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생일 반찬은 뭐 먹고 싶어?"
"김치 돼지고기 볶음!"
남편의 생일 덕분에 우리는 돼지고기를 돈 주고 샀다. 4개월 만이었다. 김치에 삼겹살만 넣고 달달 볶기만 했을 뿐인데 김치향을 입힌 고기와 쌀밥의 조화는 어찌나 맛있던지. 돼지기름에 윤기가 더해진 묵은 김치의 향도 밥도둑이었다.
그래서 좌절했다. 고기는 하필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고기가 조금만 덜 맛있어도 지구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지구의 기온은 높아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2050 거주 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에 따르면, 최상의 경우 우리는 지구 기온 상승 2도씨를 지켜낼 것이다. 지금의 추세대로 탄소 배출을 한다면 지구 기온은 4.5도씨 상승할 것이다.
최상의 시나리오인 기온이 2도씨 상승하면?
빙상이 붕괴되기 시작하고 4억 명 이상의 사람이 물 부족을 겪으며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북위도 지역조차 여름마다 폭염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 <2050 거주 불능 지구> 중,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지금처럼 살면 4.5도씨 상승한다는데, 4도씨 오른 지구의 모습은 어떨까?
식량 위기가 거의 매년 전 세계에 닥친다. 폭염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9퍼센트 증가한다. (중략) 특정 지역에서는 기후 위기가 원인이 되는 여섯 종류의 자연 재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으며 전 세계 피해 규모를 돈으로 환산하면 600조 달러(오늘날 전 세계에 존재하는 부의 2배 이상)를 넘을 수 있다. 분쟁과 전쟁 역시 2배 늘어날 수 있다.
- <2050 거주 불능 지구> 중,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축산업은 기후위기에 얼마 만큼의 책임이 있을까? 200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축산업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고 보았고, 2009년 월드서치 연구소는 51%로 추정했다. 가축의 트림, 분변, 방귀로 뿜는 메탄가스와 이산화질소 뿐만 아니라, 가축 산업의 삼림 파괴로 인하여 삼림이 포집할 수 있는 탄소의 양까지 손해를 봤다(참고: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민음사).
답은 나왔다. 지구를 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일. 육식 줄이기다. 우리 부부는 지구에서 오래도록 살고자 '고기 소비'에 제동을 걸었다. 고기의 맛을 좋아하지만, 고기의 맛 때문에 지구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자 동시에 원망하게 됐다. 왜 이렇게 맛있어 가지고.
내 돈 주고 붉은 고기 안 사먹기
몰랐을 때는 고기를 맛있게 먹었지만, 알고 나면 참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2020년 9월부터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1. 내 돈 주고 붉은 고기(돼지고기, 소고기)를 사지 않기.
2. 기념일에는 붉은 고기를 먹기.
3. 만두, 라면의 건스프처럼 고기가 포함된 음식은 먹을 수 있음.
어려워보이지만 사실 쉬운 규칙이었다. 우리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가금류는 사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금류 사육의 탄소 배출물이 가장 적기 때문이었다. 밀집 사육된 소고기 단백질 100g당 평균 49.89kg의 탄소를 배출한다. 돼지는 7.61kg, 가금류는 5.7kg다(참고: '기후위기 시대, 채식이 지구를 살린다', 주영재 기자, 경향신문).
먼 미래에 지구에서 가장 많이 발견될 화석이 '닭뼈'라고 할 만큼 대량 밀집 사육되는 양계장의 사정도 안다. 그로인한 동물복지 문제와 AI 같은 전염병 문제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고기 없이 살 자신이 없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자 전기 없이 살거나, 자동차 없이 걷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이듯, 완전 채식도 그만큼 어려운 길이었다.
