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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 임종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와중에 통일 교육을 하려니 첫 단추 꿰는 일부터 막막하다. 강권할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북한이나 통일에 관련된 자료야 여럿이지만, 애초 무관심한 아이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논문보다는 책이 낫고, 책보다는 영상이 더 효과적이다. 솔직히 글의 길이가 A4 한 장을 넘어가면 다짜고짜 한숨부터 내쉬는 아이들이다. 서술형 시험에서 글자 수를 100자 이내로 제한하면, 도리어 그렇게 길게 어떻게 쓰느냐며 더 줄여 달라고 아우성친다.

글의 길이나 두께와 상관없이 종이로 된 책을 들고 다니는 것조차 귀찮아한다. 좋아하는 만화도 웹툰으로 보고, 신문 기사도 태블릿 피시나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그마저 스크롤이 여러 번 필요한 글이면 곧바로 '패싱'이다. '카드 뉴스'로 세상을 읽는 세대다.

길면 재미있어야 하고, 딱딱한 소재라면 무조건 짧아야 한다. 재미도 없는데 길기까지 하면, 그들에겐 차라리 '고문'이다. 과거엔 적게는 서너 권에서 많게는 수십 권에 이르는 대하소설도 가방 속에 넣어 다니며 읽곤 했는데 이젠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하물며, 오랜 시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까닭에 고정관념이 무쇠보다 단단한 북한과 통일에 관한 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이 북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섣불리 아는 걸 맹신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십중팔구는 그릇된 편견이다.

"북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유가 없는, 흡사 노예 같은 존재다."
"북한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소 군사훈련 등 집체 교육을 강요하는 병영 사회다."
"북한은 주민들 다수가 감자나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는 세계 최빈국이다."
"북한에선 어릴 적부터 독재자에 충성 맹세를 강요하고, 결혼과 가정생활에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전체주의 사회다."


오프닝 삼아 북한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보라고 했더니 다들 이렇게 적었다. 북한에 대한 고등학생 아이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성싶다. 하나같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북한은 극심한 빈곤과 고통의 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 역시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 임종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나름의 근거는 있다. 외국의 귀빈이 방문할 때마다 도로를 가득 메운 환영 인파가 열광하며 꽃술을 흔드는 모습에서 북한이 자유가 박탈된 사회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했다. 처벌이 두려워 강제로 동원되어 끌려 나온 것이라는 거다.

북한의 최대 관광 상품인 '아리랑 공연'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공포 정치를 증명하는 사례일 뿐이라고 폄훼했다. 수만 명이 한 몸인 양 기계처럼 움직이는 집체극은 경이적인 광경을 연출할지언정, 오로지 북한의 독재 권력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극심한 가난이다. '쌀밥에 고깃국'은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요즘 아이들의 입에서도 무시로 튀어나온다. 믿기 힘들겠지만, 북한의 주식이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감자와 옥수수죽이라고 답한다.

오죽하면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중국으로 건너가 구걸하며 연명하겠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굶어 죽기 싫어 목숨 걸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는 탈북민들의 잇따른 증언들도 북한을 최빈국이라는 편견을 갖게 했다. 이는 아이들이 통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을 먹여 살리느라 정작 우리의 등허리가 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단연 편견의 압권은 북한의 학생들이 목에 걸친 빨간 스카프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여성 편력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다. 아이들은 빨간 스카프를 독재 권력에 대한 충성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그들의 손에 연필 대신 총칼을 쥐여주면 정예의 소년병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부인이 여럿이라는 걸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 정도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하긴 그들 부자의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는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된다. 자판에 김일성을 치든, 김정일을 치든, 그들의 가계도가 연관 검색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김일성 부자의 여성 편력을 봉건 시대의 축첩 행위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미모의 여성들을 첩으로 삼았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렇게 단정하긴 곤란하다고 말하면, 대번에 여러 유튜버들에 의해 검증된 사실이라고 받아친다.

'사실인 듯 사실 아닌, 사실 같은' 내용이라, 딱히 아니라고 반박하기 힘들다. 확증편향이 뚜렷한 편견인 건 분명한데도 막상 바루기 힘든 건, 그들처럼 나 역시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론이랍시고, 과거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다고 눙치는 게 고작이다.

세계에서 서로를 가장 모르는 나라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 임종진
 
40대라면 모두 공감할 테지만, 대통령이 지역에 행차라도 할라치면 초중고 학생들이 죄다 지나가는 길에 도열해서 이름을 연호해야 했다. 대개 학생주임이 인솔 책임자였으니, 분위기가 살벌한 건 당연지사였다.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의 기억은 '동원의 추억'만 남았다.

'아리랑 공연'과 규모로는 비교할 순 없을지라도 똑같은 방식의 '매스 게임'이 학교마다 있었다. 체육대회나 각종 행사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고, 학교와 학급의 단합과 협동 정신의 지표로 간주됐다. 한 학기 내내 체육 수업이 '매스 게임' 연습으로 대체된 적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북한을 가난하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우리도 오래지 않은 과거에 보릿고개를 겪었다. 태풍 등 자연재해를 입었을 땐 북한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독재 권력에 충성 맹세를 강요하는 것도 기시감이 든다.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집에도 보내지 않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북한에 대한 편견은 더 그악한 편견을 낳고, 편견들이 쌓이고 쌓여 웬만해선 깨지기 힘든 고정관념이 됐다. 남과 북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세계에서 서로를 가장 모르는 나라다. 북한이 주적이라는 규정이 국방부 백서에선 빠졌어도, 아이들의 뇌리엔 아직도 남아 있다.

