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일한다. 그리고 원무과, 총무과, 시설과 직원도 있고, 방사선사, 병리사 같은 보건직들도 존재한다. 나는 이십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종합병원 총무과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때 나는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이 원무과 직원인 것도 참 재밌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학교에는 학생과 교사가 있다. 그리고 역시나, 행정과 시설, 급식과 보건, 보안을 담당하는 인력 등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한다. 현재 나는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한다.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이 원무과 직원인 것처럼 오늘 학교 이야기의 주인공은 '교육활동 지원인력'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교육활동 지원인력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의 방역이 민감한 화두로 떠올랐다. 올해 우리 학교는 이 방역을 담당할 5명의 교육활동 지원인력을 충원했다. 주요 업무는 학생 등교 시 손 소독 및 발열 체크를 하고, 중식 시간에도 학생들 손 소독과 거리두기, 자리 배치 등을 안내한다. 그리고 일과시간 내내 교내 소독과 보건실 지원을 하고 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십 대부터,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삼십 대 청년과 중학생 아들을 둔 사십 대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과 성별로 학교에 모인 교육활동 지원인력. 이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고, 덕분에 저희가 잘 지낸다는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는 사심을 담뿍 담아.
이들은 생각보다 바빴다. 인터뷰하자고 제안해 두고 정작 시간을 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 같이 모인 10분 남짓한 시간에 먼저 인터뷰의 취지를 설명하고 내 이력도 간략히 밝혔다. 그리고 인터뷰는 시간이 되는 사람부터 1:1로 하기도 하고, 미리 나눠드린 질문지에 집에 가서 직접 답변을 작성해 오시는 정성을 보여주신 분도 계셨다. 그리하여 며칠에 걸쳐 결국 5명의 인터뷰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5명의 이름은 A, B, C, D, E로 표기하며 호칭은 '선생님'으로 통일함을 미리 밝힌다).
올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A 선생님은 학교에는 '진상'이 적어 좋다고 했다. 친구들 중에는 아직 회사를 다니는 경우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비중이 더 높은데 친구들의 '진상' 손님 고충을 듣다 보면 본인은 '아가씨'라 불리지도 않으며, 막무가내의 갑질을 당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처음에는 수줍어 인사도 잘 못 하던 학생이 어느새 친해져 활짝 웃으며 마음 열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했다. 그 학생을 보며 조용한 성격의 A 선생님 본인도 먼저 다가갈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처럼 내성적인 학생들을 좀 더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학생들의 손 소독을 책임지고 있는 B 선생님은 혼자서 '전교생 이름 외우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저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그 순수한 마음으로 매일 아침 학생의 이름을 물어보고 불러주고 웃고 있었다.
학생 한 명, 한 명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무슨 말이든 한마디씩 꼭 건넨다. "오늘 날씨가 좀 춥죠?", "에고, 가방이 무거워 보이네요.", "우와, 머리 잘랐어요? 진짜 잘 어울려요." 등등 꼭 존댓말로, 아주 정성스럽게 말이다.
중식 시간에 식당 입구에서 학생들 손 소독과 거리두기를 지도하는 C 선생님은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있냐는 질문에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매일 밥을 안 먹으려는 학생이 있는데 다른 반 친구가 항상 데리고 와서 같이 먹자고 독려한다는 것이다. 꼬박꼬박 친구를 챙겨 데려오는 학생도, 친구의 정성에 결국 수저를 드는 학생도 참 고맙고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C 선생님 본인 이야기가 아니라 학생의 이야기를 해줄 줄이야. 학교에 있는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선생님이 되어가는가 보다. 학생들을 살펴봐 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뻐서 키보드를 치며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가 잠시 멈추고 C 선생님을 바라봤다.
국어 교사를 꿈꾸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D 선생님도 있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공통점이 많아 인터뷰고 뭐고 시간만 좀 더 있었다면 수다 한 판 떨고 싶은 심정이었다. D 선생님은 작년엔 임용 공부만 하다 올해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하며 실력 향상은 됐을지라도 '내가 정말 학교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들 무렵, 학교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에너지를 얻고 다시 공부할 힘이 생겼다고 했다.
D 선생님의 멋진 표현을 그대로 옮기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예상했던 대로 참 좋아요. 학생들 에너지가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게 있어요. 그 느낌을 다시 느끼면 임용 준비를 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D 선생님은 본인과 같은 방역 인력이 빨리 없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거듭했다. 학생들의 건강하고 유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근처 다른 학교에 중학생 아들이 다닌다는 E 선생님. 이십 년도 훨씬 전 과학실험보조원과 몇 년 전 급식실 조리원으로 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 다양한 직종에 근무하신 E 선생님이 보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이전에는 학교지만 성인들과 주로 업무를 했다면 지금은 학생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또래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학생들을 보는 시선과 말에는 애틋함이 물씬 풍겼다. 다양한 경험을 하신 내공답게 출근길에 반갑게 맞아주시는 학교 보안관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까지 E 선생님의 시선은 여러 곳에 머물고 있었다. E 선생님은 미리 나눠드린 질문지에 집에 가서 답변을 정성스럽게 타이핑해서 나에게 주셨다.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는 E 선생님께는 특별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 도전해 보시라 권했다.
학생들에게서 얻는 에너지
여기까지 읽고 독자들이 눈치를 채 주셨으면 좋겠다. 이들 다섯 명은 모두 학생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더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말이다. 학생들은 꼭 교실의 친구와 교사와만 교류하는 게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과 세심한 관심으로 위안을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며 소소하게 한 번 미소 짓기도 한다.
학교 안에 있는 어른들 역시 학생들에게서 얻는 에너지로 눈물 글썽이는 감동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생각보다 학교는 단단하고 따뜻하게 존재한다. 어른도 학교가 좋으니 학생도 학교가 더 좋아지길 계속해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기꺼이 하게 만든다. 매일 그렇게 희망을 본다.
아, 물론 업무에서 오는 고충도 분명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고 덧붙인다. 일개 교사인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는 있다는 약속을 드렸다.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며 수다 자주 떨어요"라는 사심을 한 번 더 그들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