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전국 여러 곳에 생기면서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1990년대부터 노동운동,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해오며 노동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온 전남노동권익센터 문길주 센터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그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노동조합을 거쳐 광주 근로자건강센터로, 이제는 전남 노동권익센터의 센터장으로 이어가고 있다. 진도 장애인복지시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진정을 넣던 날 인권위 진정과 기자회견에 동행한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광주노동건강상담소,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등 광주전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그에게 금속노조 중앙에서 활동 제안이 들어왔다. 2011년 금속노조 노동안전실장이 되어 첫 사업으로 그가 제시한 것이 발암물질 실태조사와 야간노동 실태조사였다. 예산도 상당히 들어가게 될 일이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시 금속노조 집행부가 받아들였고 사업을 시작했다. 실태조사를 통해 현장의 실상을 확인하게 되었고,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사업 구상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차례 기획회의를 하면서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어요. 추진해보니 문제점이 엄청나게 많았고 반응도 폭발적이었죠. 금속노조 최초로 발암물질 실태조사를 했던 건데요, 작업현장 50% 이상이 발암물질로 뒤범벅되어있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암 환자도 속출했고요. 시작할 때는 발암물질 조사해서 작업환경을 바꿔보자는 생각 정도만 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또 대기업은 작업복 세탁소가 있었는데 영세기업에는 없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현대차, 기아차에는 있는데 소규모 작업장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는 충격받았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거였죠. 이때 암 환자들을 1차, 2차, 3차 조사로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산재신청까지 했어요. 제도도 어느 정도 변화시켰고요. 노동부도 움직였으니까요."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시작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지금 경남에 3개가 있고, 그리고 최근 광주에 문을 열었다. 지자체에서 위탁 운영을 하고 있어 아주 적은 금액을 내면 노동자들이 깨끗한 작업복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문 센터장은 광주전남지역에서 활동을 하는데,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먼저 세워진 것은 경남에서였다. 왜 그랬을까?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2011년 발암물질 실태조사 하면서 생각한 것을 정책으로 추진하려 한 것이었어요. 실제로 하게 된 것은 제가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있을 때였습니다. 금속노조 있을 때 산업단지마다 작업복 세탁소를 세워야 한다고 제가 그랬어요. 그런데 근로시간면제 철폐 투쟁에 묻혀 추진되지는 못했죠. 2018년 지자체 선거 때 광주시장 후보들에게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추진할 의향이 있는지 질의서를 보냈어요. 모두 좋다고 하더라고요. 현 시장이 후보일 때 당시 근로자건강센터에도 방문했어요. 광주에 산업단지 7개 있는데, 산업단지마다 세탁소를 만들자고 했죠. 그때 해당 후보가 적극 추진하겠다고 보도자료도 냈고 시장으로 당선됩니다. 그런데 만드는 데 4년이 걸렸죠. 임기 끝날 때쯤 되어서야 실행된 거죠.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에 금방 시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되지는 않았어요. 시행하려면 타당성 조사를 하고 시의회에 올려야 하는 것이었는데 시의회에서 예산을 줄여버린 거죠. 그래서 여론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2천만 원 예산을 만들었고요. 광주 시의원이었던 윤난실이라는 분이 경상남도 사회혁신단장으로 가셨는데요. 이 분이 누가 봐도 좋은 안이었으니 추진했고 김해에서 작업복 세탁소를 먼저 만들었어요. 민주노총, 금속노조, 상공회의소까지, '노·사·민'을 모두 불러서 회의하고 추진한 겁니다."
노동자들은 종일 작업복을 입은 채 작업을 한다. 단순하게 더러워지는 것은 물론 각종 유해 물질로 오염될 수 있어, 노동자 개인이 집에 가져가 세탁한다면 노동자 건강은 물론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무 때문에 오염된 작업복 세탁을 사업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문길주 센터장의 생각이다. 사업주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지원까지 연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안전모가 노동자를 보호하듯 작업복도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의사, 간호사 가운같은 거죠. 작업복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필수품이에요. 노동자 작업복이 얼마나 청결한지가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직결됩니다. 작업복은 항상 입기 때문에 특히 중요합니다.
세탁소 건립을 행정 차원에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특히 50인 미만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들 의견입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행정만 가고 노동계가 따라오는 상황이거든요. 노동자들의 고민이 들어가야 해요. 세탁, 건조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과 휴식을 포함해야 합니다. 광주는 아직 세탁만 맡고 있는데 아직 해야 할 숙제가 있는 거죠.
