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겨울, 남편과 큰 아이들, 젖먹이 셋째와 고양이들까지 잠든 밤, 멍하니 거실에 앉아 동네 언니가 낮에 보낸 문자를 다시 보았다. 동네에서 타로심리상담 기초과정을 열 계획인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처럼 밥을 하고 젖을 물리다 보면 훌쩍 하루가 가 버렸다. 불쑥 불쑥 찾아드는 공허함은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는 낙담으로 이어졌다.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신호지만,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내 상황만 더 선명하게 비추는 듯했다.

민폐 끼치는 일을 극도로 경계하는 나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 한 번씩 나갔다가 어김없이 겪게 된 일들은 그래서 생채기가 더 깊게 남았다.

"타로 수업을 같이 듣자"는 문자
 
 '아기가 크면 배우지 뭐' 하고 나를 다독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까 싶었지만... 결심했다.
  "아기가 크면 배우지 뭐" 하고 나를 다독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까 싶었지만... 결심했다.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첫째 아이가 6개월 때였나, 윗집 아기 엄마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울기 시작해 그칠 줄 몰랐다. 배가 고픈 것도, 졸린 것도, 기저귀가 젖은 상태도 아닌데 울음을 멈추지 않으니,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가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우는 아기를 달래면서,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데 대꾸 한 마디 없던 기사는 문을 여는 나를 보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사를 앞두고 아이들의 침대를 보러 가구점에 갔을 때다. 잘 꾸며진 키즈 쇼룸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도저히 달래지지 않아, 겨우 안아서 건물 밖으로 나와 한숨 돌리고 있었다. 우리를 따라 나온 건지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려다 본 건지 모르겠는 50, 60대 여성이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애기엄마! 그렇게 어린 애를 데리고 이런 데 왜 와서 고생이야!"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이가 울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했지만, 어쩌다 툭 마주친 눈빛에도 한숨 소리가 섞인 것 같고, '그러게 여길 왜 왔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탔다가 아기가 울 것 같으면 내려서 무작정 걸었다.

식당에 갔다가도 아기의 소리가 커지면 먹던 밥을 두고 나왔다. 그즈음 둘째 아이도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많은 곳은 아예 피하는 게 편했다. 아이만을 위한 곳과 나를 위한 곳을 나누고 남편의 시간을 빌려 첫째와 둘째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간신히 버텼다.

타로 수업을 같이 듣자는 문자를 다시 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던 강좌였고, 집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아기가 울거나 기어 다니면 방해가 될까 봐 걱정부터 됐다. '아기가 크면 배우지 뭐' 하고 나를 다독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까. 어차피 이젠 '엄마'가 아닐 수 없는데, 오롯이 혼자 몰두할 수 있는 완벽한 상태가 오기나 할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때가 지금이라는 걸 알지만, 마음을 먹는 게 하고 싶은 일을 참는 것보다 어려웠다. '못 하겠다', 마음 먹고 딱 끊어낼 수 있는 게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 젖을 물리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나, 새벽에 잠에서 깨 아기 기저귀를 갈 때 같은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툭, 타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 마음을 헤집어 놨다. 하거나, 못 하거나의 이분법 속에서 답장을 하지 못한 채 이틀이 지나고, 다시 문자가 왔다.

"강사님도 아기 데리고 참여해도 된다고 하고, 신청한 사람들한테도 물어보니 괜찮다니까 편하게 선택하길."

다들 괜찮다니 그냥 들으면 간단한데, 오래 주눅 들었던 마음이 나를 붙잡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밥을 지었다. 볶음밥이었는지, 카레였는지, 첫째 아이가 "무슨 야채 넣은 거야? 맛이 이상한데?" 하고 물었다. 평소와 같은 반찬 투정에, 그냥 넘어가면 그만인 걸, 화를 내고야 말았다.

"엄마가 힘들게 해 준 밥인데 투정이나 하고 그럴 거면 먹지 마. 나도 이제 밥 안 할 거야!"

따스함에 기대어 마지막 수업까지 왔다
 
하고 싶은 마음을 따라 살았더니, 매일 나를 돌보는 그 시간이 생기고부터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하고 싶은 마음을 따라 살았더니, 매일 나를 돌보는 그 시간이 생기고부터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 윤여정 광고화면 캡처

관련사진보기

 
아이에게 쏘아 붙이고 나니 문득 타로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락 없이 결심이 섰다. 같이 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타로 카드를 주문했다.

타로심리상담 기초과정은 내가 아이 셋을 키우는 동안 처음으로 아기를 데리고 도전한 나를 위한 수업이다. 아기가 6개월일 때 시작해 8개월이 된 지금은 심화과정까지 듣고 있다.

아기가 울면, 안 그래도 마스크 때문에 크게 말하는 강사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게 느껴지고, 기어가서 다른 사람의 타로 카드를 만지면 나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게 된다. 아기가 잘 놀 수 있도록 온갖 것들을 집에서 챙겨가느라 갈 때마다 가방이 한 가득이다.

그래도 강사도, 수업을 함께 듣는 사람들도 모두 아기를 업고 수업을 듣는 나를 걱정해 주고,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될지 묻는다. 내가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되면 아기를 안아서 돌봐준다. 그 따스함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고, 다음 주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다.

수업을 듣는 동안 매일 밤이 되면 타로카드를 한 장씩 뽑아 그림을 보고 마음을 투사하며 나를 살폈다. 어느 날엔 피곤해서 카드 보는 일을 잊은 채 잠들기도 하고, 어떤 날엔 마음이 동해 새벽까지 글을 쓰기도 한다. 타로심리상담가로 일취월장 실력이 느는지는 모르겠으나, 매일 나를 돌보는 그 시간이 생기고부터 마음에 생기가 도는 건 알 수 있다.

세상엔 다 좋은 것도 없지만,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하거나 못 하거나 양 극단 사이 어디쯤에도 선택지가 있다.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되어 보고서야 알게 된 의외의 소득이다.

태그:#민폐 끼치는 사람, #도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