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과 서양 각국은 무기력한 조선이라는 먹잇감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특히 일본은 1878년 6월 일본 제일은행이 부산에 지점을, 9월에는 부산 두모포에 세관을 설치하는 등 야욕이 더욱 심해졌다.
1882년 7월에 체결된 제물포조약으로 부산ㆍ원산ㆍ인천을 비롯한 개항장의 상업활동 범위를 사방 50리로 확장하고, 2년 뒤 다시 100리로 확대할 것과 일본 외교관의 조선 내륙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 공사관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상주하게 되었으며 일본의 경제침투가 날로 가속화되었다.
서울과 지방 곳곳에 '척왜척양'을 담은 각종 벽서가 나붙었다. 동학이 처음으로 보은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제기한 이슈였다. 서울의 일본 공사관에 동학 도인의 명의로 보낸 격서 중 하나를 소개한다.
일본 상려관은 펴 보아라.
태극의 본체가 나뉘어 처음으로 천지가 자리 잡자 사람은 그 사이에서 국경을 그어 나라를 만들어 삼강을 정하고 오륜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상이 되어 중토(中土)에서 살아오면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존중하면 사람이라 일컫고 몰지각한 자를 오랑캐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중국의 문물은 멀리 있는 오랑캐까지 통하였으며 성인의 교화는 멀리 떨어져 있는 땅에까지 나타났다.
천도란 지극히 공평하여 다만 착한 사람은 음덕이 있게 하고 악한 사람은 벌이 있게 했다. 너희들은 비록 변경에 살고 있으나 받은 성품은 하나의 이치임을 또한 알지 못하는가. 이미 인도에 처해 있으나 곧 각 나라에 매어서 살아가는 생업을 보전하고 영원토록 구역을 보전하여 위로는 부모를 공양하고 아래로는 자식을 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도 욕심 많은 마음으로 다른 나라에 자리잡고 앉아 공격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살육을 근본으로 삼으니 진실로 어떤 마음이며 필경 어찌 하자는 것인가.
지난날 임진년에 너희들은 우리 나라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과를 저질렀다. 국력을 다해 침략했다가 패한 몸으로 돌아갔으니 어찌 우리 나라의 참혹함과 괴로움을 차마 볼 수 있으랴. 우리는 너희들을 잊을 수 없는 원수로 아는데 도리어 너희들이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한이 있다 하는가. 너희들의 얼마 남지 않은 운명을 아직도 용서받기 어렵거늘 어째서 짧은 목숨으로 모질게도 우리의 틈새를 엿보고 있는가.
너희들은 우리 나라의 성스러움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서산대사의 가르침과 사명대사의 도술이 지금에 오히려 칭송이 되는구나. 석굴의 도로서 어찌 편순(鞭旬)의 사유를 멈추게 할 수 있으며 옥병 속의 구름으로 죽음의 울타리의 근원을 피하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스승님의 덕은 넓고도 가없어 너희들에게도 구제의 길을 베풀 수 있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인가 안 들을 것인가. 우리를 해칠 것인가 아니 해칠 것인가. 하늘은 이미 너희들을 증오하며 스승님은 이미 훈계하였으니 평안하고 위태로움은 너희들이 자취하는 것인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우리는 다시 말하지 않으리니 서둘러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계사 3월 초2일 자시.
조선국 삼사원우초. (주석 9)
주석
9> 표영삼, 『동학의 발자취』, 407~40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월 최시형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