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우면산은 방배동과 서초동 남쪽에 있는 산이다. 좌로는 남태령 고개를 넘어 관악산과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양재동 구룡산과 맞닿아 있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 경부고속도로를 내면서 소 머리 분부에 해당하는 양재역 우면산이 분리되어 말죽거리공원으로 바뀌었다.
이번 산책 코스는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시작하여 대성사를 거쳐 우면산 정상(소망탑)에 올랐다가 양재동 방면의 관문사로 내려오는 루트다. 중간에 우면산자연생태공원도 한번 둘러봄 직하다. 관문사 옆에는 충현정묘가 있는데 현재 지도에도 표시가 되지 않는 사당으로서 역사 탐방을 해 보는 의미가 있다. 일목요연하게 진로를 그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지금 남부터미널역 4-2 출구는 공사 중이라 접근할 수 없으니 5번 출구로 나와 좌회전하여 진행하면 된다. 조금 걷다 보면 갓 모양의 건물이 눈에 띄는데, 이 일대는 여러 예술관련 단체(국립국악원과 국악박물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서예박물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관 등)가 이웃하고 있는 복합문화센터다.
광장에는 잔디밭과 함께 음악분수가 운용되고 있으며 바로 뒤쪽에는 자그마한 연못인 우면지가 자리한다. 예술의전당과 오페라하우스 사잇길로 들어서면 대성사가 지척이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오기에 이 뒤편을 찾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화센터인 줄만 알고 있었다가 그 숨겨진 모습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니 산책 코스로 더없이 훌륭하다. 공연연습장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를 들으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면 눈 깜짝 할 사이에 대성사에 다다른다.
용성 스님이 독립운동을 했던 대성사
객을 반기는 듯한 포대화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다. 약사여래삼층석탑과 삼면불, 산신각, 극락전 등의 건물이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의 풍광이 볼만하다. 홈페이지의 안내에 따르면 대성사는 백제 15대 침류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사찰이다.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오랜 여행에 따른 수토병으로 고생을 하던 중, 이곳 우면산의 약수를 마시고 나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 자리에 대성초당을 지으니 이것이 대성사의 출발이다.
근대에 와서는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용성 스님이 주석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찰이다. 만해 한용운이 용성 스님의 사제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일제에 의해 복역하던 중 한글로 된 성경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이에 따라 감옥을 나온 후 금강경을 비롯하여 여러 경전을 한글로 풀어내면서 불교 대중화에 힘 쓴다. 또한, 매헌 윤봉길 의사를 불자로 삼은 뒤에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보냈으며 해방 후에는 왜색불교 타파에 앞장 선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소실이 되었으나 1954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다. 오랜 수난의 역사 때문에 규모가 크지는 않으며 종무소 안(극락전)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목불좌상이 안치되어 있으니 빠뜨리지 말자.
대성사 옆길로 약 15분 정도 오르면 우면산 정상이다. 조망 데크와 함께 소망탑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한강을 따라 용산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남한산성까지 시계가 펼쳐진다. 위로는 남산을 넘어 북한산까지 남쪽으로는 청계산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서초구 제일의 풍경이다.
대각국사 의천을 시조로 하는 천태종 관문사
코로나19가 하루속히 물러나길 기원하며 소망탑을 돌아 길을 나서보자. 양재동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태극쉼터 방면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오며 여기서 관문사로 갈 수 있다. 만약, 자연생태공원이 목적이라면 계속해서 진행하다가 정자 못미쳐 우측길로 하산하면 된다. 이정표가 없으니 조금 헷갈릴 수 있다.
천태종 소속의 관문사는 1988년에 세워진 비교적 신생 사찰로서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지역 주민을 위한 열린도서관, 템플 스테이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불보전, 옥불보전, 법화대보탑 등이 눈에 띈다.
참고로 조계종은 원효대사로부터 시작하여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으며 명상을 위주로 해탈을 얻고자 하는 종파다. 천태종은 의상대사를 시조로 하며 대각국사 의천을 거쳐 발전해왔으며 경전을 중심으로 깨달음을 찾는다.
처음에 이 7층 건물을 보았을 때는 옥상에 한옥이 세워져 있기에 호기심을 유발한다. 가까이 다가서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출입이 제한된 곳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우면산 자락에 있기에 탁 트인 조망을 볼 수는 없지만 불전이 있는 층을 오가면서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경내에는 경천사지10층석탑을 옥으로 재현해 놓았기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다. 문화재청의 자료에 따르면, 원래 이 석탑은 개성 근처인 부소산 경천사에 세워졌으나 1907년 일본에 의해 밀반출 되었다가 많은 부분이 파손되어 1918년에 반환된다. 이후 1960년에 경복궁에 자리했으나 훼손이 심각하여 보존처리 하였다가 200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열리면서 재건립된다.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 2화에서 소개한 중앙박물관의 원본과 관문사의 모본(법화대보탑)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관문사의 안내에 따르면 전 동국대 총장인 황수영 박사와 관련 석학들의 고증을 받아 2015년에 세웠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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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 #13 우면산 대성사, 관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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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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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사 옆, 암산노인정 우측에 아담한 한옥이 2채 있다. 지도에도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는 충현정묘다. 서초구청이 세운 표석을 보니 "고려 공민왕 때 신돈을 탄핵한 언관 이존오(李存吾, 석탄공) 선생의 충신정문과, 조선 초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이래(李來) 경절공의 사당"이라고 적혀있다.
그 옆에는 영조가 석탄공의 11대 손에게 내린 "당령공 이행문 효자문"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담 너머로 사당의 모습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양재1동 주민센터 방면으로 내려오면 양재시민의숲으로 갈 수 있다. 여기에는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데 다음편에서 양재동꽃시장과 구룡산 산책기를 소개하면서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