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보육시설, 능력주의, 다양성, 성평등...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을 때, 약 한 시간 동안 대화 내용은 이리로 저리로 다양하게 튀었다. 자칫 '중구난방' 같았지만 아니었다. 모두 '아동인권'이라는 주제가 관통하는 이야기들이었다.
21대 국회 개원 직후 산업통상자원벤처기업위원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올 2월 보건복지위원회로 옮겼다. 이유는 딱 하나, '800만 명의 아동들을 대리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세 살 터울의 아들(초등학교 4학년)과 딸(초등학교 1학년)을 함께 키우는 엄마로서, 고민정 의원은 "엄마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들이 굉장히 많다"며 "정치적 소명의식 또한 아이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 결국 아이의 친구들을,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더라고요."
그는 아이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 욕구가 사회 전체의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말하는, 모든 할당제를 없애고 철저히 시험으로 평가하는 '공정한 경쟁' 역시 정답이 아니라며 그 대항마로 '다양성'을 내세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판에서조차 '아이의 행복'을 말하는 후보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을 또 안타까워했다.
KBS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2017년 입당, 문재인 후보 캠프를 거쳐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고 의원은 '친문(재인)' 상징성이 강한 정치인 중 하나다. 그는 당장 특정 후보를 돕기보다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본선 경쟁 때 온 힘을 쏟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중이라고 했다.
무려 800만 명이어도... 투표권이 없는 그들을 위한 정치
- 지난 2월 '우리 아이 함께 키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발족했다. 사실 국회 안에 아동인권 관련 연구단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새 모임을 제안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
"제가 원래 산자위였는데 아동학대 문제를 풀려고 복지위로 옮겨왔다. 그런데 이 문제를 들여다보니까 끝까지 챙기는 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동학대는 아이 한 명이 죽거나 다쳐서 공분이 생기면 그제야 주목을 받는다. 다른 분야는 그렇지 않다. 부동산 등은 계속 주목을 받고 관련 법안도 많이 만들어지는데.
정치인들은 '표(투표권)가 없어서'라고들 한다. 참 가슴 아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표 없는 800만 명의 아이들을 위해서 나서야겠다, 혼자서는 힘이 부족하니 뜻을 같이하는 의원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문지식이 없어도 아이를 키우는, 저와 비슷한 나이의 엄마아빠 의원들과 시작했는데, 전용기·장경태 의원처럼 '아직 아이가 없지만 곧 아이가 생길 수 있다'며 들어온 분들도 있다.
아이가 있든 없든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많이들 갖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모임 이름도 부드럽게 가고, 하나의 정책과 법안을 목표로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아동 이슈를 분출시키자고 했다."
- 민주당 의원 가운데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초선, 젊은 의원, 엄마아빠인 의원들이 중심인데 윤호중 원내대표, 김상희 부의장도 흔쾌히 '서포터가 되겠다'며 동참해줬다. 보통 국회의원 모임은 선배급 의원이 좌장을 맡는데, 저희는 저를 포함해 오영환, 전용기, 최혜영, 조오섭 의원이 공동대표다. (2000년 공개입양한) 조오섭 의원은 일부러 모셨다. 입양 분야는 실제로 입양해본 분이 아니면 모르는 게 있을 수 있어서 입양특례법은 조 의원 중심으로 많이 논의하고 있다."
- 그간의 활동들을 소개해달라.
"발족하자마자 '아동이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란 이름으로 3회에 걸쳐 연속 토론회를 했다. 아동학대 대응체계 현장인력 간담회, 전문가 간담회, 정부조직 개편방안 논의 크게 세 덩어리로. 또 의원마다 관심있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거나 법안 발의에 힘을 모으기도 했다. 더 나아가 현장방문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하고 있다."
코로나로 문닫은 학교... 더욱 감춰진 아이들
- 모임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최근 아동보호전문기관, 보육시설 등에도 다녀왔다고.
"직접 가보면 정말 다르다. 제가 처음 보육시설에 방문할 때, 우리 지역구도 아니니까 (공직선거법상 문제가 없어서) '먹을 걸 좀 가져갈까요?'라고 문의했더니 시설 관계자분이 '음식은 오히려 넘쳐난다. 아이들에게는 심리 상담이나 시설을 나갔을 때 어떻게 자립할까 등이 훨씬 필요하다'고 했다. 제가 현장을 몰랐다면 식비 예산 확보 등을 고민했을 거다. 또 그곳에서 지내는 아이들 중 절반은 부모가 있었다. 부모가 있어도 학대나 경제적 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정 밖 아이들이 많다는 걸 현장에 가서 느꼈다."
