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4월 1일 오후 2시 30분]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오후 11시. 이미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 날짜와 시간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유난히 늦어진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옷을 갈아입은 뒤 이를 닦고 있었다. 가뜩이나 피곤하던 차에 응원하던 야구팀이 라이벌 팀과의 경기에서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고 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터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시라도 빨리 잠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에서 한창 이를 닦던 그 시간, '그토록 애가 타게 찾아 헤맨 이상형'을 만난 것도 아닌데 나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사력을 다해 간신히 119 구급대에 연락을 하고 그대로 실신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의학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익숙한 배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급성 뇌출혈'로 인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것이다.
평소 뇌출혈이라는 병에 대해 무지했고 건강에 대한 과신이 있었던 나는 빠르면 2~3일, 길면 일주일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훌훌 털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면 될 거 같았던 입원 치료는 3곳의 병원을 옮겨 다니며 무려 6개월 동안 이어졌고 뇌출혈 후유증으로 생긴 왼쪽 편마비는 10년이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나의 재활은 '실패'한 것이다.
'완치 불가' 판정 받고 더욱 강해진 오기
몸이 아픈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드물다.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든데 정신은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기 때문이다. 나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뇌에 고여 있는 피를 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자칫 고여 있는 피가 다른 혈관을 누를 수 있어 수술 시기를 잡는 게 조심스러웠다. 결국 수술을 받는 데까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수술을 받고 일반병실로 옮겨졌을 때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걸어 다니긴커녕 보호자나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앉았다 일어나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혼자 병실 안 화장실을 오갈 수 있을 때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병원에서 담당 교수로부터 "'뇌경색'과 달리 '뇌출혈'은 완치가 사실상 힘듭니다. 대신 최대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열심히 재활하세요"라는 잔인한 말을 들었다.
처음 중환자실에 실려 왔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절망감에 빠졌다. 이제 만으로 30세에 불과한 젊은 청년에게 완치가 힘들다는 말은 사형 선고나 다름 없게 들렸다. 아무리 의사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환자를 대해야 한다지만 어디 그게 젊은 환자에게 할 이야기란 말인가. 나는 의사가 해준 의학적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나에게 닥친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의사로부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은 후 내 '재활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그리고 보란 듯이 재활에 성공해 이 의사를 찾아가 "당신 덕분에 오기가 생긴 건 고마운데 앞으론 환자들에게 절망보다는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시오"라고 건방지게 충고를 하는 상상을 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휠체어 없이 병원 건물 안을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회복됐다.
4월에 병원에 입원해 대학병원 두 곳을 거치며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고 학창 시절 우상이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잇따른 비보에도 슬퍼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7월 재활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3개월 동안 낮에는 병원에서, 저녁에는 병원 근처를 걸어 다니면서 재활에 매진했고 2009년 10월, 6개월의 입원 생활을 마쳤다.
'
완치' 포기했지만 '생존' 위한 재활은 현재진행형
퇴원 후에도 '완치'를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3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던 재활병원에 일주일에 3회씩 통원치료를 다니며 재활치료를 이어갔고 중풍치료에 권위가 있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한방치료를 병행했다.
한의원에서는 내 증상을 확인하더니 개당 2만 원이나 하는 한약을 권유했는데 나는 큰 의심 없이 고가의 한약을 매일 1년 동안 복용했다. 약값만 700만 원을 상회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경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발병 초기, 또는 수술 직후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상태가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수준, 즉 양팔과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2012년 4월 26일 그동안 재활을 위한 노력이 좌절되는 일을 경험했다(이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날 영화 <어벤저스>가 개봉해 저녁에 예매를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 동네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 갑자기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경련과 마비 증세에 시달렸다. 이미 한 차례 같은 경험을 했던 나는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수술을 받은 병원으로 '셀프 입원'을 했다.
주치의와 면담을 하며 3년의 재활 과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환자분이 너무 무리하신 거 같습니다. '완치'를 기대하지 마시고 적절한 휴식과 재활운동을 병행하시면서 천천히 일상으로 복귀하세요"라는 냉정한 조언이었다.
의사의 충고를 무시한 채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근거 없는 '뇌피셜' 하나만 믿고 3년 동안 무리한 재활을 강행했던 것이다. 다행히 재입원 후 검사 결과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퇴원 후 9년 동안 3번째 입원도 없었다.
하지만 발병 후 3년 동안 악착같이 시도했던 나의 '완치'를 위한 재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지금이야 당연히 정신을 차렸지만 완치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다시 들었을 땐 늦은 나이에 꽤 긴 방황을 하기도 했다.
여전히 편마비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의 나는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꾸준한 식단조절과 운동을 통해 '완치'가 아닌 '생존'을 위한 재활을 이어가고 있다. 생존을 위한 지금의 재활마저 멈추면 나는 그나마 되찾은 건강도 다시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조금은 쓸쓸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혼자만의 외로운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