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지방대학이 위기라는 언론보도가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대학 입시에서 대부분의 지방대학들이 예년에 비해 정원이 크게 미달됐고, 지방의 명문대라 불리던 대학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보도입니다.
지역에서 보도·발간되는 신문, 방송들은 너나없이 "위기의 지방대 살길 길 있나", "신입생 모집 최악 위기의 지방대", "지방대 소멸 위기 대응 마련 필요"라는 등등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이름 좀 있는 분들, 일부 교수와 몇몇 대학 총장들도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의 생존 해법"이라며 저마다의 해결책을 한두 마디씩 보태고 있기도 합니다.
2월 들어서는 "지방대학 위기 극복 필요하다"라는 보도로 시점이 바뀌더니, "지방대학이 생존하기 위해 각자 도생할 수밖에 없다"라며 학생 장학금을 대폭 확충하거나, 강원대와 강릉원주대처럼 국립대학 통폐합을 시도하는 대학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전합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부터 시작된 지방 대학 위기의 시대에 지방 대학들이 장학금 확충 정도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고만고만한 대학들끼리 통합해서 대학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발상은 애틋하기까지 합니다.
대학 재정도 빈약하고 '수도권 대학이 아니면 2류 대학이라 경쟁력도 부족할 것'이라고 취급받는 지방 대학들이 대학 위기의 시대에 각자 도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고등교육 관련 민간 연구소인 대학교육연구소가 "본격적인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수십 년 이어져온 고등교육 예산과 정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변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머지않아 유례없는 대학 위기가 닥쳐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정부와 국회, 대학과 대학 구성원(교수·직원·학생 등)들은 위기를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일부 대학 총장과 대학 구성원 단체들이 대학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언론에 글을 싣거나 단체 대표자 몇 십 명 정도가 참가하는 기자회견 후 정부나 국회에 의견을 전달하는 면피성 대응뿐이었습니다.
지방대학 위기를 극복하는 수많은 해법이 이미 나와 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21대 국회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고, 교육 개혁을 위해 입성한 문재인 정부 교육부 장관(김상곤, 유은혜)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교육부 관료에 포섭되었을 수도 있고, 기재부의 경제논리에 교육부가 졌을 수도 있습니다.
야당일 때는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와 개혁을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던 민주당은 여당이 되자 이들 법안에 소극적으로 돌아섰고, 국회 교육위원회는 고등교육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한 법안 마련에는 역시 손을 놓고 있습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가 원인이지만 수도권 중심의 고등교육 정책과 그로 인한 고등교육 재정의 수도권 편중도 지방대학 위기를 초래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입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서울·경인 등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학생 1인당 재정 규모는 2176만 원이고 지방대 학생은 1506만 원으로 수도권의 69.2%에 불과합니다.
학생 1인당 국고보조금도 수도권은 386만 원이고 지방대는 181만 원으로 수도권 학생의 46.8%에 그친다고 합니다.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에 대규모 사립대가 많고 이들 대학에 국고보조금과 기부금이 집중된 결과라고 대학교육연구소는 설명합니다.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안 토론회, 대학연구소 임은희 연구원 발제문 중)
수도권 대학을 나와야 좋은 기업에 취직할 수 있기에 지방의 학생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역은 학생 유출로 타격을 받습니다. 취업할 때도 수도권 대학 우대, 지방대학 차별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결과 수도권 대학은 학생 교육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정원이 비대해졌고, 지방대학들은 재정과 규모가 점차 쪼그라들었습니다. 취직에 불리한 지방 소재 대학은 이제는 학생들이 가지 않는, 찾지 않는 대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 균형 발전, 지역 대학 육성 정책이 도입됐으나 역부족입니다. 수십 년 간 이어온 지방대학에 대한 정부 정책의 차별이 사회적 차별로 이어져 지방대 위기는 더욱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 대학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왔지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쳐 오는 동안 지방대학의 몰락은 가속화 될 뿐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원주에 있는 상지대학교 정대화 총장이 언론 기고와 SNS를 통해 "지방대학 위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꾸준히 하고 있어 눈에 띕니다.
이 글의 제목을 '상지대 정대화 총장에게'로 정한 건, 사실은 지방대학 위기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대표적인 인사인 "상지대 정대화 총장께 보내는 글" 형식을 빌려 지방 대학 위기 극복 해법의 첫 번째 단계로 전국의 총장, 교수, 직원, 학생들의 '연대', '하나된 목소리'가 필요할 때임을 호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방대학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수도권 대학만 살아남는 지금의 잘못된 고등교육 정책을 폐기하고, 많은 지방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고등교육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늦었지만 대학 구성원 연대, 대학 구성원의 하나된 목소리가 절실합니다.
