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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고 최고은 감독이 남긴 쪽지.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고 최고은 감독이 남긴 쪽지. ⓒ 민중의소리 제공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고 최고은 감독이 사망했다.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쪽지를 옆집에 남긴 채로. 당시 최 감독의 나이는 고작 32살이었다. 국내외 단편영화제에 입선한 뒤 영화판에 뛰어든 최 감독은 이후 시나리오 작업을 전전했다. 영화판 용어로 계속 작업이 엎어지며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끝에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 등을 앓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최 감독은 이른바 프리랜서였다. 전도유망했던 여성 감독은 그러나 극빈의 생활고에 허덕였고, 결국 요절했다. 영화계 안팎은 충격에 빠졌고, 문화예술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으며, 사회적 파장도 상당했다. 그게 딱, 벌써 10년 전이다.

"문화예술종사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다. 배려가 없어서 굶는 게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하는 구조가 문제(다)."

그해 2월 국회에서 열린 '한국 영화예술계 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 당시 김정진 영화인 복지재단 대외협력위원장은 이런 주장을 펼쳤다. 두고두고 곱씹을 수밖에 없는 지적이었다. 어디 영화인들만의 문제일까. 대부분이 프리랜서인 문화예술종사자들, 특히 아직 '이름값'을 얻지 못한 프리랜서들 대부분이 처한 현실이 그렇지 않았을까.

대다수가 공감하지만 마땅히 대안은 없었던, 최 감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현실 말이다. 그리고 그해 10월 '문화예술인의 근로자 인정',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및 기금 마련' 등이 포함된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많은 프리랜서 예술인들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복지'가 아닌 '권리'를 자각하고 주장할 만한 여유를 갖게 됐을까.

'권리'를 '인증'하기

최고은 감독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2021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피해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사망자도 사망자이거니와 수많은 업종의 노동자들이 생계에 타격을 입었다. 생계 곤란에 빠진 프리랜서 노동자들 역시 부지기수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섰다. 신속하게 재난지원금 지급을 약속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3차 지원까지 총 75만 명의 특수고용자‧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이 재난지원금(긴급고용안정지원금)의 혜택을 받았다고 밝혔다.

작년 7월부터 해당 지원금을 3차에 걸쳐 총 250만 원을 받았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시나리오 작가 자격으로 신청을 했고, 가까스로 2019년 적용 기간보다 2020년 같은 기간 소득이 줄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최 작가의 사망 기사를 썼던 기자 입장일 땐 몰랐다. 나의 '가난'을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무엇보다 비루한 일인지를.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3.3% 사업 소득 원천징수 내역을 살펴봤고, 전년보다 25% 감소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물론 2019년 소득이 5천만 원 이하여야 했고, 해당 기간엔 50만 원 이상 소득이 발생해야 했다. 이밖에도 세세한 기준을 맞춰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1차 지원금을 지원하던 지난 7월, 해당 기준에 맞춰 기준일 오전 10시에 온라인 신청을 마쳤다. 국가로부터 150만 원을 받는 일과 내 '가난'과 '소득 감소'를 증명하는 일은 솔직히 유쾌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누구는 나라가 주는 '공돈'을 받는 게 어디냐며 질책할지 모를 일이다. 지역 카페 등을 둘러보니, 자격이 안 돼 대상자에서 탈락했다는 하소연과 정부 욕을 늘어놓는 특수고용자‧프리랜서들도 수두룩했다. 당시 지급일이 2~3주 정도 미뤄지면서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노심초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국민 세금을 지원금 형태로 받는 일은 그렇게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이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란 재난으로 인해 국가가 지급해 주기로 한, 그것도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받는 일은 과연 혜택인가 복지인가, 그도 아니면 권리인가.

그런 상황에서 프리랜서 예술인들을 위한 고용보험은 쉬이 정착할 수 있을까란 물음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자신의 가난을, 빈곤한 상황을 증명할 수 없는 프리랜서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중에 알았다. 고용노동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 이전, 서울시가 지원한 프리랜서 지원금은 아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서울시는 평소 프리랜서들을 위해 어떤 지원책을 마련해 뒀는지를.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새로운 서울시장이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우선의 정책은 무엇일까.
새로운 서울시장이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우선의 정책은 무엇일까. ⓒ 픽사베이
 
지난 2018년 4월, 서울시는 프리랜서 1000명을 대상으로 국내 첫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조사 결과, 프리랜서 월 평균 수입 152만 9000원으로 최저임금 이하였다. 계약서 없이 '관행'대로 보수를 지급하는 형태가 다수였고, 상당수 프리랜서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계약해지 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답변이 무려 60.9%에 달했고, 프리랜서 4명 중 1명은 임금체불을 경험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44.2%에 달했다. 또 프리랜서의 절반 이상(54.6%)이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일감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프리랜서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이었을까.

'법률이나 세무 관련 상담 및 피해 구제 지원'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부당 대우 및 각종 인권침해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불공정계약(거래) 예방을 위한 표준 계약서 사용 의무화', '고용보험(실업급여) 및 산재보험 등 4대 보험 적용 및 보험료 지원', '안정적인 일감 유지를 위한 매칭 시스템 마련 및 지원', '사실상 노동자 성격의 프리랜서의 직접고용 및 근로기준법 적용', '프리랜서 적정 보수 단가(사례비) 표준 가이드라인 도입' 등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3년 전 실시된 해당 조사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거칠게 요약하자면, 부당 대우 등은 산적한 대신 이를 상담할 곳도 피해를 구제해 줄 곳도 마땅치 않다는 데 있지 않을까. 또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등은 언감생심인 반면 표준계약서 작성이나 적정 보수 단가 가이드라인은 예나 지금이나 요원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았던가. 즉, 일한 만큼 돈은 못 받는 프리랜서들이 널렸으나 그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막막한 현실이 잘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서울시장이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우선의 정책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바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일깨울 수 있는 현실적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최소한 자기가 일한 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권리 말이다.

10년 전 최고은 작가이자 감독은 변변한 시나리오 창작 과정에서 변변한 '기획개발비'를 받지 못했다. 그건 상업영화로 데뷔하지 못한 감독들이, 시나리오 작가들이 지금도 빈곤을 겪어야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자기가 정당하게 노동한 글 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3년 전 서울시의 조사 결과는 여타 프리랜서들도 그런 억울한 상황을 호소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프리랜서들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며 다시 한번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내가 과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내 '값진' 노동이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는지 재차 헷갈렸을지도 모를 일이고.

예술인 복지법 통과 이후 예술인재단이 문화예술인 자격을 '인증'한 자에 한 해 '복지' 개념을 도입, 실행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전체 프리랜서들이 대상도 아니요, 예술인 복지법조차 사각지대의 열악한 처우의 프리랜서들을 다 아우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리라.  

반면 프리랜서들의 열악한 처우는 이미 파악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저 대안을 실행하기 어려울 뿐, 그런 정책을 실행한 세금이 충분하지 않을 뿐. 현실적 어려움이라 쓰고 핑계라고 읽을 상황은 차고 넘칠 것이다. 수혜가 아닌 권리를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코로나19 시대는 그런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만천하에 알린 계기가 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역시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정책 제안을 받았다(관련 기사 :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정책 아이디어 쏟아낸 프리랜서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실제로 달 것이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새롭게 당선될 서울시장은 그런 '실행'을 실천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서울시장#프리랜서#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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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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