백두산과 금강산, 평양과 개성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세계에 그보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 지천인데, 굳이 북한 땅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다. 이산가족의 고통에 대한 연민도 예전만 못하다. 하물며 한민족 운운하는 건 고루한 접근법이다.

편견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무지에 가닿게 된다. 따지고 보면, 편견은 서로를 알지 못하기에 생겨나고 굳어진 오해다. 자신도 모르게 씌워진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자면, 우리는 자주 만나야 한다.

결국, '사람'이다. 아이들이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김여정. 2020년 현재 북한의 인구가 대략 2600만 명이라는데, 고작 네 명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뉴스에 등장하는 그들 네 명의 근황을 통해 북한을 이해하는 셈이다.

책 속 사진에 해답이 들어 있다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겉표지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겉표지 ⓒ 오마이북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때마침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사진작가 임종진이 쓴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이 그것이다. 마치 내 고민을 엿들은 것처럼 맞춤한 책이다. 350쪽에 이르는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절반이 사진으로 채워져 있어서 긴 글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부담이 적다. 그나마 글 대부분이 대화체라서 가독성이 뛰어나다.

읽다 보면, 시선이 자꾸만 글이 아닌 사진에 머물게 된다. 기실 글은 사진을 촬영한 작가의 의도와 느낌을 밝힌 것일 뿐, 책의 골간은 북한 사람의 일상을 담은 200여 장의 사진이다. 쪽마다 글을 읽기 전에 사진부터 본 뒤, 자신과 작가의 느낌을 비교해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특이한 건, 사진마다 사람이 피사체라는 점이다. 평양과 백두산 등을 제외하면 북한의 풍경을 담은 사진은 거의 없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신생아부터 주름이 깊게 팬 어르신까지, 북한 사람들의 일상이 주제다. 작위적이기는커녕 하나같이 '몰카'로 여겨질 만큼 진솔한 사진들이다.

실려 있는 사진마다 우리에게 켜켜이 쌓인 편견을 각개격파하는 힘이 있다. 그들의 삶이 우리에 견줘 궁핍해 보이기는 해도 표정만큼은 다들 환하다. 가식 없이 웃는 얼굴과 카메라를 보고 놀라 경계하는 눈빛조차도 순수함이 묻어난다. 말 그대로, '사람 냄새'다.

책 속 사진에는 아이들의 북한에 대한 공고한 편견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확실한 해답이 들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사진은 의심과 불신을 걷어내는 묘한 힘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의 삶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나브로 깨닫게 된다.

누구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껏 북한과 얼마나 '다른지'에 천착해 왔다. 열에 일곱 여덟은 닮은꼴인데도, 부러 두세 개의 다른 점을 부각시켰다. 굳이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걸 으스대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됐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임종진 사진작가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에 실린 사진 ⓒ 임종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과 평화를 꿈꾼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짓눌러온 이념과 체제의 굴레를 벗고, '사람'을 보아야 한다. 오랜 분단으로 인한 편견은 서로 '사람'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 세운 벽이었다. 그 벽을 넘는 것도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사서 아이들과 함께 읽는 것으로 올해 통일 교육을 시작할 작정이다. 북한 관련 도서를 숱하게 찾아 읽었지만, 이 책만큼 북한 사람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을 좁혀주는 자료는 보지 못했다. 이념과 체제 이야기가 빠진 자리에 '사람'이 고스란히 남은 덕분이라고 본다.

지금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지만, 그럴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와중에 통일 교육에 '올인'하는 이유다. 부디 이 책이 널리 읽혀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편견을 걷어내고 통일과 평화로 가는 길에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사서 읽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인다. 북한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둘 필요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사진이 정말 많다. 글 백 편보다 사진 한 장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들이다. 그중 몇 장을 소개한다. 그저 쪽수만 적을 수밖에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28쪽, 북한 고려항공의 기내식 사진. 70쪽, 고무줄놀이 사진. 121쪽, 걸어가며 공부하는 학생 사진. 143쪽, 신혼부부 사진. 174~175쪽, 187쪽, 북한 군인 사진. 휴일 풍경 사진. 200쪽, 성묘 사진. 284쪽, 이산가족 상봉 사진. 그리고 328쪽 군악대원의 웃음 사진. 북한은 극심한 빈곤과 고통의 땅이라고 이구동성 말하는 아이들의 편견을 단박에 깨뜨리는 사진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진들 앞에선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보고 또 봐도 재미있고 행복하고 가슴 뭉클했다. 수업 시간에 몇몇 아이들에게 사진 몇 장을 넘겨 보여주었더니, 그들도 사진 속 사람들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똑같네요."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임종진 (지은이), 오마이북(2021)


#통일교육#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임종진#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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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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