전국 대학의 정원 축소(관련 기사 :
"대학이 많아 학생이 없다? 사실이 아닙니다" http://omn.kr/1ofes)와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위한 법(관련 기사 :
"왜 대학에 추가로 지원 하냐고요? 이 법이 말합니다" http://omn.kr/1oa36)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대학 구성원의 실질적인 연대가 필요하고, 이 연대를 통한 정부와 국회 압박만이 현행 고등교육 정책을 바꿔낼 수 있기에 감히 정대화 상지대 총장께, 전국의 대학 교수와 직원, 학생, 조교들에게 '대학 구성원 연대'에 동참하라는 호소를 해 봅니다.
지금의 대학 총장들은 교수, 직원, 학생, 조교 등 대학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학 발전을 논의하는 대상이 아니라 '대학 경영진'에 머물고 있습니다.
교수와 직원·학생·조교는 두 편으로 갈라져 대학평의원회와 총장 선출과 관련해 이해 충돌로 마찰을 빚은 지 오래됐지만 대화로 풀지 못하고 앙금만 쌓이고 있습니다.
교수·직원·조교들은 10여년 넘게 이어져온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어려워 더 이상의 등록금 동결은 어렵다고 하소연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우리나라 등록금 수준이 높은데다가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 오히려 등록금을 반환하고 심지어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교수, 직원, 학생, 조교들은 이해 충돌로 편안한 사이가 아닙니다. 과거와 달리 교수 단체, 직원 단체, 학생 단체 등 대학 구성원 자치 단체 활동이 거의 무너져서 대학 구성원들의 이해 충돌을 조정할 공간도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위기의 시대에 대학 구성원의 목소리는 파편화되어 제 각각의 목소리만 울릴 뿐 하나의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 구성원들의 상황이 이러한 지경이니, "지방 대학 위기의 책임이 정부와 국회에도 있기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적극 나서라"는 대학 구성원들의 절실한 목소리는 조금의 울림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지방대학 문제에 손을 놓고 있어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은 대학 구성원들의 하나 된 요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방대학 위기의 시대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대화 상지대 총장에게 호소합니다.
전국의 대학 총장들에게도 호소합니다.
전국의 교수와 교수 단체에 호소합니다.
전국의 대학 직원과 직원 노조 단체에 호소합니다.
전국의 대학생과 학생 단체에 호소합니다.
전국의 대학 총장, 교수, 직원, 조교, 학생들은 연대해야 합니다! 지방 대학 위기의 시대임을 공감하면 됩니다. 지방 대학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가 원인이나 수도권 중심의 고등교육 정책과 수도권 대학 재정 집중이 원인임을 공감하면 됩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 대학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공감하면 됩니다.
연대를 통해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모든 대학의 정원을 10% 줄이고, 수도권 소재 사립대학은 추가로 현 정원의 40%까지 (단계적으로) 줄이자고 요구해야 합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은 재학생들의 교육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학생들이 넘쳐납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이 학생들 교육에 보다 충실할 수 있도록 이들 대학의 정원을 대폭 줄이는 것부터 지방대학 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이 됩니다.
등록금 외에 마땅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대학(특히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학생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교수, 직원, 조교,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학생 감소로 대학 재정이 줄어드는 부분은 고등교육재정을 늘려 충분히 보전해 주자며 대학 구성원 연대에 참여할 것을 설득합시다. 그러기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하루빨리 제정하자고 대학 구성원 연대의 목소리로 요구합시다.
대학 총장, 교수, 직원, 조교, 학생 등이 '대학 구성원 연대'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현실화 시켜 지방대학 위기 극복의 주요 해법이 될 수도권 대학 정원 축소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요구를 강력히 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에 단순한 의견서 전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방대학 위기를 방치한다면 지방대학은 무너질 것이고, 결국 지방이 황폐화되면 국가 발전이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대학 구성원 연대의 강력한 주장을 정부와 국회가 받을 수밖에 없는 실체적인 연대여야 합니다.
대학 정원 축소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부터 '연대'가 시작되면 지역의 비리 사학 경영진을 엄단하는 사립학교법 개정 요구도, 대학 공공성 강화 방안 마련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사회에서 대학의 존재 의의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토론까지 이어져 나아가길 감히 희망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상지대 정대화 총장께 호소합니다.
전국의 총장, 교수, 직원, 조교, 학생들에게 호소합니다.
지방대학 위기 극복은 대학 구성원의 힘 있는 연대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대학 구성원 연대의 힘 있는 연대만이 정부와 국회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