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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거나, 잠이 든 시간에 글을 썼다. 작가도 아니면서 글을 쓴다고 식구들이 다 있는 시간에 혼자 노트북을 들여다보거나 자리를 피하는 게 민망했다.

혼자 있을 때 식탁 위에 노트북을 켜두고 청소기를 돌리다 떠오르는 문장을 적었다. '이렇게 써 보면 어떨까' 싶으면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앉아서 글을 고쳐 썼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눈으로 살피면서, 부엌에 서서 시금치를 다듬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질문했다.

머릿속이 헝클어져 좀처럼 써지지 않던 글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조금씩 가지런한 모양새를 갖춰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해' 하던 생각이 '잘 키운다는 건 뭘까'라는 물음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가족을 위해 살아야지'라고 나를 억압하던 말대신 '내 시간을 보내면 왜 이기적일까' 묻게 되었다.

조각조각난 시간에 글을 쓰면서도 꾸준히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성실하게 과제를 한 건, 스스로 당연하다 생각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알아차리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늘 시간이 고팠다 
 
ⓒ elements.envato
 
글을 쓰면 쓸수록 넉넉한 시간에 목말랐다. 둘째 아이 초등 입학을 앞두고,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지 않아도 돼 30분이 남았고, 태권도까지 간다고 해 1시간이나 여유가 생겼다. 11살이 된 큰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니, 점점 나 혼자 집중해서 읽고 쓸 시간이 늘어, 앞으로가 더 기대됐다.

바로 그때 셋째가 찾아왔다. 임신한 사실을 알고부터 극심한 입덧에 시달렸다. 남편이 부엌에서 냉장고 문만 열어도, 안방에 있던 내 속이 느글느글해졌다. 잠을 잘 때만 냄새를 맡지 않으니 계속 잠만 잤다. 후각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였을까, 생각이란 걸 할 겨를이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니 쓸 거리가 없어졌고, 쓰지 않으니 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쓰던 글을 안 쓰는 건 밥 먹다 배가 불러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임신 5개월이 지나면서 입덧은 멈추었지만 멈추었던 글은 다시 쓰기 어려웠다. 꾸역꾸역 다시 써봐도 여기저기 마음에 들지 않은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더 막막했다.

하나의 생각을 적어도 일주일은 품어야 A4 한 장 반을 채운 글 한 편이 나온다. 비슷한 시간을 들이더라도 글의 완성도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차피 셋째 아기가 태어나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나와 24시간을 붙어 지내야 할 텐데,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있을까.

나는 더 쓰고 싶은데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더 깊게 생각을 이어 가고 싶은데 울고 보채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글을 쓰고 싶은 내 마음만 미워질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을 붙들고 '악착같이' 해낼 자신이 없었다. 작가도 아닌 내가 글을 쓴다고 누가 읽어줄까,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글을 안 쓰고 글쓰기 모임에 참석도 하지 못한 채 거의 1년이 흐른 지난해 12월 어느 날, 아기에게 젖을 물려 재우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글쓰기 모임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애들 재우는데 깨운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랬다면 정말 미안해요. 글 계속 썼으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예요. 지금 육아로 힘들겠지만 글 쓰는 것 놓지 말기를 부탁하고 싶어서 문자해요."

셋째 아기를 낳고 쉼 없이 하루하루가 흘렀다. 큰 아이들이 매일 집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아기는 10분씩 쪽잠을 잤다. 그것도 안아줘야 겨우 자는 아기를 하루 종일 품에 안고, 큰 아이들을 챙겼다.

아들 셋 육아는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였다. 복작거리는 마음을 글로 써 보면 나아질까 싶었지만, 신세한탄밖에 되지 않는 글도 싫고 그런 내 모습을 직면하는 것도 싫어 그만두었다. 낮에 큰 아이에게 소리 지른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아이들 삼시세끼 챙기느라 내 밥을 굶는 찌질한 모습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는 게 버거웠다.

밤새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곱씹었다. 내가 뭐라고 글을 계속 쓰라고 하는 걸까, 내 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나, 누가 읽어 줘야만 썼던가, 나한테 글을 쓴다는 건 뭐였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애초에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설명할 수 없는 내 삶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함이었다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글이 신세한탄 뿐이라면 그 속에서 또 새로운 나만의 언어가 생겨나지 않을까.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간질거렸다.

더더욱 써보자

글쓰기를 포기하려 했던 건, 익숙한 습관 같은 거였다. 큰 아이를 낳고 '엄마'라면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엄마는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포기와 희생'만이 '엄마'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였다.

늦은 밤, 잠 깨울까 걱정하면서 보내준 응원의 메시지에 나는 다시 쓰고 있다. 마침 글쓰기 모임에서 하루 5문장 쓰기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얼른 손을 들었다. 1월 1일. 하루 다섯 문장 쓰기를 시작했는데, 내가 처음 올린 글은 다섯 문장을 넘어섰다.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그대 글을 다시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아요." 같은 응원의 메시지들이 달렸다.

8개월이 된 아기는 활동량이 늘고, 낮에 30분 정도씩 두세 번의 쪽잠을 자니 내 시간은 거의 없다. 그래도 계속 쓴다. 아기 기저귀를 갈면서, 이유식을 저으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한 줄, 한 줄 생각하고, 식탁 위에 켜 둔 노트북에 틈틈이 옮긴다.
 
더더욱 써보자
무엇을 위하여
아무래도 좋다

-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중에서, 시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일부 

시를 쓴 최승자 시인처럼, 나도 무엇이 되었든 더더욱 써보려고 한다.

#응원#세 아이 육아#하루 5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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