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조그만 핸드폰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가, 찡그렸다를 반복한다. 온통 머릿속은 글감으로 가득 찼다. 그때 한창 사춘기로 예민한 아들과 게임 때문에 다퉜던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손가락은 모터를 단 듯 속도가 붙는다.
회사에 도착할 무렵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한글맞춤법 검사기에서 오탈자를 수정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리고 온라인 매일 글쓰기 모임 카톡방에 공유한다. 랜선 이웃의 댓글이 달린다.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아빠, 엄마들이다. 그들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보듬어 준다. 한결 편한 마음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토요일 오후, 비장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선다.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테이블 위에는 책과 노트 한 권이 놓인다. 전원을 켜고 줌(Zoom)에 접속하면 창이 뜨고, 하나 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때부터 우리는 책 속의 세계를 눈앞으로 끄집어낸다. 이번에 읽은 책은 유독 난해했다. 다들 그랬다는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천천히 퍼즐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다른 회원의 생각으로 채워가며 조금씩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혼자 읽었으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을, 독서 모임을 통해 용기 내어 발을 내딛는다.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열심히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노트북 전원을 끄며 마음의 평온을 느낀다.
온라인 독서모임과 매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마흔이 되었을 무렵, 길을 걷다 갑자기 숨이 막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뒤로 허무함이 달처럼 차올랐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렸다. 나의 세계는 가족, 회사, 친구가 전부였다.
일에 더욱 집중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셔도 무력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때 우연히 회사 책장에 꽂힌 책을 읽게 되었고, 지인의 권유로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누며, 글을 쓰고 싶은 갈증이 생겨 온라인 매일 글쓰기도 시작했다.
그 뒤부터 나의 세계는 급격히 변했다. 더는 공허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책과 글이 차지했다. 특히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누구를 만나는 것이 부담되는 요즘, 나의 세계는 더욱 넓어졌다.
최근에 참여한 독서 모임에는 호주와 뉴욕에 사는 교민이 함께 참여했다. 온라인 글쓰기에서 만나는 글벗은 나이, 성별이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넘어 우리는 매일 글에서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위로와 공감을 나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책 서평을 올리고 있다. 이곳은 오롯이 책 소개만 하는 공간으로 정했다.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신세계를 만난 듯 설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벌써 소통하는 이웃도 여럿 생겼다. 이렇게 온라인상에 나의 세계가 하나 더 늘었다.
그전까지 사람들과 소통이란 직접 만나는 것이 전부라는 한정된 세계관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간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만들어 놓은 온라인 세상 속에서 책과 글로 소통하며 오프라인 모임 못지않은 충만함을 느낀다.
작년에 온라인 매일 글쓰기 글벗 몇몇과 '오감'을 주제로 글을 써서, '라테 한 잔'이라는 제목으로 메일링 구독 서비스를 시도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엔 꾸준히 독서 모임에 참여한 분들과 함께 독서 모임에 참여한 기록을 엮어 <모든 것은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다>란 책도 출간했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온라인 모임이 오프라인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렇듯 나의 세계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삶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평범한 중년 아저씨에서 '작가'란 호칭까지 얻었다.
앞으로 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또 어떤 재미난 일이 벌어질지 무척 기대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