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로나 1년, 우리의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학교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 시설들은 기약 없는 운영 중단을 맞았고, 동네 곳곳엔 불 꺼진 가게가 부지기수입니다. 과연, 이같은 현상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하나 없어졌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과 함께, 우리의 터전이나 다름없었던 공간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봤습니다. 사람, 관계, 추억... 공간과 함께 잃어버린 것들을 되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자기계발 유튜버가 말하길,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돈하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단다.
자기계발 유튜버가 말하길,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돈하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단다. ⓒ pixabay

자가격리 70일째. 눈 뜨자마자 환하게 비추는 천장 조명에 익숙해졌다. 요즘 자는 시간이 들쑥날쑥해 불도 안 끄고 잠자리에 든다. 그래도 일어나면 바로 이불부터 갠다.

자기계발 유튜버가 말하길,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돈하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단다.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규율이 있는 게 좋아서 실천 중이다. 그다음 커피를 타서 책상에 앉는다. 또 다른 '집콕' 하루의 시작이다.

방과 나는 한 몸이 됐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전조가 보일 무렵부터 자체적인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감염병 확진자가 임용고시에 응시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고 공포감이 밀려왔다. 취업 준비생인 나 역시 채용 시험을 치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괜히 어디 나갔다가 코로나19에 걸리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진짜' 자가격리를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언제든 시험 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아직 바이러스가 침입하지 못한 방에 나를 가뒀다. 스터디는 비대면으로 돌리고, 모임은 취소했다. 시험을 보러 가거나 생필품 살 때만 외부인과 최소한으로 만났다.

대학 시절만 해도 방은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입시 생활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방에서도 탈출했다. 대학생이 돼서 동아리 활동과 술자리, 여행을 만끽했다. 공부도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밖에 나가서 했다. 학교 열람실과 도서관은 물론, 카페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잠도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잘 때가 많았다. 친구 집이나 동아리방, 각종 숙소에 몸을 뉘었다. 온갖 유희 거리를 밖에서 즐기고 오면 방은 시간이 멈춘 상태로 나를 맞아줬다.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 뒹굴거릴 때의 행복. 바깥에서 쓴 에너지를 혼자인 내 공간에서 충전하고는 했다.

코로나 이후 3평 남짓한 방의 의미는 달라졌다. 더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게 됐다. 스터디와 모임을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바람에 내 방이 세상과 처음으로 만났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엽서와 포스터 덕지덕지 붙인 벽을 보여줬다. 사생활이 공개된 것 같아 머쓱했다.

방과 나는 한 몸이 됐다. 노트북 카메라가 내 얼굴까지 벽으로 인식해서 가상 배경 설정은 꺼뒀다. 카메라로 나를 비출 때는 방의 모습까지 신경써야 한다. 지저분한 부분은 최대한 가리고 깔끔한 곳만 비춘다. 때에 따라 노트북 카메라 각도가 이상한 데엔 다 의도가 있다.

3평 방에 세운 도서관과 체육관  
 
 방은 총 네 구획으로 나뉜다. 공부하는 책상, 운동하는 바닥, 잠자는 침대, 책 읽는 아지트다.
방은 총 네 구획으로 나뉜다. 공부하는 책상, 운동하는 바닥, 잠자는 침대, 책 읽는 아지트다. ⓒ pixabay

방이 세상과 만나는 동시에 밖에서 했던 일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동네 체육관이 잠정적으로 폐쇄하자 집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요가 매트와 실내 운동화를 새로 장만하고, 각종 운동 유튜브 영상, 운동 애플리케이션을 섭렵했다. 마음먹고 복근 챌린지에 도전했다. 돈 내고 운동할 때보다 왠지 더 의욕이 생겼다.

하지만 방이 너무 좁아 문제였다. 이런저런 물건을 늘어놓아서 정신이 없었다. 요가 매트를 항상 깔아놓으니 운동하는 곳인지, 드러누워 낮잠 자는 곳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됐다. 읽지도 않는 책들은 바닥에 쌓여만 갔다.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가 어렵게 되자, 그래도 독서를 하겠다고 책을 사들인 탓이었다. 얌전하던 방에 과부하가 왔다.

안 되겠다 싶어서 방에 구획을 나누고 규칙을 정했다. 현재 방은 총 네 부분으로 나뉜다. 독서실, 수면실, 체육관, 도서관. 책상과 침대가 하나씩 놓인 독서실과 수면실은 방의 두 기둥이다. 예전부터 방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다.

체육관과 도서관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됐다. 걸리적거리는 운동 기구는 평소 옷장에 숨겨두기로 했다. 운동할 때만 요가 매트를 방 가운데에 펼치면 체육관 완성이다. 높아져만 가는 책 탑도 두고 볼 수 없어서 책장을 샀다. 책장 옆에 삼각 쿠션을 두자 등을 기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방을 정리하니 삶의 질이 대폭 올라갔다.

방에 단점이 있다면 햇빛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햇볕이 잘 안 들어오기 때문인지 남들이 활동하는 시간에 자꾸 낮잠을 자고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잠은 제대로 자지 못하지만, 청력은 증폭된 듯하다. 집에 종일 있으면서 위층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실 노력하지 않아도 음파가 절로 몸에 닿는다.

나도 새벽에 곯아떨어지던 때는 몰랐다. 윗집 누군가의 코골이가 밤마다 온 집안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침에는 모차르트가 환생했는지 각종 동요와 클래식 곡을 피아노로 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깥 활동을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피아노 연주로 푸는 것일 테다. 결국 차음 효과가 좋다는 프리미엄 귀마개를 샀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는 것 
 
 이제 에너지 충전소는 방 안이 아니라 밖이 됐다.
이제 에너지 충전소는 방 안이 아니라 밖이 됐다. ⓒ pixabay
 
시력은 안 좋아졌다. 지난해 마지막 날, 미뤄뒀던 국가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2주 뒤 날아온 결과에 시력이 0.6이라고 쓰여 있었다. 비싼 돈 주고 수술해 1.0까지 교정한 시력이 이렇게 떨어지다니. 방에서 온종일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결과였다.

재난지원금으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샀지만 별 소용이 없었나 보다. 방구석에서라도 콘서트를 즐기고 싶어서 몇 시간 뜬눈으로 가수들 영상을 봤기 때문일까. 안구건조증이 심해졌다. 게다가 방에서는 모든 사물이 눈에서 가깝다. 근시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사물을 멀리서 보면 눈이 시원하다는 사실을 비교 효과로 알게 됐다. 집에서만 운동하면 답답해서 두세 달 전부터 공원에 나가 달리기를 한다. 30m 전방을 주시하며 달리면 눈에 쌓인 피로가 날아간다.

달릴 때는 평소 걸을 때보다 더 많은 게 보인다. 개천에서 잠수하는 새끼 오리들과 구름이 반사된 수면, 햇볕 목욕을 하는 고양이. 이런 풍경을 구경하며 뛰노라면, 지금 내 걱정거리는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방에만 있으니 밖에서 느끼는 물리적 자극이 더 소중해졌다. 이제 에너지 충전소는 방 안이 아니라 바깥이 됐다.

한편으론,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방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 다음에 또 다른 위기가 오더라도 나만의 비빌 언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은 기른 것 같다. 그게 꼭 방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방#공간#집콕#취준생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