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이 무너졌다. 뉴스에는 코로나와의 전쟁이라는 비유가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비유가 아니라, 지금의 세상은 정말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과 같다.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폭탄이 떨어져 공장과 집들이 무너지듯, 코로나로 인해 공장과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최전방에서 코로나와 싸워야만 하는 병원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간호사인 나에게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서울대병원같이 중증도가 높은 병원의 응급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것은 원래 힘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환자를 직접 담당하지 않는 나로서는, 흔히 생각하는 격리복 속에서 땀에 찌들어 일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다만 코로나 이후,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힘들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면회가 금지된 상황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일 정기 면회 시간이 두 번 있었고,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은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면회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면 금지되었다.
중환자실에는 일시적으로 상태가 나빠져 입원한 환자도 있지만,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도 매우 많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여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일주일,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가족들을 만날 수 없다. 가족들 역시 환자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제발 환자를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보호자도 있고, 자식이 아버지를 보겠다는데 왜 못 보게 하냐며 거칠게 화를 내는 보호자도 있었다. 면회가 금지된 이유를 설명해줘도 죽음을 앞둔 가족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환자가 사망할 경우 임종 면회를 시켜주거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의 경우 예외적으로 아주 짧게 면회를 허용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던 이 면회로 인해 얼마 전 응급중환자실에서는 큰 소동이 있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왔던 아버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부랴부랴 추가로 검사받은 환자 역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입원 당시 시행한 코로나 검사에서는 환자가 음성이었기 때문에 그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환자와 접촉한 교수와 전공의는 물론이고, 서른 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직무배제 대상이 되었고 응급중환자실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가 말 그대로 초비상이 걸렸다. 중환자들을, 그것도 코로나에 노출된 중환자들을 어디로 보낼 수도 없고, 그 환자들을 간호해야 할 간호사의 절반이 직무배제로 출근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음압격리실이 아닌, 개방된 환경에 코로나 확진자가 머물렀던 응급중환자실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다.
적어도 고민이라도 하는 사회
갑작스레 직무에서 배제된 수십 명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머지 직원들의 근무스케쥴은 다 뒤집어졌고, 그 환자가 거쳐 갔던 응급실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집중 모니터링이 필요한 중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는 간호사들은 코로나에 노출되었던 환자들의 곁을 지켜야만 했다.
코호트 격리 중인 장소에 접촉자를 최소화하는 것에도 간호사들은 예외였다. 중환자실 업무의 특성상 중환자실 경력이 있거나 하다못해 응급실 같은 특수부서에서 고위험 의료기기를 조금이라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전체 병원에서 각자의 휴일을 반납하고 응급중환자실에 파견온 간호사들은 무려 70명이 넘었다. 공기 중에 떠다닐지 모를 코로나바이러스에, 지정된 방 이외에서 음료를 마시는 것조차 금지되었고, 서울대병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인 중환자실의 드넓은 공간 어디에서도 간호사들은 마스크를 내리고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이제 그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응급중환자실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사태의 시작이 되었던 환자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는 결국 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후에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확진자를 통제하고 코로나 확산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아버지가 와서 딸의 손을 잡아준다고 해서 딸이 살아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임종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어떤 것일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딸이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과학, 통계, 숫자 같은 것들만 남은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코로나가 퍼지든 말든 확진자인 아버지를 데려와서 면회를 시켜주라는 게 아니다. 확진 판정을 받았더라도 딸의 임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적어도 고민이라도 하는 사회였으면 한다.
코로나와의 전쟁 이후까지도 준비할 수 있는 시장
애초에 코로나 확산 예방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줄인답시고 면회를 전면금지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의 가족 면회만은 가능하게끔, 면회를 하더라도 코로나를 옮기지 않게끔 안전하게 면회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것이 우리 사회가 비용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나.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족의 죽음이나 임종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모두 체념하고 초연해지지 않고서야 임종 면회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백신이 개발되었다곤 하지만 수천만 명의 국민에게 무사히 접종을 마칠 수 있을지, 한국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에서의 백신접종이 끝난다고 해도, 전 세계 70억이 넘는 사람들도 백신 접종의 기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접종을 마친다 한들 항체가 제대로 생길지,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진 않을지, 질문이 이어질수록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어려워질수록 코로나의 완전 종식이라는 것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언젠가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선언을 하던 날처럼, 전 세계가 코로나 종식 선언을 하며 축배를 드는 날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전쟁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코로나 종식 이후의 세상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서울시장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를 코로나와의 전쟁과 그 이후까지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천만 시민이 살아가는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서 그런 건 일개 시장이 아닌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모른 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뻔히 보이는 문제들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문제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 하는 것까지도 대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시장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와 진짜 이런 것까지 예측하고 있었단 말이야?'하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지금 고작 이런 것에 신경 쓸 때야?'라고 말하는 "고작 이런 것"들까지도 신경 써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시장이 되길 바란다.
코로나에 걸린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딸의 임종을 지킬 방법에 대해, 적어도 고민이라도 해주는 사람이 서울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