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파브르 곤충기 완역본 2권에는 기문둔갑하는 가뢰 애벌레의 과변태(여러번 탈피)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에는 가뢰가 번식하는 장면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나온다.

가뢰 유충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꽃 위로 기어올라간다. 그리고 벌(뒤영벌, 호박벌 등)이 찾아오기를 무한정 기다린다. 운좋게 벌이 꽃에 들리면 애벌레는 그 위에 올라타서 뒤영벌의 보금자리에 몰래 잠입한다. 그리고는 벌의 애벌레를 잡아먹고 꽃꿀도 먹으면서 가뢰 성충으로 자라난다. 

볕이 따가워지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 경기도의 작은 사찰에서 남가뢰 애벌레를 발견했다. 멀리서 보니 까만 기와에 주황색 꽃잎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렌즈를 가까이 대니 작은 다리와 촉각을 휘저으며 달라붙으려고 아우성이다.
 
남가뢰 애벌레 꽃 위로 기어올라가지 못하면 성충으로 자랄 수 없다.
남가뢰 애벌레꽃 위로 기어올라가지 못하면 성충으로 자랄 수 없다. ⓒ 이상헌
 
이는 움직이는 대상에 무조건으로 반응하는 가뢰의 본능이다. 올라타야만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난장판에 수십여 마리의 남가뢰 새끼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아마도 이렇게 낙상으로 죽은 녀석도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가뢰 성충은 생기다 만 듯한 딱지날개와는 달리 눈에 띄도록 큰 배를 가졌는데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이들의 한살이 때문이다. 뒤영벌을 타고 그 둥지로 들어가서 남가뢰로 자라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극히 작은 가능성이므로 수천 개의 알을 깔 수 밖으며 따라서 알집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종에 따라서는 약 4만 개에 달하는 알을 낳기도 한다. 
 
털보바구미 위에 올라탄 남가뢰 유충들 위치 선정을 잘못하여 결국에는 죽는다
털보바구미 위에 올라탄 남가뢰 유충들위치 선정을 잘못하여 결국에는 죽는다 ⓒ 이상헌
 
한편, 바로 옆 풀밭에서 털보바구미 위에 올라탄 남가뢰 새끼들을 찾았다. 이놈들은 위치 선정을 잘못해서 결국은 다 죽는다. 애벌레는 여섯 개의 다리마다 3개의 갈고리 같은 발톱이 달려있어 다른 곤충의 털을 잡고 올라타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어떤 종은 기막힌 사기극을 벌이는데, 수백 마리가 뭉쳐서 암벌로 위장을 하고 심지어는 짝짓기 페로몬까지 풍긴다. 이 화학 신호에 이끌린 수벌이 꽃 위에 앉으면 신기루처럼 흩어져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허탕을 친 수컷이 다른 암컷을 찾아 구애를 하면 이때 암벌에 환승하여 둥지에 잠입한다.

남가뢰 체내에는 칸타리딘(cantharidin)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다. 위험을 느끼면 노랑색 독액이 방울방울 관절 사이로 나온다. 여기에 닿으면 화학적 화상을 입는다. 실제로 농사일을 하다가 이 액체에 노출되어 통증과 함께 피부에 물집이 잡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물집(Blister) 딱정벌레라고 불리운다. 때로는 가축이 풀을 먹다가 가뢰까지 삼켜서 죽는 경우도 있다.
 
관절에서 노랑 독액이 나오므로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수천개의 알을 낳기 위해 배가 발달한 남가뢰
관절에서 노랑 독액이 나오므로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수천개의 알을 낳기 위해 배가 발달한 남가뢰 ⓒ 이상헌

가뢰는 쑥을 비롯하여 박새(쑥을 닮은 독초), 얼레지와 같은 독이 든 잎을 먹고 체내에 칸타리딘을 축적한다. 인가에도 자주 출몰하여 콩과 파, 가지, 감자 등을 갉아 먹어 농부의 미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가뢰를 반묘(斑猫) 혹은 지담(地膽)이라고 하여 각종 피부질환(옴, 버짐, 부스럼, 종기, 곰팡이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지금과 같이 약리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가뢰를 말려서 염증을 억제하는 데 썼다. 그것도 아주 소량을 사용했을 뿐이다. 멋모르고 복용했다가는 콩팥이 손상되어 죽게 된다. 쌀 한톨 정도의 칸타리딘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남가뢰 여권사진 햇볕 아래서는 진한 청남색, 그늘에서는 푸른끼가 도는 검은색 몸매다.
남가뢰 여권사진햇볕 아래서는 진한 청남색, 그늘에서는 푸른끼가 도는 검은색 몸매다. ⓒ 이상헌
 
한편, 빨간 날개를 가진 홍날개가 있는데, 짝짓기를 할 때 칸타리딘을 갖고 있어야만 암컷이 교미를 허락한다. 때문에 홍날개 수컷은 가뢰에 어부바하여 괴롭히면서 스며나온(반사출혈) 독액을 탈취한다. 홍날개 수놈은 더듬이에 있는 머리샘(cephalic gland)에 칸타리딘을 저장하고 있다가 암컷에게 건네준다.
 
개나리 꽃밥을 먹고 있는 홍날개  매끄러운 빨간 딱지날개 같으나 접사 렌즈로 촬영해보면 털이 촘촘하다
개나리 꽃밥을 먹고 있는 홍날개 매끄러운 빨간 딱지날개 같으나 접사 렌즈로 촬영해보면 털이 촘촘하다 ⓒ 이상헌
 
서로 촉각을 비비는 암수를 보면 매우 다정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수컷이 장만한 혼수품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암놈은 왜 이렇게 칸타리딘에 집착할까?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무방벌레와 같은 천적을 물리치는 데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홍날개 애벌레 썩어가는 나무 껍질 아래에 살면서 분해자 역할을 한다
홍날개 애벌레썩어가는 나무 껍질 아래에 살면서 분해자 역할을 한다 ⓒ 이상헌
 
홍날개 애벌레는 쓰러진 나무 껍질 아래에 사는 숲속의 분해자 중 하나다. 썩어가는 수피를 손으로 벗겨보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부패해 가는 나무가 보기 흉하다고 민원을 내어 말끔히 치워버리는 것은 인간만을 위한 몹시 이기적인 행위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므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날줄씨줄이 층층으로 얽혀서 생태계가 잘 굴러가도록 만든다. 남가뢰와 뒤영벌, 홍날개의 사는 방식이 흥미롭다.  

#남가뢰#칸타리딘#홍날개#파브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