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주도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와 수사지휘권 발동 사유가 재조명 받고 있다. '김건희 인터뷰'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가 2일 보도한 윤석열 검찰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중이다(관련 기사 모음 :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 파문).
당시 추 장관이 논거로 든 의혹들은 아래와 같다.
①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검사, 정치인들의 비위 및 사건 은폐, 짜맞추기 수사 의혹 사건
② ㈜코바나 관련 협찬금 명목의 금품수수 사건
③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및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특혜 의혹 사건
④ 요양병원 운영 관련 불법 의료기관개설, 요양급여비 편취 사건과 관련 불입건 등 사건 무마 의혹 및 기타 투자 관련 고소사건
⑤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사건 및 관련 압수수색영장 기각과 불기소 등 사건 무마 의혹
1번과 5번 사건은 윤 전 총장 본인과 관련된 의혹이고 2, 3번과 4번 사건은 각각 윤 전 총장 아내 김건희씨와 장모 최은순씨와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다.
추미애가 옳았다?
1년여가 지난 지금 해당 사건들의 결과는 어떤가. 우선 장모 최씨는 요양병원 관련 사건으로 1심에서 3년 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는 '사문서위조·위조문서행사' 혐의, 즉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이른바 '추모공원 경영권 편취 의혹'으로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건희씨 사건 수사 또한 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일보> 8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가 9월 중으로 김씨를 소환조사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김씨 관련 코바나 협찬금 금품수수 사건 역시 현재 같은 반부패강력수사2부가 수사 중이다.
윤 전 총장 관련 의혹의 경우, 우선 '라임 부실수사 의혹'은 현재 사건이 공수처에서 대검으로 넘어간 상태다. 지난 2월 한 시민단체가 공수처에 윤 전 총장을 포함해 전·현직 검사 12명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으나 지난 7월 공수처는 검토를 거쳐 사건을 대검으로 단순 이첩했다. 최근 <뉴스타파>가 '윤우진 녹취록'을 보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윤 전 용산세무서장 관련 사건도 서울중앙지검이 2년째 수사 중이다.
앞서 언급한 사건 모두 국민의힘 유력 대선주자인 윤 전 총장의 '아킬레스건'이란 평가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장모 최씨의 경우, 윤 전 총장이 출마 선언을 한 지 사흘 만인 지난 7월 2일 법정 구속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내 김씨 관련 의혹 또한 후속 보도가 이어지며 검찰이 수사를 피할 수 없게 재촉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실제 아킬레스건은 윤 전 총장 본인이 연루된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고발장이라는 구체적인 물증이 포함된 '고발 사주 의혹' 보도는 추미애 전 장관의 수사지휘 사건 및 징계를 둘러싼 윤 전 총장의 직권남용 등 기존에 제기된 의혹에 설득력을 더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짜수산업자 사건 당시 제기했던 '공작설'은 지금 어디로 갔나
윤 캠프 합류 열흘만에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 뒤 '가짜수산업자' 김아무개씨에게 접대 및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은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7월 13일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여권발 '정치공작설'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두 달여가 다 돼가는 지금까지 이 전 위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언론 인터뷰(7월 14일 JTBC <뉴스룸>)에서 해당 사건을 아예 인지하지 못했음을 전제한 뒤 "저에 대한 이런 공격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런 수사를 악용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놀라웠습니다"라며 이 전 위원이 제기한 정치공작설을 일정정도 긍정한 바 있다.
<뉴스버스>의 의혹보도 직후 이어진 여권발 공세에 대한 윤 전 총장 측 대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3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윤석열 캠프 김경진 대외협력특보는 "일단 윤 후보는 몰랐습니다"라면서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이어 그는 "악착같이 조국 장관 일가가 무죄라고 주장했던, 또 윤 후보가 문제가 많은 후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겠죠"라며 공작설을 제기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윤 전 총장 또한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한 뒤 채널A 사건을 거론하며 역시나 같은 해명을 반복했다.
"지난해 채널A 사건을 보라. 총선 앞두고 그렇게 정치 검언유착이라고 하더니, 1년 넘게 재판해 드러난 게 뭔가. 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저도 이런 것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 때문에 상식 있는 국민께서 잘 판단하길 바란다." (관련 기사 :
[고발 사주 의혹] 입 연 윤석열 "내가 고발 사주? 증거를 대라" http://omn.kr/1v2o2)
과연 국민들 눈높이에 부합하는 해명일까. 이를 윤 전 총장과 경쟁 중인 당 내 다른 대선주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당장 검찰 출신 홍준표 의원은 2일 울산 지역 간담회에서 "(검찰) 총장의 양해 없이 (청부고발이) 가능했겠냐"며 "또 총장이 양해 안 했다고 하면 그건 좀 어불성설이다. 양해했으면 그건 검찰총장으로서 아주 중차대한 잘못한 것"이라며 윤 전 총장 본인이 직접 해명할 것을 충고하기도 했다.
<뉴스버스> 이진동 기자는 2일과 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확보한 물적 증거를 바탕으로 후속보도를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본인이 직접 해명하라"는 홍 의원의 충고 또한 해당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을 경우 향후 대선경선 과정에서 문제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사건 당사자격인 MBC는 물론 추 전 장관을 비롯한 여권 대선주자들까지 공세를 퍼붓는 중이다. 윤 전 총장이 '공작설' 등 일회성 변명으로 면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학습효과
무엇보다 이른바 범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들의 학습이 축적돼 왔다. 당장 채널A 검언유착 사건 또한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폰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고발 사주' 의혹에도 등장하는 한 검사장의 휴대폰을 지금이라도 재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진위와는 별개로 검찰 출신 김웅 의원이 운운한 '공익제보' 주장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조 전 장관 딸 학생부 입수,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제보,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청와대 사찰 의혹 제보 등 현 정부 들어 검찰과 관련된 사건들은 왜 모두 '공익제보'라는 외피를 쓰고 있을까.
다시 지난해 징계 건으로 돌아가 보자. 윤 전 총장과 그 일가족에 제기된 의혹들은 대부분 검찰권 남용 및 직권남용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추 전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사건들 대부분은 재판 등을 통해 실체가 구체화되는 중이다.
금번 고발 사주 의혹은 이를 뛰어넘어 정치검찰과 현직 검찰총장이 총선에 개입하려고 했던 정황이 드러난,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다름 아니다. 윤 전 총장이 공작설로 역대응하며 시치미를 뗄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