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23개월 아들 그리고 나, 우리 세 식구는 본래 유튜브를 즐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안 봤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영상보다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아내는 인터넷 자체를 많이 안 하는 성격이다. 아들은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시절부터 글씨도 못 읽는 책을 가지고 다니며 넘기고 또 넘겼다.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나는 나대로 유튜브를 제법 보는 편이다. 갑자기 영상이 좋아진 것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필요한 이유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잘 쓰면 약, 과하면 독'이라는 말처럼 우리 가족은 적절하게 유튜브를 보면서 각자의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내가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은 아내가 빵집을 하면서부터다. 나는 음식 쪽에는 재능이 전무하다. 뭔가를 맛있게 만들 줄도, 예쁘게 빚지도 못한다. 때문에 빵집 일을 도와줄 때 주로 하는 포지션은 판매와 설거지다. 그거라도 안 하면 내가 도움 될 것이 없다.
사실 설거지는 나에게 익숙한 분야다. 총각 시절에는 당연히 스스로 해야 했고, 결혼 후에도 내가 맡아서 하려 했다. 집안일 중에서, 그나마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게 설거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유튜브를 보게 된 것도 바로 이 설거지 때문이다.
사실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는 유튜브가 딱히 필요 없었다. 많아봤자 세 식구 살림인지라 그때그때 설거지를 하면 길어야 20분 안에 끝난다. 하지만 빵집에서는 달랐다. 다양한 빵을 굽는 관계로 설거지 거리가 넘쳐났고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용기들도 많았던지라 길게는 1시간 넘게 해야될 때도 있었다.
뭐랄까, 힘들다기보다는 지루했다. 긴 시간 동안 설거지를 하다 보면 허리와 다리가 아플 때도 간혹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루함이 더 컸다. 그때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유튜브였다. 평소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안 본 이유도 있었는데, 설거지하는 동안은 그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시간 활용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다.
아내, 아기, 나… 각기 다른 유튜브 활용
설거지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영상을 접했다. 처음에는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거나 추천 채널을 참고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분야 위주로 영역을 정하면서 보게 됐다. 각종 스포츠 영상, 과학의 세계, 역사 등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채널은 구독까지 했다. 격투기, 야구, 농구의 인기채널 같은 경우 설거지를 하지 않을 때도 업데이트를 수시로 확인할 정도였다.
사실 나는 세상만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꽂히거나 관심 있는 분야는 좀 깊게 들어가는 매니아 근성도 있다. 하지만 아기가 생긴 후 육아를 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호기심의 세계를 열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총각 때부터 신청해놓은 케이블 방송 유료채널도 제대로 본적이 거의 없어서 '이제 그만 끊어야 되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를 보면서 잊었던 다양한 분야 이야기를 다시금 듣고 보게 됐다. 스포츠 하이라이트나 이슈 분석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것을 비롯해, 돌아가는 흐름도 어느 정도 알아가고 있다. 역사 채널도 재미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각종 정사‧야사는 물론 구한말 시라소니, 김두한 등의 일화도 보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사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과학분야같은 경우는 심도 깊은 지식이 아니라 '외계인은 과연 존재할까?', '또 다른 은하계를 찾아서', '오파츠의 신비' 등 흥미 위주로 시청하는 편이다. 거기에 더해 연예인 신변잡기, 드라마, 영화 등에 관해서는 외려 총각 시절보다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드라마, 연예인 이야기 등은 사실 관심 밖이었다. 당연히 유튜브로 일부러 찾아보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럼에도 적지 않게 시청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설거지를 하기 전 나는 유튜브 재생 시간을 확인하고 영상을 고른다. 일단 설거지가 시작되면 선택한 영상이 끝나도 고무장갑을 쉽게 벗기 힘들다.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그 와중에 고무장갑 속으로 물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거지가 1시간 가까이 이어지다 보면 제법 분량이 되는 영상도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영상이 자동 재생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드라마 하이라이트, 연예인 스토리 등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도 계속 보다 보니까 가끔씩은 직접 찾아보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아내 같은 경우는 요리나 육아 등을 배우는 용도로 많이 쓰는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던 관계로 레시피를 많이 참고하는데 한두 번 보고 곧잘 맛있게 뚝딱 만들어내는 것을 보니 소질은 상당한 듯 보인다. 요새는 요리 채널이 워낙 많아서 어지간한 음식 레시피는 유튜브 안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는 듯하다.
아들 같은 경우 교육용(?)으로 종종 유튜브를 활용 중이다. 아기들은 자극적인 영상에 민감해서 자칫 스마트폰 영상같은 것에 빠지게 되면 중독될 수도 있다. 때문에 아내는 필요한 부분에 맞춰서 시간을 정해놓고 유튜브를 활용 중이다.
아직은 23개월밖에 되지 않은지라 부모가 어떤 특정한 부분을 계속 얘기해줘도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부모의 말보다 또래들의 언행이 전달이 더 잘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이빨을 잘 닦아야 하는 이유, 물건을 집어 던지면 나쁜 행동이야 등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다시 한번 반복시켜준다.
애니메이션 등에서 귀여운 아기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빨을 닦고 있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다 보면 어느새 아들도 노래에 맞춰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아내는 "이것 딱 두 번만 보여주는 거야. 더 이상은 안돼. 내일 또 볼 거야. 약속하자"는 등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며 아들에게 절제력과 약속의 중요성을 함께 키워주고 있다. 최근 우리 가족의 유튜브 홀릭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