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을 며칠 동안 돌아다니면서 눈여겨볼 점이 여러 가지 있었다. 우선 수도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소 목장들이 도로를 지나갈 때마다 심상치 않게 보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의 규모가 다른 지방 도시에 비해서도 꽤나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안성의 하나로마트 매출이 경기도에서도 2번째로 높다고 하니 이 도시에서 농협의 존재감이 다른 동네보다 남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이번에 가볼 장소가 안성의 다른 관광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관광객의 수요를 끌어오고 있는데, 이 장소를 운영하는 주체가 다름 아닌 농협이다.
유럽의 초지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풍경과 색다른 체험으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안성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곳, '농협 안성팜랜드'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었고, 테마파크와 체험목장이 결합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안성 대표 여행지다.
안성팜랜드가 처음부터 테마파크를 위해 지어진 장소는 아니었다. 원래는 1960년대 초 독일에서 선진 낙농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낙농 시범목장이 들어섰던 역사가 있다.
원래 안성팜랜드가 있던 신두리는 나무가 많고 풀이 많아 꼴 베기에 좋은 마을이라 하여 '섶머리, 섬머리'라고 불렀고, 이미 목초지로 충분했던 조건으로 인해 1931년 당시 36가구 중 22가구가 축우 관련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토지와 건물은 한국 측이 부담하고 젖소, 중장비, 기술자 등은 서독 측이 부담키로 하면서 한독목장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1969년 한독 시범목장이 설립되었고, 수많은 핵심 낙농 전문가들을 육성 배출하면서 우리나라 낙농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90년대에는 한우 번식 기반 확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2011년 안성팜랜드로 새롭게 변모했다.
유럽에 온 것 같은 건물, 그림 같은 풍경들
안성팜랜드의 정문을 지나 테마파크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독일풍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독일과 인연이 있었던 만큼 이국적인 느낌인데,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 같다.
지금은 식당과 카페, 기념품점으로 쓰이는 건물들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면 승마센터로 이어진다. 승마센터에서는 다양한 품종의 말들을 관찰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승마체험도 할 수 있다. 나이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말들을 타볼 수 있는데,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 큰 인기다.
승마센터를 나와 밑으로 내려가면 체험목장으로 이어진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크게 눈여겨보지 못했던 다양한 품종의 돼지, 소, 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먹이 주기 체험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지는 가축 공연쇼라 할 수 있겠다.
잘 훈련받은 동물들이 일사불란하게 공연을 펼치는 게 아니라, 드넓은 공연장을 마음껏 뛰놀았다. 다양한 동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괜찮은 공연이니 스케줄을 체크하셔서 꼭 보시길 바란다.
이제 안성팜랜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그림 같은 초원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자. 수많은 SNS에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는 풍경답게 드넓은 호밀밭이 나의 두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유럽의 풍경화에서 보던 광경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드넓은 초원 한쪽에는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었고, 타조들이 마음껏 거닐고 있다. 봄에는 유채밭과 호밀,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뮬리와 코스모스가 수 놓인다고 하니 언제 가든 색다른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어느덧 언덕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왜 안성에 오면 안성팜랜드를 무조건 가야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 가을을 기약하며 이번엔 다른 장소로 이동해 보도록 하자.
안성 유기의 역사를 한눈에, 안성맞춤 박물관
다시 안성 시내로 돌아가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초입에 안성맞춤 박물관이 있다. 안성을 대표하는 단어 중에 이른바 '안성맞춤'이란 말은 누구나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래 안성은 삼남으로 이어지는 요지로, 그 교통로를 기반으로 전국 최대의 장터인 '안성장'이 있었다. 이를 토대로 안성에서는 수공업이 발달했는데 특히 유기의 명성이 전국 각지로 뻗었다고 한다.
유기는 일반적으로 "놋그릇"이나 "놋쇠로 만든 생활용구"라고 한다. 안성의 유기에는 장에다 내다 팔기 위한 유기와 주문에 의해 개인의 기호에 맞춘 맞춤 유기가 있었는데, 이 '안성맞춤 유기'에서 유기를 뺀 '안성맞춤'이라는 표현이 전해지게 된 거라고 한다.
박물관의 1층으로 들어가게 되면 일제강점기 이래 안성에서 성행했던 주물유기 제작법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기 제작법과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으며, 안성에서 제작된 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기를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마네킹을 이용해서 유기를 직접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직접 유기를 만져 볼 수 있게 해놓은 코너다. 일반 식기류는 물론 다양한 공예품도 유기로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해 보였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가면 안성 지역의 농업과 조선시대 발달했던 안성의 장과 수공업, 남사당패 등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 나온다.
안성은 수자원이 풍부하고, 넓은 들이 많아 벼농사가 발달했고, 낮은 산지가 많고 토지가 비옥해 축산업도 성행한 도시다. 그러니 남사당 문화를 비롯해 안성만의 독특한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안성의 6대 특산물인 쌀, 배, 포도, 한우, 유기, 인삼의 품질도 훌륭하다. 비록 경부선 철도가 안성 대신 평택을 지나가게 되면서 도시 자체의 발전은 늦어졌지만, 안성이 가진 품격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안성성당에서 머지않은 장소에 현재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안성마춤 유기공방이 있다. 고 김근수 옹이 1946년에 시작했고, 현재는 아들 김수영씨가 그 자리를 계승해서 이어가고 있다. 식기류부터 시작해 제기 혼수용품과 학, 마패, 황소 등 빼어난 장식품들이 공방에 전시되어 있으니 안성에 오신 김에 한 번쯤 같이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이제 안성의 여행도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안성의 저수지와 그것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천주교 최대의 성지 미리내 성지로 발걸음을 이어가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경기별곡 시리즈의 1편은 9월 책으로 출판됩니다. 강연, 취재, 출판 등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ugzm@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글을 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시면 탁피디의 여행수다 또는 캡틴플레닛과 세계여행 팟캐스트에서도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별곡 시리즈는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general_list.aspx?SRS_CD=0000013244에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