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이젠 운전할 수 있는 거야?"
"아니."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친구와 만났을 때 정말 운전을 배울 거라며 큰소리를 쳤던 게 생각났다.
"하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아니, 딱히 운전할 일이 없어서 말이야."
난 머쓱해져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내 운전면허증은 15년 동안 세상 빛을 못 보고 있다. 난 왜 운전을 할 거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까. 과거의 나를 원망할 뿐이다. '정말 의지박약한 인간이로군.' 스스로 자책한다. 얼마 전 읽은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떠올리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지구를 위해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게 합리화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아이의 삶은 그 자체로 도전하는 삶
프리랜서로 영유아 교육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최근에 영유아 생활 습관 관련 상품을 맡게 됐다. 먼저 표준보육과정 해설서의 '기본생활영역'을 본다. 손 씻기, 양치하기, 변기에 앉아 배변하는 습관 들이기, 즐겁게 먹기 등의 내용이 있다. 실제 예시도 많다. 1세의 '즐겁게 먹어요'에서 '영아 경험의 실제' 부분에는 이런 수업 내용이 나온다.
식사 전, 교사는 반찬으로 나온 오징어를 보고 수수께끼를 낸다. "다리가 열 개이고 바다에 살아. 뭘까?" "오징어!" 한 아이가 바로 정답을 외친다. "나 오징어 좋아해"라고 누군가 말하자 또 다른 아이가 "나도 좋아해! 맛있겠다"라고 한다. 오징어가 매울 것 같다는 말에 교사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한 후, 무슨 맛인지 함께 먹어보자고 제안한다.
교사가 먼저 입에 오징어를 넣자 한 아이가 따라 넣더니 씹을 때 '꼭꼭' 소리가 난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먹으니 더 맛있다고 말한다. 그 아래에는 숙주나물을 처음 먹어보는 아이를 지도하는 교사의 이야기가 예시로 실렸다. 아이들이 새로운 음식을 겁내지 않고 잘 먹게 하기 위한 지도 방법이다.
그걸 보며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삶은 그 자체로 도전하는 삶이구나. 처음 먹어보는 것도 많고, 처음 해보는 것도 많고, 처음 가보는 곳도 많고. 그 많은 도전이 힘들고 버겁기도 할 텐데 아이들은 그걸 잘 해내고 있구나.
아이들은 그 힘든 시간을 거쳐 능숙하게 말을 하고 걷게 된다. 그건 아마도 아이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아이가 누워 있다가 목을 가눌 수 있게 되고 뒤집고, 기고, 붙잡고 서고, 붙잡고 걷다가 이내 잘 걷고 뛰게 되는 그 과정 사이 사이에는 어른들의 칭찬과 지지가 꽉꽉 들어차 있을 거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열정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의 어릴 적이 생각났다. 친정엄마가 딸을 돌봐주셨는데 어느 날, 내가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게?"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 "아기가 걸었어!"라고 말씀하셨다. "소파 끝을 잡고 걷다가 어느 순간 딱 손을 떼고 걷는 거 있지." 난 소리를 지르며 바로 딸에게 뛰어가 잘했다며 꽉 껴안아 주었다.
말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딸이 엄마, 아빠, 아야, 라는 말만 하다가 15개월쯤 '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비 오는 날, 같이 가는데 딸이 내리는 비를 보며 끊임없이 '비'라고 말했고 그게 얼마나 귀엽고 듣기 좋았던지 나도 딸의 말을 계속 따라 했다.
그뿐인가.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 처음 퀵보드를 탈 때, 처음 피아노를 칠 때, 처음 자전거를 탈 때. 딸이 망설이고 힘들어할 때마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아이는 응원에 힘입어 조금씩 능숙해졌고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딸은 지지해주는 어른들의 응원을 힘입어 모든 도전에 성공했는가? 그건 또 아니다. 지지와 응원이 있어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으면 포기하게 된다.
아이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실력이 영 늘지 않았다. 피아노를 친 지 삼 년이 넘어서야 겨우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에 들어가긴 했으나 결국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만두었다. 그에 반해 합기도는 심사가 있을 때마다 띠가 바뀌더니 일 년도 되지 않아 검은 띠가 되었다. 지금은 시범단까지 하고 있다. 도전하는 마음과 주변의 지지만큼,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다.
수영을 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친구의 말에 마흔 살에 덜컥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역시나 몸치인 나는 우리 레인에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못 견디는 나는 확 그만둬 버리고 싶었지만 물이 내 몸에 닿아 찰랑거리는 그 촉감이 참 좋았다.
이번에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못 배울 거라는 생각에 개인 강습으로 돌려 수업을 받았다. 내 몸이 물 위에 뜨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경험은 날 신나게 했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너 수영할 줄 알아?" 하고 물으며 수영 얘기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과 일대일로 하는 수업도 좋았지만 탈의실에서 서로의 수영 자세를 알려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수영장에 가지 못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초급반으로 가서 단체 레슨을 받아 볼까 보다.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서른 후반에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한번 해 볼까?' 하는 시도와 글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와 열정 그리고 '아, 아직도 이 정도라니. 때려쳐' 하는 순간마다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에 계속하고 있다.
글쓰기 강좌를 신청하기 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 내 글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신청을 망설였다. 하지만 '우선 해보자, 아님 말고'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그 글쓰기 강좌 덕에 새로운 친구들을 얻었고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그래, 내가 항상 의지박약했던 건 아니야. 나에게 관용을 베푼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하니 운전뿐만 아니라 도전했다 포기한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드로잉도 스쿠버다이빙도 스키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배웠지만, '아. 막상 해보니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하다 그만두었다. 나의 열정과 의지가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하고 나니 미련은 남지 않는다.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알 수 없다.
성공적인 도전은 '한 번 해볼까?' 하는 시도와 자신의 열정과 의지, 주변의 지지로 이루어진다. 그럴 때 그 도전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실 우리는 끝없이 많은 도전의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된 사람들이다. 많이 고민하지 말고 '우선 해보자, 아님 말고'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어쩌면 그 도전이 자신의 인생을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