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년)는 명절 같은 때 공중파나 케이블TV에서 종종 틀어주는 영화다. 잘 만든 영화인데다 재미있으니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에 속한다. <글래디에이터>는 로마역사를 다루는 보조자료로도 종종 활용된다. 세계사에서 나오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5현제 등의 실제 시대이며, 철인황제로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이자 다음 황제인 코모두스 치세를 다룬다.
영화는 사실(史實)을 배경으로 했지만 극화를 위한 약간의 조정이 있었지 싶다. 아우렐리우스를 코모두스가 살해했고 아우렐리우스가 코모두스에게 왕좌를 물려주길 꺼렸다는 줄거리는 영화적 설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코모두스가 아버지에 턱없이 모자란 인물이었고 로마제국 몰락의 시작에 위치한 문제의 황제임은 분명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황위계승의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코모두스가 좋은 황제가 되기를 바라며 훈육한 아버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철학자로도 추앙받고 로마제국의 황금기를 대표한 아우렐리우스가 왜 아들(코모두스) 교육에 실패했느냐는 후대에 종종 얘깃거리가 됐다. 사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아들 교육에 실패했느냐보다는 교육에 실패하고 또 아들에게 황제의 자질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음도 아우렐리우스는 왜 코모두스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느냐를 물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5현제 중 아우렐리우스가 유일하게 양자가 아닌 친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준 것을 문제삼는다. 거의 모든 황제가 그때까지 양자를 후계자로 삼아 황위를 전했기 때문이다. 양자상속은 로마제국 초기 상황에서 여러 이점을 지니지만 그런 황위계승이 이루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공교롭게도 거의 모든 황제에게 친아들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도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코모두스가 황제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코모두스가 자기 핏줄이란 아마 그 한 가지 이유로 황제의 자리를 넘겼다. 그 유명한 철인황제가 말이다. 양자 또한 가부장제 범주에 속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재일 뿐이다. 가부장제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근간으로 남성지배와 여성복속을 관철한 수천년 이어진 억압체제이다. 그 유명한 철인황제로 넘지 못한.
곧 추석이다. 우리 전통적인 수사에 "조상께 감사하는" 운운이 포함되는데, 그 조상은 당연히 부계를 뜻한다. 제사상의 위패에 적힌 성(姓)과 다른 성을 쓰는 여성들이 제사음식을 준비하여 위패와 같은 성을 쓰는 남성들이 제사를 지낸 게 추석 명절의 오랜 풍경이었다.
요즘은 차례에 여성이 참여하는 추세라고 한다만, 위패와 같은 성씨의 사람이 제사를 지내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위패와 다른 성씨의 며느리들은 여전히 대체로 차례 도우미 역할에 머문다.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핏줄이 달라서이다.
올해 추석은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는 전례 없는 분위기 속에서 다가오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추석 연휴기간 국민의 이동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번 추석은 부모님과 어르신의 안전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추석 연휴 최고의 선물은 멀리서 그리운 마음을 전하는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며 "올해만큼은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게 오히려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위험군인 노인들이, 가족이라고 하여도 평소에 따로 사는 다른 연령대의 가족 구성원들과 접촉하는 것은 분명 감염병 예방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국무총리 담화가 추석의 가족사를 말끔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주변에서 들어보면, "부모님이 오지 말라고 먼저 말씀을 해야 안 가지, 아무 말씀 안 하는데 안 갈 수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많다.
2020년 추석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건 확실하다. 억지로 방문했다가 두고두고 후회할 불효를 저지를 수도 있다. 전래의 가부장제 의식 준행을 두고 눈치 게임을 벌일 게 아니라, 두 세대가 빨리 대화해서 이번엔 망운지정으로 정리하는 게 좋겠다. 같은 성을 쓰는 사람끼리, 즉 남편은 시댁에 아내는 친정에 연락해 의사결정하는 것이 추석의 의의를 살리는 묘책이 아닐까. 추석특선 영화로 <글래디에이터>정도를 따로 보는 것이 그리 나쁜 발상이지는 않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