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언뜻 백가쟁명일 것 같지만 사람들의 대답은 획일적이다. 첨단 기술에 기댄 비대면 수업의 일상화. 코로나가 물러간다고 해도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의 '보완재'를 넘어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백신 소식에도 코로나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모른다. 대통령까지 나서 늦어도 연말까지는 집단 면역이 가능할 거라며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앞으로 1년도 지난 1년과 똑같이 보내야 한다는 절망감 때문이다.
느닷없이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과 빚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을 살릴 보상책과 지원책 소식은 더디기만 하다. 그들이 겪는 고통이 매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이 내몰린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다. 하루아침에 아이들은 갈 곳을 잃었고, 사회화 기관으로서 학교는 제 역할을 잃었다.
학교 교문이 닫히면서 전국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그대로 방치됐다. 부모와 교사의 손을 더 타는 초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생, 심지어 성인이 된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우선 등교시킬 계획임을 밝혔지만, 돌봄은 그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지난해는 그야말로 얼떨결에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평범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돼버렸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K-방역'이라는 상찬에 뿌듯해하며, 조만간 과거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학교 안팎의 풍경이 작년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이 와중에 섣불리 교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교사도 아이들도 비대면 수업을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아 어수선했던 작년의 경우와는 크게 다를 것이라 낙관하기도 한다.
학교가 필요없다는 아이들
교사로서, 솔직히 난 두렵다. 무시로 강화된 방역지침으로 인해 교육과정이 무력화된 작년엔 핑곗거리라도 있었지만, 올해 그걸 다시 우려먹긴 곤란할 성싶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할수록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져, 종국에는 '학교 무용론'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작년엔 아이들과 학부모로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는 거였다. 낯선 수업 녹화에다 기존에 없던 방역 업무까지, 등교하는 아이들의 숫자와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은 늘어났다. 그래선지 조금 모자라고 서툴러도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올해도 그럴까. 아닐 성싶다. 작년처럼 했다간 대번 지난 1년 동안 뭘 했느냐는 질타가 쏟아질 게 분명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질수록 학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질 것이다. 집단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것만으로 교문을 닫아걸고 있을 수만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지난해 등교수업을 예년에 견줘 1/3 남짓밖에 하지 못했던 고1 아이들과 갓 대학에 입학한 조카의 1년을 잠깐 소개한다. 같은 또래라면 일상이 대개 비슷했을 것이다. 왜 그들이 이구동성 2020년을 '잃어버린 1년'이라고 부르고, '돈만 내고 허송한 한 해'라고 조롱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고1 새내기들의 심경 변화를 요약한다면 이렇게 정리될 것이다. 당혹감과 난감함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5월로 개학이 연기될 때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당혹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안내 문자와 담임교사의 카톡 내용 하나하나에 주의를 집중했다.
원격수업과 출결 방식이 결정되자, 처음 겪는 상황에 교사도 학생도 어리둥절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어떻게 하며, 수행평가는 어떤 식으로 치를 것인지 서로 머리를 싸매야 했다. 격일과 격주로 번갈아 등교하고 시간표마저 수시로 바뀌며 그야말로 난감한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면서도 재빠르게 적응해갔다. 교사는 원격수업을 촬영하고, 탑재하고, 출결 확인을 했으며, 아이들은 인터넷에 접속하고, 수강하고, 과제를 제출하는 데 이내 익숙해졌다. 수업은 비대면으로 하고, 등교한 날엔 미뤄둔 평가를 하기에 바빴다.
익숙해지다 보니, 원격수업이 더 편안해졌다. 2학기 말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고 말했다. 일어나는 시간이 시나브로 늦어져, 수강을 독려하는 담임교사의 전화가 기상 알람 노릇을 하게 됐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고도 했다.
