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셋째 형과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암태와 목포 사이에 천사대교가 생겨 왕래하기가 쉽지만 버스로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당뇨가 심한 형은 봉고차를 몰고 나올 수가 없어서 목포에 있는 병원을 찾을 때면 버스를 타고 나온다. 그런 형과 형이 종종 찾은 그 병원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것이다.
형제가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는 까닭이다. 더욱이 중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도 제한된다. 건강은 어떤지, 자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해나가는. 형과 밥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도 꼭 그랬다.
형이 버스를 타려고 돌아가는 보습을 보면서 다음에 또 보자고 서로 손을 흔들어댔다. 그때 왜 그렇게 형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을까? 이십 대는 축구 선수가 될 듯이 그렇게도 열심히 뛰어다닌 형이었는데, 지금은 당뇨와 고혈압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야 하니 그렇게 보였던 걸까?
나도 형처럼 육십이 되면 저렇게 변하는 건 아닐까? 지금도 오십견 때문에 어깨가 아프고 허리협착증도 생겨서 종종 침을 맞는데, 10년을 더 살면 과연 내가 내 몸을 감당키나 할 수 있을까? 그때는 20대 중반을 넘어설 내 자식들이 다들 자기 살길을 찾고 있을까? 버스에 몸을 실은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깐이나 내 훗날을 내다봤다.
"또 다른 친구의 휴대전화 주소록에는 남편이 '너그러운 남편'으로 저장되어 있다. 하도 날카롭고 까칠해서 제발 좀 너그러워지라는 염원을 담아 그렇게 저장했단다. … 25년 전 남편에게 콩깍지가 씌었던 자기의 눈을 찌르고 싶다는 또 다른 친구는 주소록 속 남편 이름 앞뒤에 하트 이모티콘을 붙였다. 그렇게라도 매일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 남편 이름 앞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적은 절친도 있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종교의 힘을 빌려야 비로소 극복되나 보다." - 51쪽
문하연의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땅의 중년이 된 남편과 살고 있는 중년 아내들의 모습. 이 글을 읽다가 얼마나 배꼽 잡고 웃었는지 모른다. 설마 내 아내도 그럴까? 중년이 되어 격을 갖추고자 서로의 핸드폰을 노터치하는데, 내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문구가 떠오르지는 않을지!
사실 이 책을 쓴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신춘문예를 준비했는데, 삶이 여의치 않아 간호사가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그러다 어느새 두 아들의 엄마가 돼 버렸다. 그렇게 세월에 묻혀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서도 그녀는 일기장을 놓지 않았다.
그가 사십 대 후반에 들어설 무렵은 남편은 여전히 일에 몰두했고 두 아이들은 20대를 넘어서는 시점이었다. 세월의 무료함과 허전함이 밀려들었고, 그걸 달래고자 글로 소통을 시작했다는 작가. 그것이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받아 세상에 나온 게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명랑한 중년'이었다. 그것이 이 책으로 나온 거다.
이럴 때면 나는 두 사람을 동시에 간호해야 한다. 아버지를 향한 숨은 애정의 크기만큼 속상한 남편의 언짢은 소리가 불쑥 튀어나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어깨를 두 번 토닥인 후 재빨리 그에게로 가서 팔짱을 끼며 "아버지, 제가 청소를 너무 깨끗이 해서 다른 집 같죠? 어서 식사 마저 드세요"하며 식탁 의자에 그를 앉힌다.- 197쪽
시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녀의 모습.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고 치매로 고생하는 시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잘되지 않는 아들인 남편 사이에서, 며느리 노릇과 아내 노릇을 지혜롭고 관대하게 헤쳐나가야 하는 그의 삶이다.
이 부분을 읽고 있자니 내 누님과 매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도에 사는 내 누님도 얼마 전까지 치매로 고생한 시어머니를 모셨다. 심할 땐 방안에 오줌도 싸 놓기도 하고 누나나 매형에게 "언제 오셨어요?"하고 존댓말도 일삼았다. 그럴 때면 중간에서 지혜롭게 해야 할 몫이 누나에게 있었던 것.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셔서 코로나로 면회도 할 수 없는 처지라, 가끔씩 모시고 살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어린이와 청년 사이에 사춘기가 있듯이 청춘과 노년 사이의 갱년기가 있다. 중년의 갱년기가 그것. 중년의 과도기는 늘 외롭고 허무하기도 하고 힘들고 때로는 혼란스럽다.
몸이 쑤시고 오십견으로 고생해도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내색하기도 힘들다. 남편과 아버지의 무게감과 체면 때문에. 더욱이 10년 뒤에는 오늘 만난 셋째 형처럼 나도 육십대가 될 텐데, 그때도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싶어 벌써부터 막막하다.
그런 중년의 나를 바라보는 내 아내는, 또 내 자식들은 어떨까? 올해 고3인 딸과 고1과 중3인 두 아들녀석이 10년 사이에 20대를 넘어선다면 그때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내 아내도 나와 내 아이들 사이에서 중년의 아내와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 삶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혼란의 시기를 살고 있는 이 땅의 중년들은 모두 흔들리고 아프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같은 중년으로 사는 이들에게 적잖은 위로와 힘을 준다. 중년으로 산다는 게 꼭 아픔만 있는 게 아니라 웃음과 보람도 있다는 걸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손에 들면 좀체 놓을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국회방송종합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