-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어려움도 겪고 있지 않던가.
"일단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면 시설에서 다 관리를 해야 하지만, 마땅히 학교만큼 교육해줄 수 없으니 교육격차가 커졌다. 또 학대 여부를 발견할 확률도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야 자꾸 눈에 보일 텐데... 그리고 아동학대 부모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많다. 그들과 아이의 분리가 필요한데 코로나로 계속 붙어있으니 악순환이다. 빨리 아동 보육·교육은 정상화해야 한다. 다행히 교육부가 '2학기 때부터는 전면 등교' 방침을 세웠는데, 지금 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우리가 얼마만큼 막아낼지... 너무 중요한 시기다."
- 그런데 코로나19 상황과 별개로 아동학대는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매번 '구조적 문제가 되풀이됐다'는 똑같은 평가가 나온다.
"저는 처벌보다 예방 강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처벌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끔 예방을 공고히 해야 하는데, 당장 눈 앞에 확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예방보다는 처벌에 자꾸만 초점을 모은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만 해도, 모든 어린이집 교사가 그렇지 않다. 일부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막으려고 CCTV 설치를 의무화했는데, 그 앞에서도 왕왕 학대가 일어난다.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보통은 사고가 일어나면 확인한다. CCTV를 랜덤으로, 또 정기적으로 검사하면 어떤 어린이집도 언제 검사하는지를 알 수 없으니 더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 차원에서 법안을 준비 중이다."
- 어린이집 CCTV는 설치를 의무화할 때부터 어린이집 교사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다. 상시적으로 CCTV를 검사한다면 비슷한 지적이 또 나오지 않을까.
"만약 CCTV를 매일, 전부 검사한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어린이집 3만 곳 중에서 일부만 샘플링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면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검사를 받지 않는 곳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검사조차 인지되지 않으면 아동학대가 끊어지질 않는다. 아동학대가 생기면 어른의 99%는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본인의 불편과 어려움을 감내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른들이 그걸 감내해야 약한 어린이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겠나."
"놀이터 하나 없는 국회, 가장 보수적인 곳"
-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아동을 위한 정치'가 더욱 본인의 일로 느껴질 것 같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제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제가 아이를 통해서 많이 배운다고 느꼈다. '국회의원 고민정'의 정치적 소명의식 또한 아이로부터 배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 결국 아이의 친구들을,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국회만 해도 아동친화적인 공간은 아니지 않나. 최근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만 24개월 미만 자녀가 있는 국회의원은 아이와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며 생후 2개월 아이와 함께 출근 퍼포먼스도 했는데.
"절대 퍼포먼스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곳이 지금의 국회다. 여기도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그러면 그 시설을 본인이 이용할 확률이 있든 없든 모유수유실이나 휴게실이 필요하다. 저희 둘째도 초1인데, 갑작스레 돌볼 사람은 없고, 제가 일을 해야 하면 어떻게 할까. 그럴 때 사무실에 데리고 오면, 국회에 아이가 들어오는 걸 막진 않는다. 하지만 국회에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왜 작은 놀이터라도 없는지.
국회에도 제 나이 또래에,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국회에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의원만 쓸까? 보좌진들도 있다. 한 번은 주말에 보좌진 아이들이 왔는데 너무 심심해하더라. 국회도서관이 큰데, 거기 한 구역만 아동도서관을 해놔도, 아니면 매트를 깔아 둔 실내공간만이라도 있다면 아이들이 한두 시간 놀 텐데, 이 삭막한 사무실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느꼈다. 가장 보수적인 곳이 국회구나."
- 지금까지 말한 아동 관련 이슈도 보육시설, 아동학대, 교육 등 다양하다. 여러 부처가 제각각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인데, 그 중 하나인 여성가족부는 폐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정부 부처를 어떻게 다시 리모델링할까 하는 점이 너무 중요하다. 그냥 단순하게 '여가부를 폐지하자'는 말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책임한 말인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금은 좀 느꼈으면 좋겠다. 당근과 채찍이 함께 있어야 힘있게 조정할 수 있는데, 아동분야는 그렇지 않다. 청소년은 여가부,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복지부 소관이고, 처벌은 법무부다. 통합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데 아주 큰 문제라 전문가부터 현장에 있는 공무원들까지 다 포함해서 그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굉장한 숙제다."
"서울대 출신이 세상을 100% 끌어가나? 아니다"
- 그 사안들을 집중 논의할 수 있는 때가 대선 시기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을 봐도 부동산, 청년 이야기는 있지만 아동·청소년 이야기는 없다. 진보 진영 전체를 봐도, '무상보육' 다음이 없고.
