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고, 자연, 역사의 향기가 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포천은 크게 3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장 남쪽에 있는 소흘읍을 중심으로 한 동네다. 예로부터 송우장이 활발하게 열렸고, 특히 송우 도고라 불리는 지금의 도매상인 집단이 활동했던 주 무대라 볼 수 있다. 현재도 오히려 포천 시내 보다 인구도 많고, 훨씬 번화한 실질적인 포천의 중심지라 보면 될 것 같다.
그다음으론 가장 북쪽에 위치한 옛 영평군 지역이다. 포천과 통합과 분리를 반복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독자적인 지역의 정체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난 이후 항전의 주요 기점이 되었으며 철원에서 내려온 한탄강이 흘러서 연천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이 지역의 중심지는 영중면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지역이 본격적으로 포천의 탐험을 시작할 포천 시내와 그 주변이다. 포천시청이 현재도 위치하고 있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포천의 명소들이 골고루 퍼져있다. 우선 포천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 시내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산의 정상을 감싸고 있는 반월성에서 그 첫 시작을 하려고 한다.
해발고도 283미터의 창성산에 위치한 반월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창성 역사공원에서 출발해 1시간가량을 쉬엄쉬엄 등산해서 접근하는 루트이고, 다른 하나는 차를 직접 이용하여 산의 중턱까지 접근해서 가는 길이다.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하다. 요즘 같은 불볕 더위속에 햇빛을 맞아가며 산길을 올라가는 자체가 쉽지 않고,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흙길을 힘들게 몰고 올라가 주차장도 변변치 않은 장소라 초보자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 그래도 앞으로 가볼 장소가 많기에 시작부터 힘 빼기가 싫어서 용기를 내어 차를 끌고 가보기로 한다.
다행히 평일 아침이라 차는 많지가 않다. 차를 끌고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지점에서 차를 대고 밖으로 나가본다. 연륜이 족히 수백 년이 넘은 나무와 그 너머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이 눈길을 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다른 동네 뒷산과 달리 장엄함이 느껴진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반월성은 발굴조사 동안 마홀 수해 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 명이 적힌 기와가 출토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와에 적힌 마홀이란 글자가 고구려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반월성은 후에 궁예가 다시 축성했다. 궁예는 반월성을 남진을 위한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궁예가 쫓겨나고 수도를 철원에서 개성으로 옮기면서 이 성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궁예의 그림자는 성 전체에 도사려 있었다. 민간 신앙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그 주변에는 미륵석불도 남아있다.
포천 시내가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곳
이제 흙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청성산 정상부를 반월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반월성의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성의 둘레는 1080m로 만만치 않은 길이를 자랑한다. 문 터는 물론 건물, 우물, 제단들의 시설이 곳곳에 설치된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특히 반월성의 장점 중 하나가 막힌 곳 없이 확 트여 전망이 무척 훌륭하다는 것이다. 포천 시내가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수많은 병사들은 물론이요 아마도 궁예도 이 성벽을 밟고 이 일대를 내려다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든다. 산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는 즐거움을 한번 누려보기 바란다.
이제 산 밑으로 내려가 창성산(반월성) 주변을 한번 둘러보려고 한다. 이 일대는 구읍리라는 지명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랫동안 포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장소다. 먼저 반월성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군내면 사무소가 있는데 여기가 예전에는 포천 관아가 있던 터라고 한다. 1905년까지 포천 군청이 있다가 구읍천, 포천천 너머 포천동으로 이전한 이후 현재는 조용한 동네가 되었다.
하지만 이 주변 문화재의 연륜이 나름 만만치 않다. 군내면 사무소에서 골목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포천향교가 나온다. 포천향교 자체는 6.25 전쟁 후 새롭게 복원한 것이라 눈길이 크게 가지 않지만 그 뒤편 산길을 따라 걸어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거의 마모되어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석불이 눈에 아른거린다.
구읍리 석불입상이라 불리는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미륵불이라 칭해졌고, 고려 전기의 작품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그렇다. 아마도 궁예를 잊지 못한 포천의 민중들이 그를 위해 세운 것이 아닐까?
그 밖에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용화사라는 절에는 구읍리 미륵불상이 있고, 영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영평리 석조여래입상 등 미륵불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궁예는 정말로 미치광이 폭군이었을까? 그가 다스리던 기간은 3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안성, 포천 등지에서 발견되는 그의 흔적은 천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다.
이제 하천을 건너 포천 시내로 들어왔다. 포천을 대표하는 먹거리 하면 이동갈비를 흔히들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동면, 일동면 일대에는 예나 지금이나 군부대가 많다. 특히 근처 백운계곡 일대에는 군인들을 비롯해 피서를 오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갈비 열대를 일 인분으로 하여 푸짐하게 만들어 장사를 하던 게 이동갈비의 시초라고 한다.
그 군인들이 제대하고 소문을 퍼트려 어느덧 이동갈비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특히 산정호수에서 멀지 않은 이동면 지역에 집중적으로 갈빗집이 모여있어 수많은 피서객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하는 코스가 되었고, 포천을 대표하는 명물 음식이 되었다.
마늘 맛이 돋보이는 깔끔한 순대국밥
하지만 포천에 오셨다면 갈비도 좋지만 순대국밥을 한번 드셔 보길 추천한다. 포천시내와 송우리 지역에는 전통시장이 꽤 남아있고, 그 시장을 중심으로 맛있는 국밥집들이 많다. 아마도 예전에 강원도와 서울을 이어주는 도로의 주요 지점이 포천이었으므로 많은 나그네들이 국밥을 먹으며 삶의 고단함을 잠시 달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전국에 널리 퍼진 흔한 체인점인 무봉리 순대국밥의 그 시작은 송우리였다고 한다. 포천 시내 한복판,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 보면 미성 식당이라 불리는 순대국밥집이 있다. 낡은 간판이지만 먼지가 쌓인 것 없이 깔끔해 보이고, 내부로 들어오자 순대 삶는 냄새가 향기롭게 풍겨온다.
1981년부터 오픈한 미성 식당은 마늘 토핑과 순대를 비롯해 내장 부속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순대국밥이 특징이다. 개인의 취향에 맞춰 밥을 토렴하기도 하고, 따로 밥을 선택할 수도 있다. 흔히 먹는 순대국밥과 다르게 육수의 깔끔함이 인상적이고, 그 심심함을 덜어줄 마늘의 싸한 맛이 겹쳐지면서 환상의 궁합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소울 푸드라 불리는 국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다시금 포천을 돌아볼 힘이 생긴다. 계속해서 포천의 매력을 찾는 여행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하는 경기별곡이 책으로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