 밥 한 끼 같이 먹고, 딸 자랑을 늘어놓을 찬스를 얻은 것이다. 자식 넷을 키웠지만, 자랑 거리는 늘 부족했던 탓에 남의 자식 자랑만 들어야 했던 아버지가 이때 아니면 언제 자랑을 해보겠는가? 아버지가 책 열 권을 품에 안고 복지관으로 신이 나서 가실 걸 생각하니 괜스레 목이 멘다.
며칠 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책 아주 재미있게 잘 보셨다고 하는데 목소리가 밝지 않으시다. 연유를 물어보니 이유는 뜻밖에 있었다. 그 많은 글 속에 아버지가 주인공인 글이 없다는 것이다. 아뿔싸! 그랬구나. 가족들 이야기가 골고루 나오는데 유독 아버지 이야기가 빠졌구나! 아버지가 주인공인 글을 한 번도 안 쓴 불효녀라니. 웁니다. 불효녀는 웁니다.
첫 번째 미술 서적을 내고 아버지께 책 몇 권을 보내드렸을 때 나는 아버지 친구분 중에 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이제와 고백한다. 노인에 대한 편견이었다. '노인은 이런 책은 안 읽을 것이다'라는 무식한 편견. 복지관에는 선생님, 교수님 등 고학력자들도 많은 데다가 고학력자가 아니더라도 나도 곧 노인이 될 것이고 그때의 나도 여전히 책을 읽을 텐데 말이다.
이번에 책을 보내고 나서 나는, 아버지가 다니는 복지관에 헤밍웨이도 울고 갈 스타작가가 되었다. 내 책을 여러분께서 돌려 읽으시고 토론의 장이 벌어졌다. 책 내용과 무관하게 내 프로필에 나오는 이야기가 화근이 되었다.
'드라마를 쓰고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다음 줄에 '편성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쓸 뿐이다'가 연이어 있는데 그것까진 안 읽으신 모양이다.
노인 복지관에서 벌어진 난상 토론
점심을 먹고 잠시 책상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다. 전화를 받으니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아버지는 스피커폰으로 해 놓으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여기 계신 분들이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너한테 아주 유용한 이야기니 꼭 들어보아라."
뭔지 몰라도 벌써 비장하다. 한 할머니가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따님이 드라마를 쓴다고 하길래 우리가 여기서 투표를 했어요!"
"네? 무슨 투표요?"
"지난번에 '부부의 세계' 했잖아. 우리가 그걸 보고 진절머리가 나서. 아니, 능력도 있는 여자들이 한 남자 가지고 뭐 하는 짓이여? 그래서 우리가 평생 몇 명과 살아야 적당한지 투표를 했어!"
헐, 노인 복지관에서 이런 흥미진진한 토론을 하실 줄이야. 여기서 잠깐!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란 공리주의에 근거하여 인간은 평생 몇 명과 살아야 행복할까?
숫자와 상관없이 진실한 사람 하나면 된다는 뻔한 이야기는 통과! 다들 그러고 싶지만 그런 행운이 내게 올 확률은 로또만큼이나 희박한 일. 다들 살아보셔서 아시겠지만, 하필! 하필 그런(?) 사람만 만나잖아요, 우리가.
놀랍게도 최하 3명에서 12명까지 나왔다. 법이 바뀐 것도 아닌데 왜 내 속이 다 시원하지? 그 시절엔 이혼이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 테니 다들 한 명과 살아내느라 힘드셨구나.
'12명'이라 말씀하신 분은 놀랍게도 일부종사로 평생 삼시세끼를 매번 새로 해다 바치며 사셨다고, 방금도 점심 차려주고 왔다고 친절한 내 아버지의 설명이 붙었다. 다른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그 영감부터 갖다 버리고 와!" 옆에서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명랑한 노년이다. 웃긴데 왜 찡하지?
하여튼 합의 결과, 네 명이 적당하다는 결론이었다. 이제 나에게 떨어진 미션은 한 주인공이 평생을 통해 네 명의 사람을 만나면서 성장하고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는 대휴먼 드라마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성원에 감사드리며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어느 분께서 소리치셨다. "보내주신 책 아주 잘 봤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왠지 신상 다 털린 기분이 들어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봤다.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 하나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제도와 편견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어지간해서는 참고 살게 된다. 불행이 생활이 된 채로. 그러는 동안 인생은 순식간에 끝나버리는데…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책 한 권이 도착했다. 내 마음이 와락 움직인 그 책 제목은...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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