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작년 1월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 동생이 회사 안식년을 맞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계획했었던 에피소드를 쓴 겁니다.[기자말] |
동생은 현재 직장에서 11년째 재직 중이다. 동생이 다니는 직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 계열사이다. 그래서 복지 정책도 기업 이미지에 맞게 좋은 편이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복지 정책으로 과거 어머니가 병원을 다니실 때 병원비의 일부를 지원받은 적도 있고, 부모님 건강검진도 1년에 한 번씩 지원받는다. 덕분에 아버지의 건강검진은 따로 신경 쓰지 않는다.
표면상으로 지원받은 정책 외에도 아마 더 좋은 복지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동생 회사의 복지정책은 따로 있다. 근속연수 만 10년이 되면 안식년으로 지정하고, 유급 휴가 한 달을 준다. 그것도 기존에 사용 가능한 연차와 상관없이.
복지가 좋은 회사들은 종종 장기 근속자에 대한 처우로 이런 우수한 복지정책을 내세우는 곳을 여럿 봐왔다. 하지만 동생이나 나와 같이 IT업계에 종사하는 경우, 10년 이상의 장기근속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가장 가까운 가족이 이런 혜택을 누린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 10년을 채우기 전부터 동생은 이 안식년에 맞춘 휴가 계획에 많이 들떠 있었다. 특히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보지 못해서 더 그랬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라도 제주도에 모시고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설 제사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은 이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대한 동생의 계획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또 제주도에 한 달 살 집은 구해놨는지, 제주도 가서 무얼 할 건지 등등. 온통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궁금함과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으로 동생과 아내 그리고 내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아, 제주도 한 달 살기 가긴 가니?"
"응, 회사 매니저님에게는 구두로 얘기해놨고, 아마 유급휴가도 곧 신청할 거야."
"아가씨, 그래서 6~7월에는 한 달 휴가 내고 제주도 가는 거야?"
"응, 언니. 우리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까 지수 데리고 놀러 와. 빌려놓은 집도 넓고 좋아."
"그래요. 지수 여름 방학 때 맞춰서 한 일주일 다녀와요."
"와, 언니 오면 정말 좋겠다. 우리 민아도 엄청 좋아하겠네."
그렇게 6~7개월 후의 계획으로 동생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아내와 나도 그 계획에 편승해 제주도를 일주일 다녀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땐 지금과 같은 사태가 생길 줄 모르니까 당연한 전개였다.
하지만 불과 한 달이 지나 코로나 사태 확산으로 제주도를 가는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는가 싶더니 결국엔 동생은 그 안식년 휴가를 내년(2021년)으로 미뤘다. 계약했던 렌트 하우스, 렌트 카도 모두 취소하고, 모든 계획도 전면 취소했다.
그렇게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시간은 흘렀고, 1년 안에 소진해야 하는 안식년 유급 휴가 정책상 올해 7월까지는 휴가를 소진해야 했다. 며칠 전 동생은 조카 유치원 적응 시기에 맞춰 올해 2월 말부터 안식년 휴가를 신청했다고 했다며 내 아내에게 이렇게 알려왔다.
"언니, 민아 유치원 입학하는 시기 맞춰서 어차피 써야 하는 거라 그때 쉬기로 했어."
"아 그래? 잘했네. 그럼 언제부터 휴가야?"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5인 이하 규제 풀리면 한번 갈게 언니."
"그래. 아가씨. 그나저나 제주도는?"
"응, 안 가기는 아쉽고 해서 일주일 다녀오려고. 친구가 거기 가 있거든"
동생과 나는 직장 연차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나이는 다섯 살이나 차이 나지만 동생이 여자이다 보니 회사 경력으로는 2~3년 차이가 전부이다. 게다가 동생은 외국계 회사를 거쳐 대기업을 다니다 보니 아마 급여 수준도 나보다 높을 듯싶다. 물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다른 조건들도 중견기업에 다니는 나보다 모두 좋을 듯싶다.
이것저것 따지면 모두 부럽지만 그중에서도 난 만 10년 근속인 직원에게 안식년 한 달 유급휴가를 주는 게 가장 부럽다. 이십여 년을 쉼 없이 달려온 내게 한 번쯤은 한 달 휴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병가로 한 달을 쉬어보기는 했지만 어디 움직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병원과 집에만 있었던 병가 말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그런 진정한 힐링 휴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제주도 한 달 살기 가고 싶어요."
"나도요, 우리 제주도 갈까요?"
"그럼 정말 좋겠네요. 한 달 살면 난 원 없이 올레길 다닐 거예요."
"헐, 나이 먹고 그렇게 무리하면 무릎 나가요"
"......"
나도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올해가 딱 10년 차다. 내가 재직 중인 회사에도 안식년 유급 휴가 정책이 생기면 좋겠다 싶다. 휴가를 줘도 아들이 고3이니 제주도 한 달 살기 같은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한 일주일 살기만이라도 해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