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생일 선물 두 개 사주면 안 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상 딸아이는 생일이 다가오면 선물을 두 개 사달라고 푸념 섞인 말들을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의 생일은 5월 4일이다. 다음날이 어린이날인 5월 5일인 것을 감안하면 딸아이의 얘기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아내와 난 생일 선물을 조금 더 신경 쓸 뿐이지 딸아이가 요구하는 대로 두 개의 선물을 해 준 적은 없다.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딸아이는 올해 열다섯, 중학교 2학년이다. 이젠 어린이하고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올해도 여동생이 딸에게 선물로 용돈을 넉넉하게 보냈다. 아내는 동생에게 생일 용돈으로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동생은 어린이날 포함해서 준 용돈이라 괜찮다고 했다. 동생의 말에 아내는 열다섯이면 어린이가 아니라고 반박하자 동생의 말이 황당하지만 조카 사랑이 듬뿍 담긴 말로 '훅' 들어왔다.
'언니, 내 조카들은 결혼 전까지 내겐 어린이지. 민수도 어린이날 용돈 민수 통장으로 넣어놨어.'
동생의 이런 조카 사랑은 올해만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애들 커가는 게 신기하고, 안타까워하는 눈치다. 용돈을 받고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아내는 나중에 '너희들이 돈 벌면 고모 용돈은 꼭 챙겨야 돼'라고 동생의 조카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두 녀석에게 상기 시켜 줬다. 여하튼 동생 덕분에 아이들은 어린이가 아님에도 5월의 장기 적금을 예약해 놨다.
나 어릴 적 어린이날에는
내 어릴 적 어린이날이 가끔 기억이 나곤 한다. 난 어릴 때 어린이날이면 부모님과 어디 놀러 갔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 가장 많이 받았던 어린이날 선물은 또렷이 기억난다. 지금처럼 과자가 많이 다양했던 시절은 아니어도 그 시절도 나름의 다양한 종류의 과자들이 있었다. 가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 슈퍼에 갔을 때면 아버지의 손짓에 기분 좋게 달려가 과자 하나씩 집어서 함박웃음 짓던 기억이 머릿속 잔상처럼 흐릿하게 남아있다.
평소에는 그렇게 가끔 하나씩 먹던 과자였지만 어린이날만큼은 여러 개의 과자를 한꺼번에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이름하여 종합 선물 세트, 이름도 누가 지었는지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한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그만한 선물이 없었으니. 나도 어린이날이 되면 그 종합 선물 세트를 늘 기대하곤 했다. 제과 회사마다 종류도 다양해서 아버지는 'H사', 아버지 친구분은 'L사', 삼촌은 'O사'를 선물로 줄 때면 말 그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 시절 가격으로 오천 원 정도 했던 기억인데, 상자 안에 가득 든 과자 상자를 볼 때면 어찌나 행복했던지 아마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 모두 가졌다고 할 만큼의 기쁨이었던 듯하다. 이렇게 선물세트를 여러 개 받는 날이면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도 할 겸 과자 여러 봉지를 들고 나가면 집집마다 아이들은 자기도 선물세트 받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과자 좀 나눠 먹자고 달려들 텐데 아이들 손에는 저마다 과자 봉지 한두 개씩은 모두 들려져 있었다. 어린이날 즈음해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아버지도 이렇게 기뻐하는 나를 늘 봐왔기에 항상 어린이날 선물은 고민 없이 종합 선물세트였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가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서 이젠 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었고, 내게 어린이날 선물은 남의 이야기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내겐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다. 다행히 여동생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까지만 해도 종합 선물세트의 마술은 이어졌다.
하지만 동생이 조금씩 커가면서 아버지는 딸아이라서 그런지 동생에게 인형이나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선물을 사줬다. 아쉽게도 내 종합 선물 세트의 역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도 가끔씩 종합 선물세트 박스를 받았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 주말 장 보러 마트에 가면 종합 선물세트를 찾아보곤 한다. 이젠 쉽게 찾아지지 않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자주 가는 대형 마트에서 보기 어려운 걸 보면. 물론 있어도 덜컥 사기는 어렵겠지만.
지금은 다양한 먹거리들과 건강한 간식들도 많아 예전처럼 '과자 종합 선물세트'가 판매되는 걸 흔하게 보지는 못하지만 그 시절에만 먹었던 과자 종합 선물세트가 그리운 건 따뜻했던 그 시절의 부모님 사랑과 어릴 적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의 향수가 그리워서가 아닐까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 과자 종합 선물세트 상자를 받아 들고 상자를 열었을 때 가졌던 마음은 잊지 못한다.
상자 속에 가득 든 과자만큼이나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도 행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 기억들이 영화처럼 기록된 영상이 지나가는 건 아니지만 단편, 단편 생각나는 그 시절 기억들 속에서는 무엇보다 따스함과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나 보다. 가끔은 내 기억 용량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종종 추억되는 이야기들이라도 오래오래 간직하길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