작업복 세탁소를 단순히 작업복 빨아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럼 실패하는 거죠.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조직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자조적인 모임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여기에 건강 상담, 실태조사 등 프로그램 만들면서, 산업단지가 친노동적인 곳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해요. 문제점을 서로 발견하고 공유하는 구조로 가야죠. 아파트 놀이터같이 어린이들이 몰려오고, 또 시설에 투자하는 식으로요."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확장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
작업복 세탁소가 생긴 곳은 주로 산업단지인데, 문 센터장은 제조업 공장 외에도 농민들에게도 역시 세탁소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농민들은 농약을 사용하니 옷에 농약, 흙먼지가 항상 묻어있죠. 옷을 그대로 두고 다음날 또 입게 되고요. 농촌에는 이주노동자도 많은데, 국가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만들 때도 되었어요. 노동자·농민 세탁소가 필요합니다. 제주도를 보면 소규모 건설이나 천리향, 귤 농장이 많습니다. 그런 농장에는 이주노동자가 많고, 농약을 많이 쓰죠. 작업복 세탁소는 농촌 노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농민과 노동자가 함께 쓰는 식으로 만들어서 농민들도 혜택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2탄은 농민 세탁소입니다. 이번에도 시·도·군에서 큰 관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지자체 선거 때 추진할 계획입니다. 농민들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 만들어서 지자체에 뿌릴 계획이에요.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혼자 해서는 안 되고 농민회가 함께 해야죠."
노동권익센터에서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한다. 문 센터장은 활동을 지속하고 또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업 내용뿐만 아니라 기관의 형태와 쓰임새까지 그의 고민에 포함되어 있다.
"환경미화원도 시나 군으로 가면 50인이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해요. 그러니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가 없죠. 노동권익센터에서 안전보건관리를 담당하면 어떨까요. 산업안전보건팀을 만들어서 안전관리, 보건관리에 자격을 갖춘 사람을 두고 전담하게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업장 컨설팅이나 보건관리를 할 수 있게 되겠죠. 이 팀이 지역의 산업안전보건센터로 발전하는 것까지도 생각해요. 또 지역에서 산업안전보건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이에 발맞춰서 센터를 만들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하기 어려우니 인큐베이팅을 시작해야죠."
현재 전남 노동권익센터에서는, 사회복지사 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고, 환경미화원과 군내버스 노동자 실태조사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군단위에서는 버스 노동자들이 군과 군을 넘나들면서 열악하게 일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많고 어촌, 농촌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전남 지역에서 그는 계속해서 열악한 노동 현장을 찾고 바꿔보려 노력 중이다.
문 센터장은 서울에서 활동한 시간도 있지만, 오랜 시간 광주와 전남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왔다. 그에게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의 의미를 무엇이라 보는지, 또 특히 지역에서 열악한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존재하는 근로자건강센터나 노동권익센터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서 물었다.
"정책은 중앙에서 만들지만, 노동자들의 고민과 아픔은 지역에게서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만큼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니까요. 중앙에서 하는 정책 만들어 입안, 통과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앙과 지역이 잘 교류해야 성공하겠죠."
문 센터장은 2013년에 시작해 2019년까지 광주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계약 기간을 다 마치지 못하고 공단과의 계약관계를 종료했다. 문 센터장은 현재 안전보건공단을 상대로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근로자 지위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안전보건공단이 지휘·감독 기관이었으므로 자신을 직고용하라는 요구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설립한 근로자건강센터가 소속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취지에 맞게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좋은 취지로 만들었고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센터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짚어봐야 하는데,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직원들 고용불안 문제도 있고 실적 위주로 사업을 하는 것도 문제고요. 직업병 예방과 건강 증진 취지는 많이 사라졌죠. 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가 원하는 사업 위주로 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사업은 다 떨어져 가요.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가면 앞으로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책임지는 곳이 크게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어요."
문 센터장에 대해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아이디어가 많다는 말들을 꽤 들었다.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을 고안해낸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취약한 영역에 노동자들이 많고, 그렇기에 문 센터장의 관심은 끊임없이 열악한 노동 현장으로 향해있다.
"취약 계층 노동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고민을 들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에요. 그렇게 많은 노동자를 만나서 이야기 듣고 생각해낸 것이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인 거죠. 환경미화원, 버스 기사, 건설 노동자, 배전전기 노동자,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노동자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면서 아이디어와 정책구상이 나오는 것이죠.
취약계층, 특수고용 노동자들 관련 활동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이요. 전남노동권익센터의 지원과 조직화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권익센터에서 활동하다 보니 노조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당분간 계속하려고 해요. 지역에서는 활동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어려움이 있지만, 최대한 여러 사람과 함께 해나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유청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7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