또한 나와 남편, 그리고 유치원생 두 아이는 회사와 유치원에서 점심으로 나오는 고기 반찬은 맛있게 먹는다. 붉은 육류를 사기 위해 나서서 지갑을 열지는 않지만, 회사 식당에서 제공되는 고기 반찬은 귀하게 여기며 먹는다.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어 한때 죄책감을 갖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오래 간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채식이 지구를 살린다고 말한 <우리가 날씨다>의 조너선 사프란 포어도 사실 공항에서 햄버거 몇 번 먹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쓰레기 없이 산다>는 궁극의 비 존슨도 1년에 항아리 한 개는 배출한다. 소비가 가장 '반생태적'인 행동이라 말하는 <돈 한 푼 안 쓰고 1년 살기>의 마크 보일의 실험도 딱 1년짜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향한다. 완벽하지 않음이 '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최선을 다하면 된다.
애 쓴 결과, 30대 건장한 부부와 유치원생 두 아이로 이뤄진 우리 4인 가족은 지난 8개월 동안 평균 1주일에 한 번 고기를 샀다. 고기를 많이 먹은 달에는 한 달에 다섯 번, 적은 달에는 2주에 한 번 산 적도 있었다.
100% 성공하지도 못 했다. 2월 남편 생일에는 삼겹살도 사고, 몸이 축났던 3월에는 뜨끈한 순댓국으로 몸과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그래프에는 없지만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족발도 먹었다.
우리는 불편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고기를 참아야 해서 불편했고, 고기를 먹을 때마다 후손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고기를 맛있게 먹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보다 더 적은 양과 빈도로 고기를 사 먹으니, 고기 만큼 귀한 반찬도 없다.
유치원생 두 아이 건강 걱정도 덜 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고기도 맛있게, 채소도 곧잘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편식쟁이 둘째 아이가 오이 넣은 김밥을 맛있게 먹을 때 엄마의 감동이란. 큰 아이는 시레기 된장국에 밥을 말아 두 그릇쯤 뚝딱 먹고, 채식 카레는 세 그릇 먹으려 하길래 말렸다.
나는 살림꾼이 되어간다. 닭 한 마리로 네 식구가 세 끼를 먹도록 재주를 부린다. 일단 파, 감자, 무, 버섯 같은 채소를 닭보다 많이 넣고 곰탕으로 푹 고아 끓인다. 네 식구가 닭곰탕을 두 끼 먹고 나면, 남은 국물은 닭죽을 쑤거나 닭칼국수 육수로 사용한다. 닭의 향과 흔적이 남은 국물을 어찌 버릴 수 있을까. 이게 얼마만의 고기인데.
식비 지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기를 덜 먹는다고 밥이 줄지는 않았으니까 당연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기 지출이 줄어서 15구에 9천 원 조금 넘는 자연방목 동물복지 계란(난각번호 1번)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유기농 식재료를 더 많이 사도 하루 식비 예산 15000원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 부모님 밭에 가서 아이들과 쑥과 돌나물, 상추와 아카시아 꽃을 따오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거다.
채식 지향은 유난한 일이 아니다. 더이상 우리집 카레밥에 돼지고기를 넣지 않는 마음은 '안 쓰는 방 불 끄기'의 연장선이다. 한 번 산 재킷이 멀쩡하면 5년은 입어 의류의 환경영향력을 낮추고, 가까운 거리를 걸어다니며 자동차의 탄소배출을 줄이려 애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5년째 쓰는 텀블러에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마시는 감각과 고기를 덜 먹는 감각은 같다.
이 모든 감각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가정 경제를 지켜준다.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단지, 지구를(정확히는 인류를) 살리는 행동 양식이 몇 개 더 늘어났을 뿐이다. 그동안 안 했던 일이라 조금 별나고 유난한 느낌이 나지만, 육식 문제 자체를 알게된 지 얼마 안 된다. 몰라서 안 했지, 알고 나면 한다.
고기가 맛있어도, 새 옷이 예뻐도, 자동차가 편해도, 내가 조금 참으면 나와 후손들이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지속가능한 불편함은 미래의 조상님인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