아무 때나 접속해서 클릭 한 번이면 출석 처리가 된다. 수업 내용이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 교육부는 대안이랍시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의무화한다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아이들에게 하루 7시간 동안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앉아 있도록 하는 건 교육이 아니라 고문이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가 필요 없다고 선선히 말한다. 지난해 1학기 말쯤 학교를 못 가서 안달하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등교하지 않는 일상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린 탓이다. 예정대로 등교 개학을 하면, 아이들이 바뀐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데 상당히 애를 먹게 될 것 같다. 이들이 올해 고2가 된다.
학교 교문, 더 이상 닫혀서는 안 된다
'20학번'인 조카는 아직 대학 생활을 시작조차 못했다. 합격 통지서를 받고 드디어 힘겨운 고3 생활에서 해방됐다며 뛸 듯이 좋아하더니, 코로나로 대학에서조차 해방돼버렸다. 대부분의 강의가 원격으로 전환됐고, 동아리 방은 폐쇄됐다. 굳이 대학에 갈 일이 없어진 셈이다.
대학 기숙사도 문이 잠겼다. 집 떠나 대학 기숙사에서 선배,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됐다며 싱글벙글하던 모습이 선한데, 이내 짐을 싸서 나와야 했다. 그 넓은 대학 캠퍼스에 그가 가본 곳이라곤, 기숙사를 제외하면 얼마간 출석해 강의를 들었던 단과대 건물 외엔 없다고 했다.
모꼬지는커녕 학과 오리엔테이션도 취소됐다며 아쉬워했다. OMR 카드가 필요 없다기에 시험을 앞두고 내심 설렜는데,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모두 리포트로 대체됐다고 했다. 선배들과 세미나도 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는데, 죄다 물 건너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올해 군에 입대할 계획이다. 마음먹었다고 곧장 갈 수 있는 것도 아닐 테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대학 생활을 하느니 휴학해 시간을 버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다. 비대면 강의로 대학 생활의 절반을 허비해야 한다는 게 끔찍하다는 거다.
하긴 올해 졸업한 아이들, 말하자면, 그의 1년 후배들에 비하면 투덜거릴 것도 없다. 그들은 작년 5월 이후 줄곧 등교해 오로지 대학 진학만을 생각하며 악조건 속 수험생활을 견뎌냈다. 종일 마스크를 벗을 수도 없었고, 비교과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는 등 온갖 불리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들은 고등학교의 마지막 해와 대학 생활의 첫 해를 코로나와 함께 마치고 시작해야 하는, 누구 말마따나 '코로나 키즈'다. 그래선지 올해 졸업생 중에 재수를 들먹이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어차피 비싼 등록금 내고 비대면 대학 생활을 할 바에야 재수하는 편이 낫다는 거다.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로 1년을 보낸 학교를 흉보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올해 학교 교문이 더 이상 닫혀서는 안 된다는 것. 학교가 2년 동안 연거푸 기능부전 상태라는 건,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마지막 안전핀이 뽑힌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학업성적의 양극화와 돌봄 교실 문제 등은 지엽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 방에서 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상황이 반복되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 고1 중엔 자기 반 친구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학교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그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고1이 고2가 되고, 고2는 고3으로 진급하는 건, 향후 개인은 물론 사회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당장은 코로나 방역이 우선일지라도, 학교 교육 또한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문제다. 가까운 미래에 아이들이 직면하게 될 숱한 문제들에 대한 '백신'일 테니 말이다.
교사는 고통 분담할 준비가 되어있다
아이들이 개학하기까지 아직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있다.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기준으로 하면, 학교의 등교 여부는 늘 '종속 변수'일 수밖에 없다. 올해만큼은 전원 등교 개학을 '고정 상수'로 놓고, 실효성 있는 학교 내 방역지침을 마련할 수는 없는 걸까.
몇몇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교가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말한다. 대중교통 안에서만 조심한다면, 아침 일찍 등교해 밤늦게 하교하며 학교와 집만 오가는 일상이 가장 안전하다는 거다.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이웃들이 숱한 마당에,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것쯤이야 교사도 기꺼이 고통을 분담할 준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