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엄마와 51세 딸이 다시 고향에서 함께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어머니의 이사를 앞두고는 며칠에 걸쳐, 그날 저녁부터 노인주간보호센터 차가 새로 이사하는 집으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우리는 그날부터 그 집에 살기 시작할 거라고 반복해서 이야기를 했다.
"오늘 저녁에 새 집에서 보게"라며 아침에 어머니를 배웅하고 나서 오빠 부부와 나, 셋이서 짐을 옮겼다. 지리산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도, 또 어머니의 짐이 이곳으로 들어올 때도 날이 너무 좋았다. '우리의 이사를 위한 날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일했다.
오후 5시경이 되어 어머니가 센터에서 오셨다. 계약을 앞두고 딱 한 번 잠시 왔던 낯선 곳에 차가 멈추자 어머니는 '여기가 어디야?'라는 표정으로 나왔다. 어머니에겐 장소도 낯설고 번호를 눌러 문이 열리는 것도 낯설고, 딸, 아들, 며느리라는 익숙한 가족들 빼고는 다 낯설었다.
그런데, 이 낯선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는 큰 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나무와 산,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어머니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고 온 집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걱정하셨다. 그 집에 우리 짐들도 여전히 있고, 내가 종종 들러 볼 거라 얘기했다.
"어머니, 이사한 날은 짜장면 먹는 거잖아. 어머니가 짜장면이랑 탕수육이랑 사."
옆구리 찔러 이사턱으로 저녁을 얻어먹고는 낯선 곳에서 첫날밤을 맞았다. 누워 있는 어머니 모습이 불안하거나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날씨의 응원 속에서 이사를 마치고 둘 다 낯선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우리 무사 여기 이샤(왜 여기 있어)?"
하룻밤을 보낸 어머니가 다음 날 눈 뜨면서 한 첫 마디였다. 다시 설명이 이어졌다. 방에서 나온 어머니는 창가에 놓인 화장대 의자에 자연스럽게 가서 앉았다. 따뜻한 보리차 한 잔에 바깥 풍경을 감상하면서 이렇게 첫 아침을 맞았다. 낯설어서 불편한 건 있지만, 그 느낌이 커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적응해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잘 갔다와~!"
센터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이 집에서 등원을 하였다. 여러 가지가 처음인 경험들을 우리는 해나갔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일도 어머니한테는 언제부턴가 애쓰며 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큰언니가 보낸 돈으로 어머니 침대를 주문하였다.
조만간 침대가 올 텐데, 침대에서 자는 일도 어머니에겐 인생 첫 경험이 될 것이다. 자신은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고, 왜 돈 써가며 침대를 사냐며 반대를 했다. 애써 앉았다 일어서는 게 당연하고, 자신을 위해 돈을 그것도 거금을 쓴 적이 인생에 별로 없는 어머니로서는 이 또한 낯선 소비 행태일 것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집의 이곳저곳을 살살 살피고 다녔다. 방이 어디에 있고, 화장실이 어디에 있고 등등 자신이 살아갈 곳에 대한 궁금함이 그새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았다. 침대가 오면 어디에 놓게 되는 거냐고 묻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선반 조립 등 짐정리에 필요한 일들을 함께 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선반은 어디에 놓을 건지, 거기에 놓으면 문을 여닫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 등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궁금해 하셨다. 내 계획을 이야기하고 실제로 문을 여닫아보면서 문제없음을 같이 확인하기도 했다.
교회 마당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어머니는 찬송을 흥얼거리는 일이 꽤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오랜 습관도 거의 사라진 듯 했다. 그런데, 내가 내려와서 하루 이틀 되던 날, 어머니가 작은 소리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교회 노래가 아닌 시중 음악(?)이 어머니 입에서 흘러나오니 웃음이 나왔다. 센터에 다니는 효과인가 보다. 이 생각이 나서 어느 날 아침은 '내 나이가 어때서'를 아침 음악으로 틀었다. 어머니 때문에 내 평생 일부러 들을 일이 거의 없을 법한 트로트를 이날 아침 꽤 들었다.
이사 며칠 후 침대가 들어왔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달게 주무셨다. 거의 적응의 왕이네 싶었다. 침대에서 자는 것이 너무 좋았는지 그 다음날 낮에 내 방에 와 보시더니 "여긴 침대 없구나" 하시면서, 자기 침대 여기 갖다놓고 쓰라고 하셨다.
좋은 걸 혼자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거다. 침대, 식탁, 쇼파같은 것은 늙을수록 필요한 것 같다고, 나도 더 많이 늙으면 침대 쓸 테니 걱정하지 말라 했다. 어머니는 살짝 웃으면서 내 방을 나가셨다.
3년 전, 부모님과 한 달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 우에노 치즈코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읽었다. 이 책은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색기이다. 방치된 고독사가 아니라 익숙한 자신의 공간에서 필요한 간병(식사간병, 배설간병, 입욕간병 등)과 의료와 간호를 받으면서, 삶에서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성찰서이다.
이 책에 따르면, 나이든 부모가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식은 자기 세대의 여러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부모의 일상을 지적하고 잔소리하는 게 주요 역할인 존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와 '함께'인 삶을 선택했다. 세수하고 이닦고 등 일상적으로 스스로 챙겨왔던 일들도 잊어버리곤 해서, 습관이 되게 하려고 매일 이야기하게 된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보일러도 잘 안 틀고 웃풍이 있던 추운 환경에서 이닦기, 세수, 머리감기, 목욕 등은 하고 싶은 일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움츠러들다보니 하던 일들도 점점 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적어도 얼마 안 되는 지금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 삶이 우리 둘 모두에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짐이 내려온 지 3일째 되던 날, 친구가 짐 정리에 한창인 나에게 여기가 예전 살던 지리산보다 좋냐고 물었다. 짐 정리만 하고 있는데, 아직 좋고 나쁘고가 있겠냐고 대답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 마음에서 불안과 걱정의 짐이 덜어졌다는 점에서는 확실하게 좋은 것 같았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거실에서 딸이 만들 땅콩크림을 위해 땅콩 까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 주에 빵이 배달되면 땅콩 크림을 발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