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다'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사이다'는 남녀노소 모두 즐겨 마시는 탄산 음료다. 그러나 영국에서 '사이다(cider)'는 사과로 만든 술, 알콜이다. 그것도 상당히 센 도수의 술로서 성인들만 마신다. 반면 미국에서 '사이다'는 사과 주스다. 다만 '하드 사이다(hard cider)'라고 주문하면 영국의 '사이다'와 같은 종류의 술이 나온다.
결국 영미권의 '사이다(cider)'는 우리가 알고 있는 탄산 음료의 '사이다'가 아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지금 마시는 '사이다'는 일본에서 완전히 변형되어진 '사이다'이다. '사이다'이지만, '사이다'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에 한 회사가 파인애플과 사과가 들어간 탄산음료를 '샴페인 사이다'라는 상품명으로 처음 발매하였는데 상류층만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 파인애플을 사용하지 않고 명칭에서도 '샴페인'을 뺀 채 '사이다'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사이다'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본산 '사이다'가 우리나라에 1905년 처음 들어왔다. 영미권에서 탄산음료는 'soda'로 표현되고, 상품명인 '스프라이트(sprite)'를 주문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이다'를 마실 수 있다.
'고무'와 '곤로'도 일본에서 온 말
우리는 '고무줄'이나 '고무장갑' 등등 일상적으로 '고무'란 말을 많이 사용해왔다. 그리고 대부분 이 '고무'란 말은 완전히 순수 한글인 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말에게도 '배신'을 당해야만 한다. 이 '고무'라는 말은 일본어로 'ゴム'로서 발음도 그대로 '고무'다.
본래 네덜란드어 'gom'에 기원을 둔 용어로서 영어로는 원재료를 'gum', 제품화한 상태가 'rubber'가 된다.
'고무'란 말이 나온 김에 '배신감'을 안겨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바로 '곤로'라는 말이다. 지금은 '곤로'라는 말이 상당히 생소하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석유 곤로'를 사용했었다. 그러면서 이 '곤로'라는 말은 한자어이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말도 일본어다. '고무'의 경우처럼 일본어 'コンロ'와 발음이 같은 '곤로'였기 때문에 그 말이 일본어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역시 일본식 영어로서 'stove'가 올바른 영어 표현이다.
다만 '스토브'의 경우, 우리는 대개 난방기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stove'는 'cooking stove'처럼 요리용 기구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고, 난방기구에는 'heater'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이 '스토브'란 말도 일본식 영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