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부국에서 최빈국으로 전락, 민중이 최대 피해자
아이티는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으로서 독립하였다. 노예주였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1806년 아이티와 모든 교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를 통해 제정하였다.
1862년 미국이 아이티를 독립국가로 인정할 때까지 아이티의 선박은 미국에 입항할 수 없었다. 미국의 노예 소유주들은 경제 봉쇄로 경제가 몰락한 아이티를 놓고 "흑인은 스스로 나라를 세울 수 없을 만큼 열등하다"는 증거라며 노예제를 정당화하였다.
1888년 미국은 해병대를 보내 군부반란을 지원하였고 나아가 1915년에 아이티를 침공하여 1934년까지 통치하였다. 카터 대통령은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아이티와의 무역을 중단하였고 특히 아이티의 원유 수입을 금지시켰다. 부시정부는 경제봉쇄로 대응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아이티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아이티의 해안을 봉쇄하여 무역은 물론 모든 교통을 차단시켰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13개의 식민지 중에서 가장 부유했지만 경제 봉쇄로 인해 20세기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장기간 지속되는 경제제재는 산업기반을 와해시켜 주민들을 빈곤에 빠지게 하였다.
전쟁의 경우 인적 물적 피해가 단기간에 진행되지만 베트남, 독일, 일본, 대만, 한국을 보더라도 누가 이기든 전쟁이 끝나면 복구와 건설이 진행된다. 이에 반해 경제 제재는 국가 재정을 피폐화시키므로 사회간접시설과 산업기반과 같은 사회 전체를 천천히 붕괴시킨다.
에너지, 식량, 의약품과 같은 필수재가 부족하므로 포격이 없을 뿐 아동, 임산부, 노령자, 빈곤층과 같은 사회적 취약층이 매년 대량 학살 수준의 규모로 죽어간다. 제재가 수십년이 진행되면 인명 피해의 정도는 전쟁의 피해보다 확대된다. 하지만 이런 피해는 제재라는 국제법에 의해 정당화되므로 국제사회의 관심이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대량살상무기, 테러, 인권등과 무관한 경제체제 전체의 붕괴를 목표
미국이 냉전 이후 가장 장기적인 경제 제재를 한 나라는 쿠바이다. 쿠바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받아 무역과 대외원조, 무기수출 등을 금지당하였다. 미국은 1992년 토리셀리법, 즉 쿠바민주화법을 통해 국내외 모든 회사의 쿠바와의 거래를 금지하였다.
이법은 "쿠바의 민주화 이행과 인권 보장이 없이는 쿠바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특히 이법은 쿠바에 입국한 적이 있는 모든 선박은 미국에 입국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 법으로 인해 쿠바 무역량의 80%가 줄어들었다.
특히 쿠바의 수입품이 주로 의약품과 식료품이라서 쿠바 주민들의 고통이 격심해졌다. 미국 의회는 1996년 '쿠바자유민주연대법'을 추가로 제정하였다. 이법은 의약품과 식료품, 석유, 원자재 등 모든 미국 상품이 쿠바로 수입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법으로 인해 공장의 80%가 폐쇄되고 실업률은 40%로 급증하였으며 발전소를 가동할 수 없어 정전사태가 일상화되었다. 쿠바나 조선의 경우 자립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국제 제재의 효과가 치명적이지 않았다.
미국 제재, 베네수엘라와 칠레의 경제시스템을 붕괴시켜
미국은 칠레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경제원조 중단, 국제 차관 제공 금지 등의 금융제재 조치를 취하였다. 당시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아옌데 정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자 "세계은행, 국제개발은행,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모든 대출 및 여신 제공을 막을 것"을 지시하였다.
처치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69년 3,500만 달러였던 미국의 대 칠레 원조는 1971년에는 150만 달러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미국 수출입은행이 제공한 신용은 1967년 2억 3,400만 달러에 달했으나 1971년에는 제로였다. 2017년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유가하락과 미국의 제재로 거의 붕괴되었다.
미국은 경제 제재를 통해 "정부의 노선 때문에 빈곤에 빠졌다"는 여론을 확산시켜 반정부 세력을 확산하고자 하였다. 칠레와 베네수엘라는 실제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항의하는 파업과 시위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한국 전쟁 이후 시작한 대북 제재, 핵개발과 무관한 경제 전체을 타겟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조선과 적대관계이므로 조선에 대해 적성국교역법 등을 각종 제재를 해왔다. 그 이후에는 테러지원국 지정을 통해 제재를 추가해왔다. 조선의 핵무기 개발이 본격화되자 미국은 조선에 대한 제재를 광범위하게 확대하였다.
2016년 2월 16일 미국의회는 '북한제재강화법'을 통과시켰다. 유엔과 다른 점은 제재 사유를 핵개발 이외에도 무기거래, 테러지원, 인권탄압, 사이버안전, 돈세탁, 기타 불법행위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미국정부는 2017년 7월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의 사망 이후 미국인의 입북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북에 친지가 있는 재미동포의 인적 물적 교류를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2017년 행정명령에 의해 북에 입국했던 선박과 항공기는 180일 동안 미국 입국이 금지됐다. 공해상에서 북의 선박과 화물을 거래한 선박도 이 제재를 받았다. 미국과 인적 물적 왕래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으므로 이러한 제재는 북의 대외거래를 사실상 중단시켰다.
또한 미국은 북과 금융재정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나 금융기관은 미국 및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게 하였다.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달러결제 시스템도 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세컨더리 제재는 미국이 조선과 모든 경제관계를 단절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나라에게 북과 경제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제재하고 있는 셈이다. 대북 제재가 장기화되어 북의 사회간접시설과 산업기반이 붕괴되면 남북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향후에 남북이 통일이 되거나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이러한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비용은 남한이 부담하게 된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였지만 대북제재처럼 경제전반의 붕괴를 목표로 하는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인 친미국가였다는 점, 인도는 중국봉쇄 정책에 협조한 점, 파키스탄 역시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한 점 때문에 미국 중심의 제재를 피해갈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등을 저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