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차 있으면 돈 못 모은다."
아마도 이 말은 내가 사회 초년생부터 가장 많은 들은 재테크 조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울산에서 나고 자라 춘천을 거쳐 강릉, 동해에 이르기까지 이동수단의 기본은 차였고, 대중교통은 버스가 중심이었다. 버스는 저렴하였으나 운행 빈도나 코스가 내 마음에 꼭 들지는 않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처럼 전철역을 거리 단위나 시간 단위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방에 거주한다는 건 빈약한 대중교통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원래부터 지방에서만 살았기에 적응 같은 건 필요 없었지만, 대중교통이 잘 구축된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그 촘촘함과 편리함에 놀라곤 했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스물일곱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칠 년 넘게 사귀었던 여자 친구도 같이 부지런히 걸었다. 버스 타기가 힘들면 택시를 타도 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기에 웬만한 거리는 발로 해결했다.
젊어서 그랬는지, 걷기는 꽤 재미있었다. 지금이야 어린 두 자녀가 있으니 100m 전진하는데 십 분씩 걸리지만(유치원생 둘을 데리고 걷다 보면 세상의 온갖 꽃과 신기한 것들과 씨름해야 한다), 그때는 일정한 빠르기로 도착 시간 예측까지 해가면서 다녔다.
차 사면 돈 못 모은다더니... 결혼한다니까 차 없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
문제는 결혼을 결심하면서 발생했다. 연애 시절에는 각자 집에서 따로 출근(나는 직장 주변의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고, 아내는 부모님과 거주)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살림을 합치게 되면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기 마련이고, 거주지가 항상 두 사람의 직장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십 대 중반인 우리에게 차 두 대는 부담이었기에 한 대만 우선 구입했다. 내가 여기서 우선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이유는 차량과 관련한 조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차 있으면 돈 못 모은다던 선배들은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갑자기 새로운 조언을 제시했다.
"아이 태어나면 한 대로 살기 힘들어. 경차라도 한 대 더 마련해야 할 거야."
아, 결혼을 한다는 건 아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차를 두 대 살 수 있는 돈까지 제공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한 대로 시작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약간의 대책 없음과 세상이 수학 공식도 아니고 꼭 두 대일 필요까지 있나 하는 반발심이 동시에 작용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내 주변의 맞벌이 가정은 아이가 있든 없든 대부분 실제로 차 두 대를 운행했다. 출퇴근 문제도 있고, 부부끼리 항상 같이 다닐 수는 없으니까 차 두 대가 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량 한 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우리는 현실적인 대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차가 한 대이니 부부 중 누군가는 걸어서든 대중교통이든 다른 방식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이 조건을 해결하려면 거주지의 위치가 중요하다.
우리는 아내 일터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구했다. 강원도 동해시는 수도권처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지 않아서 적당히 대출을 동원하면 누구든 원하는 동네에 살 수 있었다(예나 지금이나). 도어 투 도어로 집에서 아내의 직장인 초등학교 교실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아내가 한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는 최대 연한이 4년이므로 신혼집에서 최소 4년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나중에 학교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와도 전세금을 빼서 다시 새로운 직장 근처로 이사 가면 된다. 지방 소도시의 장점인 저렴한 부동산(누군가에게는 안 올라서 속 터지는 집값이겠지만)을 십분 이용한 방식이었다. 과연 이 방식은 효과가 있어서 차량 두 대의 운용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이가 이 년 터울로 태어났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했고, 내가 주로 차를 타고 다니며 일했다. 우리 두 사람만 챙기면 되던 시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소아과도 데려가야 하고, 마트에도 가야 한다. 그것도 가족이 한 덩어리로. 아이들은 손길이 많이 간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수시로 돌봐야 할 것도 많았으며, 어떤 행동에 있어 소요되는 정확한 시간 예측도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자가용 자동차는 이동수단이자 거주공간으로서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차량 한 대를 유지했다. 아이들 유치원 등하원은 어떡하냐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여기는 지방 소도시다. 내가 원하는 위치의 교육기관에 아이를 입학시키기가 어렵지 않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모두 집에서 걸어서 15분 내외에 위치한 곳을 골랐다. 정말이다, 골랐다. 위치만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과 시설 등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결정했다. 유치원 입학부터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대도시와 달리 지방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면 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까운 거리였지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등하원 차량을 운행해 주었다. 만일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당장 데리러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마음도 한결 느긋하다.