"컨트롤 타워(사령탑)가 없는 게 크다. 지금은 복지부 아동정책과? 그 정도 힘으로는 설득이 안 된다. 또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법무부 사안이라서, 다른 부처 소관이라서 못한다'고 한다. 기재부가 힘이 큰 이유는 기재부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서다. 그런데 아동은 이익단체나 협회가 없다 보니 본인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데, 컨트롤 타워조차 없다보니까 진짜 아무것도 안 되죠."
- 반면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은 교육 의제로도 볼 수 있다. 민주당은 그 대항마로 무엇을 말해야 할까.
"다양성 확보다. 시험으로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 있다. 다만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까닭은, 오로지 능력주의만 옳다고 하는 부분이다. 무조건 다 시험으로만 기회를 얻는다? 그러면 여기서 떨어진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낙오자라고 용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또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 서울대인데, 서울대 출신이 세상을 100% 끌어가는 게 아니지 않나. 지금 대통령 중에 서울대 출신이 누가 있는가? 없다.
그래서 제가 고민하는 것은 블라인드 채용 확대다. 공공기관에서 하고는 있는데 법제화하지 않아서 강제성이 없다. 일단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법제화하면 민간으로 넘쳐나갈 수 있다. 다양한 학교 출신들이 새로운 목표지점에 다같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의 사회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하나의 공식 루트라 아기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게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 본인도 경희대 수원캠퍼스 출신인데 블라인드 채용으로 2004년 KBS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했고.
"제가 알기로는 저희 기수 때 첫번째 블라인드 채용이 이뤄졌다. (이력서상에서) 학교만 지웠고 필기시험, 논술, 카메라 테스트 등은 다 했는데 전년과 비교했을 때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줄고 지방대 출신이 다양하게 들어온 걸 보며 '이렇게 블라인드 채용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구나'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고민정이 열심히 공부해서 지방대 나왔는데도 KBS 입사하고, 청와대 가고, 국회의원까지 됐네?' 능력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대단한 배경도 돈도 없지만 진짜 열심히 해서 KBS 붙은 거다. 저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제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그 혜택을 받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
제가 그 기회로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처럼, 다른 젊은이들도 다양한 기회를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는 게 저의 소명 같다. 이 문제는 고용 관련 법안으로 접근하려고 연구 중이다."
고민정과 성평등
-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사회의 다양성만큼이나 성평등도 중요하다. 그런데 민주당에서조차 성폭력 문제가 이어졌다. 고 의원도 고 박원순 시장 사건 때 '피해호소인' 호칭 논란을 겪었고, 나중에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박영선 후보 캠프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최근 양향자 의원이 보좌진의 성폭력 문제로 제명되기도 했다. 이 일들이 고민정이라는 정치인에게 어떤 고민을 남겼나.
"무엇이든 간에 피해자께서 저로 인해 상처받은 게 있다면, 당연히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하고, 그런 마음으로 그때(선거기간)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 외에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평등도 결국 남성, 여성, 혹은 또 다른 정체성 등 다양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여성이 늘 성폭력에 노출된 일을 미안해하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모든 남성은 가해자가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남성이야'라며 이해하는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양 극단에 있는 목소리가 (과다하게) 표출되면서 오히려 성평등에 대한 논의 자체가 막혀버리는 것 같다.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세상이 하나씩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건데... 우리가 좀더 지혜를 내야 할 시기 같다.
그래서 '왜 남성들이 더 성폭력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안 내줄까?' 하는 물음표도 갖고 있다. 제가 당에서도 만날 하는 얘기가 그거다. '왜 그런 사건이 터지면 꼭 여성 의원들이 나서야 하는가. 남성 의원들이 나서면 안 되는가.' 일-가정 양립, 아이의 육아도 왜 꼭 여성들이 얘기할까? 그건 남성의 일이 아닌가? 생각보다 육아를 하고 싶어하는 남성도 많다. 세상은 이미 다양화했는데 정치권만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다. 사실 제가 성평등 관련 발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괜한 오해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저도 아직은 길을 찾는 상황이다."
- 이 문제의식을 대선 국면에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 캠프든 어떤 역할로든 목소리를 낼 생각은 없는가.
"아직은... 지금은 워낙 경선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라서. 중요한 건 민주당이 다시금 정권을 창출하는 일이다. 정당의 존재이유가 정권 창출이니까 거기에 힘을 다 쏟으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