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전태일 열사의 유언을 품고 이소선 어머니가 갔던 길을 걷고 있다. 산재피해 유가족 모임의 이름이 '다시는'이다. 일터에서 죽임을 당한 내 가족은 살아 돌아올 수 없지만,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다시는' 유가족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함께 만들고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바로 그런 마음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노회찬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으나 논의조차 되지 못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10만 명의 국회입법동의청원을 성사시키고자 밤낮없이 호소하고 뛰어다녔던 분들이 '다시는'의 가족들이었고, 재난과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의 법안이 소중한 이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가족의 죽음을 품고 있는 이들의 질문과 요구가 담긴 법이다. 유가족들은, 기업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나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분노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 법이 노동재해와 시민재해를 가리지 않고 모두 포괄하기를 요구했다.
기업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처벌되어 안전조치가 책임 있게 이뤄지기를 소망했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조직문화 때문에 발생한 참사들을 숙고하며, 기업 자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서 기업의 변화를 끌어내 보자고 요구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죽음은 숫자로 표현될 수 없으며 한 우주가 사라지는 일임을 증언하면서, 기업에 의한 죽음이 '살인'임을 알리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이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또한 유가족들은 혹시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중대재해 중에서 이 법안에 해당하지 않고 빠져나가는 경우는 없는지를 살폈다. 방송계의 노동착취를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만이 아니라 일터괴롭힘이나 회사의 노조탄압 등에 맞서다 죽음에 이르게 된 사안도 이 법안에서 포괄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제안했다.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고 김태규 노동자의 유가족은 발주처의 책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그래서 '발주자'가 책임자의 범위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기업이 여러 증거를 은폐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던 유가족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기에, 반복되는 산재나 은폐를 한 기업에 책임을 지우는 '추정조항'을 만들 수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에서 제출한 법안이 소중한 이유는, 10만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도록 입법청원을 성사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다시는' 기업에 의한 죽음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유가족의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새겨가며 토론하고 고민하고 제안하면서 만든 법이기 때문이다.
법체계가 일관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법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논리적 구성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법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법체계에서 용인되는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지 못한 면도 있다. 하지만 법 그 자체가 아니라, 유가족의 생생한 증언과 구체적인 현실에 기반하여 만든 법이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하다.
정부와 국회는 침묵을 멈추고 법안을 수용해야
10만 명이 국회입법동의청원 서명에 참여하여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다루게 되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도 병합심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경총은 10월 23일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보내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이유가 사후처벌 위주 산업안전정책에 있는 만큼 처벌 강화 중심 입법은 지양해야 한다"면서 "사업자 역할과 책임에 걸맞은 체계적인 사전예방 안전관리 시스템 정착과 현장 특성에 따른 심층·전문적 산재예방체계 구축 및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의미 없는 주장이다. 왜 사전예방이 안 되고 있는가? 안전비용보다 사람의 목숨값이 더 싸기 때문이다. 바로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드는 것이며, 이 법을 통해서 실질적인 사전예방 시스템을 강제하려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이 법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정도로 하자는 입장을 흘리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들은 혹시라도 이 법안이 기업의 이윤을 침해할까 봐 우려한다. 너무 많은 기업이 처벌받을까 걱정하고, 최고책임자 처벌이 가능하겠냐고 의심하고, 조직문화에 대한 가중처벌이 법 구조상 맞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추정조항은 위헌 소지가 있지 않겠냐고 넌지시 이야기하고, 공무원의 안정적인 지위를 흔드는 것이 맞는지 던지고, 큰 기업은 빠져나가고 작은 사업장만 처벌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마치 작은 사업장을 걱정하는 척한다. 과잉처벌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기업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던 현실을 감추려고 한다.
이 법안이 가진 한계를 잘 토론하여 수정 법안을 잘 만들고자 하는 의도라면 언제라도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위의 질문들은 한해에 2400명의 노동자가 죽고 있으며,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 등 기업에 의한 참사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기업에 의해 사람이 죽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제출한 법안을 수용하여 입법에 나서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노동운동의 불씨를 피워올렸고 그 뜻을 기억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투쟁했고, 바로 그 힘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왔다. 지금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재해와 재난참사로 인한 죽음을 개인의 죽음으로 두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나선 이들의 힘으로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것을 지지하는 10만 명의 힘이 모였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노조할 권리를 위한 노조법 2조 개정과 더불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전태일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억울하게 스러진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약속이 이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힘을 더 내보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이며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