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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벼 작황이 좋지 않았단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집에서 삼시 세끼 밥 먹는 가정이 늘면서 전년 대비 쌀값이 지난해 1월 이후 20%가량 올랐다고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떡국떡을 뺄지, 사다 쓰고 말지 고민이 많았다. 정성이 문제지 찾아오는 손님 대접은 떡국이 아니어도 흉잡힐 일이 아니고, 코로나19로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계속되면 많이 뺀들 먹을 사람도 없을 듯했다. 결국 차례상에 올릴 정도만 사서 쓰기로 했다. 
 
 2월 6일(토), 매월 1일과 6일마다 열리는 공주오일장에 나가보았다. 정기장이 열리는 공주산성시장 안에는 이름난 떡방앗간이 많은데,설 명절을 앞두고 가래떡을 빼는 업소가 대부분이었다.
2월 6일(토), 매월 1일과 6일마다 열리는 공주오일장에 나가보았다. 정기장이 열리는 공주산성시장 안에는 이름난 떡방앗간이 많은데,설 명절을 앞두고 가래떡을 빼는 업소가 대부분이었다. ⓒ 박진희
 
지난 2월 6일(토), 차례상 장만을 하러 대목장이 선 공주에 다녀왔다. 공주시내버스터미널 건물에 자리한 떡방앗간 앞에는 첨가물과 방부제를 넣지 않은 떡국떡이 kg 단위로 팔리고 있었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자, 사장님이 안으로 들어와 커피 한잔하고 가란다. 가래떡이나 몇 봉지 사가면 될 일인데, 일행이 있어 내심 든든했나 보다. 방앗간이 제일 바쁠 때인 줄 뻔히 알면서 마다치 않고 성큼 발을 들였다. 

빈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살가운 방앗간 식구가 추운데 드시라며 따끈한 두유를 내민다. 넙죽 그걸 받아 마시며, 방앗간 구경이 시작됐다.

뽀얀 김과 함께 쭉쭉 뽑아지는 가래떡
 
 떡국떡 뽑는 첫 번째 절차는 하루 전날 불린 쌀을 분쇄기에 넣고 가루로 내는 것이다.
떡국떡 뽑는 첫 번째 절차는 하루 전날 불린 쌀을 분쇄기에 넣고 가루로 내는 것이다. ⓒ 박진희
 분쇄기에 걸린 고무벨트가 쉼 없이 돌아간다.
분쇄기에 걸린 고무벨트가 쉼 없이 돌아간다. ⓒ 박진희
 
젊은 직원이 가래떡을 빼기 위해 불린 쌀을 분쇄기에 넣고 가루를 낸다. 그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고무벨트가 참으로 신기하다. 
 
 떡국떡 빼는 두 번째 절차는 쌀가루를 찜기에 넣고 수십 분 쪄내는 일이다.
떡국떡 빼는 두 번째 절차는 쌀가루를 찜기에 넣고 수십 분 쪄내는 일이다. ⓒ 박진희
 고압 증기로 10분가량 멥쌀가루를 쪄내면 뽀얀 김이 올라온다.
고압 증기로 10분가량 멥쌀가루를 쪄내면 뽀얀 김이 올라온다. ⓒ 박진희
 
쌀가루를 채워 넣고 서너 단씩 올린 찜기에서는 뽀얀 김이 자꾸만 올라와 언제까지고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게 했다. 

익은 쌀가루는 두서너 번 성형기를 거치면 가래떡으로 환생한다. 가위 든 여직원은 제 모양을 갖춘 가래떡이 기계를 빠져나오는 족족 적당한 길이로 잘라가며 찬물에 샤워를 시킨다. 
 
 갓 뽑은 가래떡을 먹어 보라고 방앗간 사장님은 시식을 권한다.
갓 뽑은 가래떡을 먹어 보라고 방앗간 사장님은 시식을 권한다. ⓒ 박진희
 
두유 한 병을 비우고 나니 마음씨 좋은 사장님 내외가 이번엔 갓 뺀 가래떡을 맛보라며 권한다. 괜찮다고 사양해도 막무가내다. 못 이기는 척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바로 이 맛이지! 꿀이나 조청에 찍어 먹지 않아도 어찌 이리 맛있는지.

염치 불고하고 내주는 자리 차리하고 앉아 재미지게 수다 떨고, 막 뽑혀 나온 가래떡도 먹고, 의도치 않게 명절 분위기에 흠뻑 취해 버렸다.  

그 옛날 북적이던 방앗간 풍경은 없지만 
 
 가래떡을 굳히는 동안 달라붙지 않도록 용기를 맞춤 제작하는 떡집도 있었다
가래떡을 굳히는 동안 달라붙지 않도록 용기를 맞춤 제작하는 떡집도 있었다 ⓒ 박진희
 단호박, 비트, 시금치나 쑥으로 색을 낸 가래떡도 시판 중이다.
단호박, 비트, 시금치나 쑥으로 색을 낸 가래떡도 시판 중이다. ⓒ 박진희

방앗간에 손님이 넘쳐나던 시절, 방앗간 주인은 싸움이 나지 않도록 대충 찢은 종이에 숫자를 휘갈겨 쓴 번호표를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번호표를 받아 든 손님은 길게 늘어선 빨간 고무대야에 열을 보태고, 다른 볼 일을 보러 잠시 자리를 뜨거나 오랜만에 만난 아는 이와 수다 떨며 순서를 기다리곤 했었다.

그런데 예전처럼 불린 쌀을 들고 와 방앗간에서 떡을 빼는 손님이 많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방앗간 한쪽에는 사람 키보다 높게 가래떡이 쌓여 있다. 나처럼 직접 와서 썰어 놓은 떡국떡을 사가는 손님이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고객들의 몫인 게다.

예전 설 명절에는 미리 몇 말씩 떡쌀을 담갔다가 빼서 말랑말랑할 때 끼니 때우듯 먹기도 하고, 굳고 나면 석쇠나 프라이팬에 구워서 뜨거운 걸 불어가며 간식처럼 먹었다. 그러나 이젠 명절이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래떡을 뽑아다 먹을 수 있고, 돈만 내면 집으로 썰어서 갖다 주기까지 한다. 가래떡을 대신할 수 있는 먹거리도 지천으로 널려 요즘 아이들은 설 명절이라고 어른들이 가래떡 빼 오기만을 목 빼고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사람 정성으로 만들어 파는 걸 사다 쓰지는 않지만, 양이 줄다 보니 우리집 차례상은 해가 갈수록 간소화되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도 방앗간 한쪽에 느긋하게 앉아 있을 만큼 손발은 편해졌는데, 주책없이 오늘따라 없이 살았어도 때마다 모여 북적이던 그 옛날 명절 풍경이 몹시도 그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충청남도청에 보낸 글을 일부 편집하여 송고한 것입니다.


#떡방앗간#가래떡 빼기#방앗간 풍경#설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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