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다는 건> 그림책이었다. 코로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움츠러든 생활 속에서 이 책의 제목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불안해지니 오히려 삶의 소중함과 의미를 더 찾게 되는 날들이었다.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 시선을 두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이 책은 다니카와 슌타로의 '살다'라는 시로 만든 그림책이다. 시는 '살아 있다는 건/지금 살아 있다는 건/목이 마르다는 것/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다는 것/... 너와 손을 잡는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림책은 작지만 애틋하고 소중한 삶의 순간들을 마치 길을 가다 사진을 찍은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과 함께 담고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살아 있다는 건, 지금 살아 있다는 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지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언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니?"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 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어떤 것을 해냈을 때 등 조금 단순하고 투박한 표현이었지만 저마다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들이 말하는 삶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살 수는 없었다. 이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을 똑같이 중요한 삶이었으므로 잘 살아내고 싶었다.
"얘들아.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살아 있다는 건> 그림책을 만들어 보는 거 어때?"
"우리가요? 그럼 작가가 되는 거예요?"
"응. 세상을 향해 너희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가만히 돌아보며, 어떤 순간에 특히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는지 써보자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나의 이야기를 먼저 말해주었다.
"선생님에게 살아 있다는 건, 책을 펼치고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야. 너희들의 눈빛과 언어를 기억한다는 것이지."
일상에서 삶의 감각을 깨우는 순간들에 대해 거침없이 여러 개를 쓴 아이도 있었고, 잘 떠오르지 않는다며 오래 생각한 끝에 어렵게 하나를 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쓴 아이들의 글을 가지고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질문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아이가 온전히 담긴 이야기를 찾아갔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짝수 홀수 나누어 등교하였고, 인원이 많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글을 쓴 후 손바닥만 한 동그란 종이를 나눠주고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그림책 안에 좀 더 예쁜 모습으로 담고 싶어 그림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꽃과 풀, 작은 나무 위에 아이들 그림 한 장 한 장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툴지만 '2020년 열한 살 아이들이 전하는 삶의 의미'라는 부제를 가진 <삶>이라는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하였다. 이를 하드커버의 종이 그림책으로 만들고 전자책으로도 발행하여 아이들, 학부모와 공유하였다.
아이들이 말하는 삶은 이랬다. '살아 있다는 건 학교에 가서 우리를 기다리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 '선생님께 "꿈을 이루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 '혼자가 아니라 우리반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삶은 학교, 친구들, 선생님에 대한 소중함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살아 있다는 건 불고기 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 먹고 감자튀김을 마구 집어먹는 것', '갖고 싶었던 핸드폰을 드디어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하며 아이다운 모습으로 일상의 작은 일들에 즐거워하기도 했다. '살아 있다는 건 행운 그 자체', '내가 세상에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행복한 추억 슬픈 추억 모두 내 마음속에 품는 것'이라고 하며 삶을 향한 자기 나름의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말하는 삶에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빛이 그대로 드러났다. 항상 자신의 꿈은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A는 '살아 있다는 건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그분들을 기억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도서관에 가면 꼭 시집을 빌려오는 B는 '살아 있다는 건 한 편의 시'라고 했고, 축구를 좋아하고 달리기가 무척 빠른 C는 '살아 있다는 건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평소 장난과 웃음이 많은 남자아이들이 삶의 의미를 말할 때는 진지하고 신중했다. '살아 있다는 건 나와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별거 아닌 지나간 순간들도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도 용서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까지 보여주어 내심 놀라고 기특했다.
위로와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림책 <삶>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땅 위에 푸른 새싹이 자라는 모습과 길이를 재는 자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라고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요.'
아이들이 말하는 삶에는 위로와 희망이 담겨 있었다.
내가 아이들과 그림책을 만들며 가장 좋았던 것은 완성된 책 한 권이 아니라 아이들과 쌓은 추억이었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마주하며 이야기 나누었던 순간, 함께 학교 정원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놓고 사진 찍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행복해졌다.
아이들 또한 그런 것 같았다. 칠판 위에 놓아둔 그림책을 틈나는 대로 가져가 보고 또 보며 "선생님, 우리 또 그림책 만들어요"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 살아 있다는 건, 우리가 만든 그림책을 본다는 거예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이들과 이렇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이 시간만이 줄 수 있는 배움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삶이든 삶을 누린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상에는 얼마나 많은 소중함과 경이로움이 있는지 나는 아이들이 만든 그림책을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반 창작 그림책 <삶> https://bit.ly/3hczP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