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새댁이 참 알뜰하네!"
다회용 망사 주머니에 채소나 과일을 담을 때면, 날더러 알뜰하다고 하셨다. 양파 무게를 달아주시는 마트 점원분도, 느타리 버섯을 넣어주시던 재래시장 상인분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어리둥절했다. 나는 한 푼도 득 본 게 없는데 말이다.
부자되려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쓰레기 때문에 지구가 망할까 봐 비닐 한 장, 일회용 포장용기를 거절했을 뿐이었다. 비닐 대신 다회용 망사 주머니에 채소를 담고, 일회용 포장용기 대신 빈 용기에 음식을 포장했다. MZ세대들이 동참하고 있는 '용기내 챌린지(빈 용기에 음식이나 식재료를 담아오는 일)'의 흐름에 나 또한 몸을 맡겼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내 살림보다는 사장님들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마트 사장님 비닐값, 식당 사장님 일회용기값을 아껴 드렸으니까 말이다. 궁금해졌다. 환경보호가 정말 알뜰한 일인지. 지구를 아끼는 마음과 돈을 아끼는 마음의 연결고리를 고민했다.
알뜰한 새댁의 기원을 찾아서
우연인지, 용기내 챌린지를 할 때마다 알뜰하다고 덕담을 해준 분들은 나이 지긋한 장
년층인 경우가 많았다. 밀폐용기를 가져가면 아이스크림 가게의 청년 점원분은 "용기내셨네요!"라고 응대해주는 데에 비해, 나이가 지긋하실수록 알뜰한 새댁이라 칭찬해주셨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을 살림의 관점에서 봐주신 거다.
사례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됐다. 그동안 제로 웨이스트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뿐,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모두 제로 웨이스트를 당연하게 여기고 계셨다.
올해 2월 즈음 일이다. 우리 부부는 휴가 중이었고, 두 아이는 겨울 방학을 맞았다. 네 식구가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식은 언감생심. 나와 남편은 종일 밥하고 설거지 하느라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배달을 시켜먹자니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엄두도 안 나고, 그렇다고 포장을 해오자니 귀찮아서 대충 집밥으로 버티며 지냈다.
"딩동."
벨소리가 나서 현관을 열어보니,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포장음식이 들어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엄마가 다녀가셨다. 2월에는 가족마저 5인이상 집합금지가 있던 때라 엄마는 종종 음식만 현관 앞에 놓고 돌아가시곤 했다.
묵직한 비닐을 집으로 들고 왔다. 그런데 어떤 메뉴인지 가늠이 안 됐다. 포장이 제각각이었다. OO치킨집 비닐봉지와 왕만두집 스티로폼 두 개, 그리고 스테인리스 밀폐용기 하나가 섞여 있었다.
뚜껑을 열었다. 순댓국이었다! 포장 안에는 치킨도, 김밥도, 왕만두도 아닌 순댓국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치킨집 비닐 봉지도, 만두집 스티로폼 용기도 버리지 않고 씻어 말려 다시 쓰셨다. 포장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배웠다. 일회용품도 여러번 쓰면 다회용품이 되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들어갈 때까지 쓰레기가 아니란 걸.
비슷한 일은 시가에서도 반복됐다. 시가에는 집 바로 아래 카페가 있다. 덕분에 아침을 먹고 나면 집 아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시켜 마시는데, 그때마다 집에 있는 머그잔을 식구 수대로 챙겨간다.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고 머그잔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기 위해서다.
시가까지 가서도 쓰레기를 줄이는 품격 있는 제로 웨이스트? 내가 아니다. 그 품격, 시부모님 몫이다. 시부모님은 그 카페에서 커피를 드실 때, 집에 있는 컵을 챙기신다.
"일회용컵 쓸 이유 하나도 없지. 아깝구로(아깝게)."
순대국밥 사장님의 일회용기나, 카페 사장님의 일회용컵을 아껴주는 정성이신만큼, 어른들은 집안 살림도 허투루 낭비하시는 일이 없다. 덕분에 친정과 시가에는 오래된 물건이 많다. 친정 엄마께서는 집정리를 했다며 내가 15살 때 가정시간에 만든 퀼트 필통을 가져다주시기도 하고, 시가에 가면 남편과 시누가 7살 때 쓰던 밥 숟가락을 7살인 우리 딸이 쓰고 있다.
자원을 소중히 대하는 만큼 과소비도 없었다. 덕분에 친정 부모님은 외벌이 철도원 월급으로 삼남매 대학과 시집, 장가 다 보내셨고, 시부모님께서도 작은 꽃집을 같이 경영하시면서 두 남매를 무사히 키우셨다. 양가 부모님의 노후도 비교적 안정감 있게 준비되어 있다.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부자고, 생활 규모를 줄이면 적은 소득으로도 살 수 있다. 이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일상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는 기술에 가깝다. 나는 부모님 세대를 최근 재발견 하면서 '제로 웨이스트' 같은 언어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몸으로 내재되어 있는 이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는 축적하는 것이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문득 '부자들의 절약 습관'을 알려준 재테크 책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은 남의 집이나 공공장소 할 것 없이 빈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아까워서 끈다고 했다. '그깟' 전기세조차 하찮지 않기 때문이다. 낭비를 눈뜨고 못 보는 습관은 경제적 자유에 이르기 위한 기본기였다.
실제로 <백만장자 불변의 법칙>을 쓴 토머스 J. 스텐리와 윌리엄 D. 댄코는 미국부자 1만 4000명을 연구하며 백만장자들의 공통점을 추렸다. 그리고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번만큼 다 써버린다면 그것은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의 생활'을 누리는 것일 뿐이라고. 부는 축적하는 것이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두 저자는 차림새나 사는 집으로 백만장자를 구별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백만장자들의 소비절제는 환경보호와 맞아 떨어졌다. 쓰레기 대란을 다룬 최병성 환경운동가의 책 <일급경고>에는 소비를 경고하는 구절이 나온다.
물건을 소비한다는 것은 소비한 만큼 한정된 지구 자원을 사용하고, 소비한 만큼 쓰레기가 발생함을 뜻한다. ... 이제 우리의 소비가 지구를 아프게 한다는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할 때다. - <일급경고> 중, 최병성 지음
알뜰한 새댁의 연결고리가 풀렸다. 자원을 소모하는 것(소비)은 부유층의 생활을 흉내낼 뿐, 불필요한 낭비를 자제하는 것(축적)이야말로 경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MZ세대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과 장년층의 낭비 없는 살림 습관은 한정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아껴쓴다는 점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내 돈이든, 식당 사장님의 일회용기 값이든, 누구의 돈이라도 절약해준다면 알뜰한 게 맞다. 그리고 이 알뜰한 생활이 지구를 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