이렇게 세팅을 마치고 나면 차량 두 대가 생각나지 않게 된다. 일정이 단순해지고 성가심도 줄어든다.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차량 두 대가 꼭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택시를 탄다. 많아 봐야 한 달에 두세 번이다.
게다가 요즘은 택시 호출 서비스가 매우 편리해서, 시간을 못 지키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실제로 아내는 "차 팔고 택시로만 다닐까? 대중교통으로 환경도 지키고 좋잖아!" 같은 무서운 말을 해서 나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다. 아내는 지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지나치게 많은 내연기관 이동수단에 질겁한다. 물론 나도 자연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 돈을 애정 하기에 차량 한 대를 고집하지만, 아내는 '찐' 뚜벅이답게 차 두 대에 선을 긋는다.
차 한 대에 대한 우리 부부의 동상이몽
그러나 때때로 차 한 대가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 부부의 응답 방식은 조금 차이가 난다. 나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 얘기를 먼저 꺼낸다. 우선 고정지출. 차는 해마다 보험료와 자동차세(나는 아직도 배기량이 같다는 이유로 벤츠와 내 차가 같은 보험료를 내는 것이 믿기지 않음)가 나간다.
거기에 유류비, 소모품비, 수리비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에어필터, 배터리는 귀여운 수준이고 엔진 타이밍 벨트 교체 같이 굵직한 수리가 잡히면 백만 단위 깨지는 건 우습다. 나는 유류비를 줄이기 위해 시골 학교에서 근무한 4년 간은 동료와 카풀을 했다. 덕분에 즐겁게 출퇴근 시간을 보내며 유류비도 많이 줄였다.
차는 수명이 있기에 일정 주기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지금 내 차는 2013년 11월에 출고한 쉐보레 올란도이다. 현재는 단종이 되었고, 중고차 시세는 바닥을 기고 있지만(감가상각의 무서움) 여전히 13만 킬로미터 넘게 잘 달려주고 있다.
그러나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이십만 킬로미터가 넘어갔을 때 무슨 차로 바꿔주어야 하는 흥미롭고도 복잡한 계산이 끊임없이 돌아간다. 차량 교체에는 목돈이 들어갈 것이다. 한 대로도 이렇게나 신경 쓸 것도 많고, 지갑도 가벼워지는데 무슨 두 대입니까, 하고 나는 설명한다.
아내는 다르다. 편리함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반환경적이라고 말한다. 편리함의 추구는 그 정도가 끝이 없겠지만 개인 차량은 대표적인 편리의 아이콘으로 만드는데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생산 이후에도 자동차를 운행하고, 유지하기 위해 각종 에너지가 동원된다. 자동차는 현대 산업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은 점점 인간이 아니라 자동차가 다니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차들이 길을 점령하고, 사람이 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자동차를 소유한 입장에서도 많은 정신력이 소모된다. 차는 몹시 성가시고 불편한 물건이다.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엔진 오일, 워셔 액, 브레이크 오일 따위를 갈아주어야 한다. 잊을 만하면 타이어 마모도와 압력을 점검해야 하고, 실내외 세차는 물론 에어필터, 배터리, 방향제 같은 소모품 관리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물질적인 것에 사로잡히게 되고, 무리를 해서라도 고가의 자동차를 고집한다. 이렇게 비교, 경쟁 문화 속에서 물건을 만들고 폐기하기 위해 지구 환경은 파괴되고 물질주의가 심화된다.
첫 차 올란도를 살 때도 아내(당시 여자 친구)는 디젤과 LPG 모델 중 LPG를 강력 지지했다. 디젤보다 배기오염물질량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왕 악행(아내의 입장에서 소비와 과도한 물건 소유는 악행이다)을 저지를 거라면 차악을 저지르자, 이런 마인드랄까.
흠, 어쨌든 우리 두 사람은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떤 지점에서 합의가 되어 차량 한 대를 지키고 있다. 나는 통장 잔고를 지켜서 좋고, 아내는 지구를 지켜서 좋으니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차가 한 대뿐이면 엄청나게 불편할 것 같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진다. 오히려 귀찮게 이것저것 손 보고, 들여다 보는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아예 없으면 4인 가구가 지방에서 살아가는데 난감하겠지만 두 대까지는 아직 필요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