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죽음의 행렬 앞에 나의 귓가를 맴돌던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가 했던 이야기이다.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면 우리는 또다시 죽음의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가족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도와주세요."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 시계는 2년 6개월이 지나 23살 청년노동자 이선호님의 죽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SNS를 통해 평택항 사고가 전달됐다. 용균이처럼 처참하게 300kg이 넘는 차가운 쇳덩이에 깔려 죽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살려달라는 우리의 외침,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외침
"안녕하세요. 고 이선호군 친구입니다. 하루에 평균 7명이, 해마다 2400명 이상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지만 그게 제 친구 선호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산재 사고가 제 친구까지 죽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선호군의 친구는 1급 보안시설인 항만 내의 '죽음의 외주화' 실상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첫 번째로 무리한 인력의 감축, 두 번째로 전반적인 안전관리 미흡, 세 번째로 구조물의 노후화, 네 번째로 초동대응 미흡, 다섯 번째로 정부의 안전관리 감독부실이었다.
마치 시간이 2년 전 "우리가 김용균이다!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던 그날의 기억 속으로 다시 돌아간 듯했다. 마지막 문구에 참았던 눈물과 잊고 있던 약을 한 움큼 삼켜야만 했다.
"친구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얼른 나와서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제발 제 친구 선호에 대한 관심을 잊지 마시고 힘을 모아주세요."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다.
대통령이 유가족인 고 이선호님의 아버님 손을 잡고 조문했다. 여야를 포함한 수많은 정치인과 정부 책임자가 다녀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고 항만 김용균법도 만들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난 6월 9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 49재 현장에서 나는 다시 이선호님을 만났다. 그는 친구의 간절한 소망처럼 편한 안식처가 아니라 여전히 차가운 냉동고에 누워있다가 지난 19일에서야 따뜻한 하늘로 영면했다. 또 한 청춘의 장례가 끝났지만 '죽음의 외주화'의 고리를 끊기 위한 싸움은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올 1월 이후부터 5월까지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90명이라고 한다. 광주 철거건물 붕괴로 9명의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조합은 철거공사 비용으로 현대산업개발에 3.3㎡당 28만 원을 지불했다. 이후 다시 철거 전문 업체인 한솔기업에 평당 10만 원의 공사비를 건넸고, 그러다 백솔건설이라는 업체에 수주가격의 14%에 해당하는 단돈 4만 원에 재하도급됐다.
김용균의 동료와 나도 여전히 가장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위험은 아래로 더 아래로 책임도 아래로 더 아래로 향한다. 여전하다. 출근한 세 딸의 화물노동자인 아빠가, 생일상을 차려주려 했던 엄마가,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그리고 금쪽같은 딸, 아들이 일터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통보받았을 때 그 심정은 어떨지를 상상해보면 과연 이렇게 계속 죽음의 길로 누군가를 보내는 것이 맞는가 싶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산재사고 사망자를 임기 안에 500명대로 낮추겠다고 공약했지만 지금까지는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의 눈물의 호소가 있었지만 국민을 향해야 할 국회도 그 직무를 유기했다. 남은 임기 동안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노력은 물론, 하루속히 OECD 산재사망 1위의 오명을 벗도록 사회적, 국가의 문제로 받아 안고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늘 보여주기식의 쇼맨십이나 경영계의 경제적 영향 앞에서 타협으로 일관했던 자세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사람 목숨을 최우선으로 놓아야 한다. 그 해결책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재개정을 통한 죽음의 외주화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목숨에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한다.
유가족의 피눈물이 뉴스 1면을 채우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다시 한번 언론과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간절히 소망한다. 피해노동자들이, 유가족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한번 더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또한, 수많은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산재피해자들을 위해 정부가 체계적인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태성은 (사)김용균재단 운영위원이자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