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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오마이뉴스>에서는 'OO에 산다는 것'을 주제로 2021년 첫 기사 공모를 합니다. 4월 14일까지 기상천외하고 무궁무진한 시민기자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편집자말]
[이전 기사] 요즘 구하기 어렵다는 전셋집 계약한 사람입니다 http://omn.kr/1onhk

"그래, 그럼 넌 얼음정수기 해! 나는 빔프로젝터 할 거야!"

고작 4~5평 정도가 더 늘어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자 신이 난 동거인과 나는 그간 원룸 오피스텔에서는 결코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선 밥을 먹고 업무도 볼 수 있는 넓은 책상을 샀다. 그리고 책을 가지런하게 꽂을 수 있는 5단짜리 책장도 2개나 들여놓았다. 

대체로 동거인은 내 의견과 취향에 맞춰 내가 사들이는 물건들을 좋아해 주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국 정확히 각자 한 가지씩 물건을 이유로 우리는 작은 마찰을 빚었다. 

그 물건은 바로 얼음정수기와 빔프로젝터였다. 동거인은 정수기를 사고 싶어 했고 나는 빔프로젝터를 사고 싶어 했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 원하는 물건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얼음정수기와 빔프로젝터의 경우 주변 지인들은 사기를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 다 비싸다! 

나 : "얼음정수기가 우리에게 꼭 필요할까? 얼음은 거의 여름에만 먹지 않아? 필터가 장착된 물병이 더 저렴하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얼려 먹을 수도 있는데 얼음정수기는 매달 물값이 너무 많이 나가는 거 아니야?" 

동거인 : "얼음정수기가 있으면 따로 카페에 갈 필요도 없고 그러면 커피값도 지출할 필요 없을 거야. 나는 그리고 봄·가을에도 얼음을 많이 먹잖아. 여러 가지로 고려하면 얼음정수기가 더 돈을 아끼는 길이야."


동거인 : "빔프로젝터 말고 차라리 TV나 LCD 모니터를 사는 건 어때? 빔프로젝터는 낮에는 거의 빛 때문에 보기 어렵다는데..."

나 : "TV를 사면 높이에 맞춰서 TV장도 사야 하기 때문에 빔프로젝터를 사는 게 훨씬 나아. 그리고 조금 돈 들여서 좋은 거로 사면 낮에도 선명하게 볼 수 있대."


서로 각자의 논리가 있었고, 각자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나름대로 만들어둔 논리에 반박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100% 반박하면 무엇할 것인가. 같이 사는 건 적어도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각자 원하는 게 '하나씩' 있으니 각자 '하나씩' 양보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 그러면 얼음정수기랑 빔프로젝터, 둘 다 사자!" 땅땅땅! 우리 집 대법관인 내가 가상의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렇게 좋을 수가
 
 넷플릭스
넷플릭스 ⓒ 언스플래쉬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여전히 얼음정수기와 빔프로젝터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장 만족한 것도 얼음정수기와 빔프로젝터였다. 서로가 산 물건을 두고 "그래, 잘 샀다!"면서 등을 두드려주었다. 

결과적으로 얼음정수기는 좋은 선택이었다. 더이상 물을 마시고 난 뒤 플라스틱 페트병을 내버릴 일도 없었다. 우리는 플라스틱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갓 내린 얼음을 포함해 다양한 음료를 대접할 수 있었다. 

나는 주로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동거인은 차가운 물을 마시는데 따로 페트병을 둘 필요도 없이 정수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니 너무나 편리했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정수기 요금에 이 모든 것들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니 결코 그 금액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빔프로젝터는 환희 그 자체였다. 나는 매일밤마다 퇴근하고 넷플릭스와 왓챠를 비롯한 각종 OTT 서비스를 켜고 잠들 때까지 그 안에서 살고 있다. 진득하게 보는 영화가 지겨워질 때면 몇십분짜리 짧은 영상 콘텐츠를 보기도 한다. 영화나 자체 콘텐츠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 예능과 드라마까지 그야말로 모든 영상 콘텐츠를 집대성해놓은 이 무시무시한 플랫폼의 장악력에 놀라곤 한다.

잠시 코로나19로 인해 9시 이후로 영화관이 문을 닫아 심야영화를 보러가지 못할 때도 빔프로젝터는 좋은 선택이었다. 나 같은 직장인에게 9시 이전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빔프로젝터에 접속해 있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심지어 SNS에서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 서비스 관련 계정을 팔로우해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스타들의 키워드인터뷰나 상영 예정작 소식을 접한다. OTT 서비스 '콘텐츠 종료 예정작'만을 따로 소개해주는 SNS 계정을 팔로우해서 해당 영상 콘텐츠가 종료되기 전에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보는 건 물론이다. 

OTT서비스 아이디를 가족끼리 공유하면서부터 내 일상생활 속에 얼마나 깊숙이 넷플릭스가 들어왔는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요새 종종 전화를 거는 내게 "(OTT서비스에) 볼 거 있으면 좀 추천해줘"라고 말을 건다. 나는 얼마 전에 내가 봤던 좋은 영상 콘텐츠를 엄마에게 소개해주고 엄마도 얼마 전에 봤던 영화를 내게 소개해주느라 바쁘다. 집안일로 인해 시간이 없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자주 놓쳤던 엄마도 요새 부쩍 영화 소비량이 늘었다.

복잡한 심정
 
 영화관
영화관 ⓒ 언스플래쉬
 
그렇다. 나는 오후 6시 이후로는 OTT 서비스 안에서 살고 있다. 영상 콘텐츠에 푹 빠져서 헤엄치다 보면 낮에 생긴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도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잠들 무렵까지 나만의 '작은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팝콘이나 콜라는 없다.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신작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훌륭한 사운드도 없다. 그래도 좋다. 사실 정작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건 다른 곳에 있다. 

나는 국내외로 복수의 OTT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기는 하지만 OTT 서비스가 콘텐츠 시장의 최강 포식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잘 나가는' 넷플릭스와 계약하려고 동구 밖까지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윤리적인 콘텐츠 소비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간혹 이 동거가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저 불법 다운로드를 안 하고 OTT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철저히 콘텐츠의 소비자가 되면서 내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콘텐츠 생산자까지 상생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영화관 티켓값이 지금보다 더 오른다는 소식에 정말이지 심란했다. 앞으로 나는 영화관에 가는 일을 지금보다 더 줄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상생이라는 길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이런 불편한 감정을 안고서 당분간 이 OTT 서비스와의 동거는 계속될 것이다. 대체로 안락할 것이나 가끔 불편할 것이다. 하루 빨리 콘텐츠 소비에 대한 윤리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넷플릭스#왓챠#OTT#영상콘텐츠#빔프로젝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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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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