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육아를 누군가는 기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막이 내릴 시대이지만 안 그래도 힘든 육아에 이 시국이 무언가로 고통을 주는지 알리고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항상 말미에 적는 글이지만 아기를 양육하고 계시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께 위로와 응원 너머의 존경을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기자말] |
9월 초, 병환이 있는 아버지의 수술이 정해졌다. 아기의 할아버지는 많은 병원을 가보고 결국에는 고향인 진주에서 수술을 결정했다. 우리의 휴가 날짜와 휴가지는 그렇게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수술날과 진주로 정해졌다.
이 시국, 아기와의 여행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아기에게 꼭 필요한 필수의 육아용품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장난감 등을 챙겨야 했다. 그리고 일기 예보에 가을 장마가 온다고 해서 우산과 우비, 그리고 아기의 방역 물품들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산책을 위한 접이식 휴대용 유모차까지 챙겼다.
흔치 않은 외출, 특별한 기억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아기를 케어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기에게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다. 초행길인 진주를 자동차로 가는 것보다, 택시로 기차역까지 이동하고 기차로 진주를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기와 첫 동반 휴가를 아날로그식 기차 여행으로 다녀왔다.
첫 외출... 기차 안에서 하염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던 아기의 모습이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되긴 했지만, 기차는 만석이었다. 아이에게는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꼬까옷을 입히고, 미아방지 목걸이를 채우고, 신기 싫어하는 신발을 신기고, 코로나 모자를 쓴 아기의 모습에 기차 안의 사람들은 미소로 반겨 주셨다.
아기가 처음 오는 이 여행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이 시국이 아니었다면 아기는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휴가길이었다.
"아구... 아기가 귀엽네요 몇 개월이에요?"
"어머 통통한 팔 하고 다리가 너무 귀여워요."
그렇게 기차 이용객님들의 인사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 이후의 난관을 그때까지는 상상하지를 못했다. 아기와 아기 엄마랑 여행 기분을 내면서 오랜만에 새마을호를 타고 진주에 도착했다. 진주역에 다다르자 하느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로 아기와 부부를 반겨주셨다.
그렇게 하염없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역사 안에서 아기 엄마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밀어주고 아빠는 짐들을 챙기면서 날씨를 체크했다. 대기하면서도 계속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는 아기 덕분에 방역에 신경을 쓰시는 분들께 폐가 될까 봐 구석자리를 지켜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잽싸게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이 여행의 일정과 모든 일들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아기는 낯선 공간인 호텔에서 호기심으로 이리저리 물건들을 잡아보고 탐색하다가 두어 시간이 지나자 지겨워졌는지 울기 시작했다. 밖에는 다시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고 아기를 안고 나갈 수도, 산책도 나갈 수 없게 된 마당에 아기가 계속 우는 것은 미치는 일이었다.
아기를 안고 달래며 호텔을 계속 서성였다. 그나마 안겨서 여기저기 구경할 거리라도 생기자 아기는 울던 울음을 그제야 잠시 멈추었다. 같은 호텔에 묵었던 분들에게 비 오는 날 아기를 안고 달래며 로비를 전전하는, 눈이 풀려 있던 중년의 아빠가 어떻게 보였을까? 조금 죄송스럽고 부끄럽기도 하다.
진주 여행, 나는 그야말로 '머슴'이 되었다
아기의 할아버지의 병원은 엄격했다. 보호자 1인 외 면회는 당연히 금지였고 잠깐 입원에 필요한 물건을 사서 오면 보호자는 다시 지난하고 험난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아기의 할머니는 병원에 상주해야만 했고 필요한 물건들은 병원의 방역 수칙을 준수하고 입장하여 스치듯이 건네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거나, 비가 조금 올 때 아기 할아버지의 입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가져다 드려야 했다. 또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이유식이나 과일들과 아기 엄마의 식사도 공수해야 했다. 이른바 진주판 '호텔과 병원의 쌍방 심부름 머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누가 호캉스라고 했던가? 아기는 집에 두고 온 장난감이 그리웠는지, 이불의 촉감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지나가는 행인들과 도로의 자동차를 보며 콧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없어서인지, 진주의 공기가 너무 좋아서인지, 첫 여행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인지, 생애 첫가을 장마에 감동했는지, 계속 싫어하는 마스크를 씌워서인지 울고, 또 울고, 한참을 울었다.
아기는 계속 울고, 아기 할아버지의 수술은 예상 시간보다 더 길어져 초조했다. 비는 오고, 어디 갈 수도 없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아기와의 놀이는 한정적이고, 식사시간은 매번 돌아오고... 계속 신경을 쓰면서 수술 결과 소식을 기다리며 3끼를 낯선 타지 식당에서 해결하는 것은 매우 피곤하고 어려웠다.
2박 3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수술이 마치고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2일 내내 비가 왔다. '아, 아기가 계속 우는데 산책을 시켜주지 않으면 이렇게 지옥을 체험할 수 있구나'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가수는 노래 따라가고, 기자는 기사 따라간다고 하는 말이 있을까? 비를 피해 찾았던 진주의 이름을 모르는 쇼핑몰에서 내가 쓴
'엄빠가 쇼핑몰에 가는 이유가 이거였군' 기사를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어보던 순간은 아마 이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행인 점은 아기 할아버지의 수술은 잘 끝이 났다는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아직 덜 풀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손자를 가장 먼저 찾은 할아버지에게 아기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많이는 아니지만 부족한 여행의 사진과 영상을 조금이나마 남길 수 있었다.
여행을 해보니 이 시대의 엄마와 아빠들이 자유롭게 휴가를 다니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여러분들은 어떤 휴가를 보내셨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을지 새삼 기사를 작성하면서 궁금해지는 이유다.
아기와 여행하고 산책을 하며 아기가 마스크와 코로나 모자를 계속 쓰기 싫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아기에게 매번 마스크나 코로나 모자를 씌우지 못했다. 행인 분들과 오가다 만난 시민분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라는 조언을 듣곤 했는데, 여행에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다.
혹 아기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을 목격하신다면, 아기의 근처에서 마스크를 고쳐 써 주시고 개인 방역에 더 신경을 써 주시면 어떨까. 아기가 오죽 싫었으면 떼를 쓰고 울까? 아기가 거부하는데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떨까 한 번만 더 생각해 주기를, 다시 한번 정중히 부탁드리는 바다.
2박 3일, 웬만해서 아프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짐을 싸고, 끌고 다니며 아기와 아기의 할아버지를 챙겼다. 현대판 쌍방 머슴이었던 아빠는 돌아와서 제대로 몸살이 났다.
진주로 내려가던 기차에서 '다음번 기차 여행은 경주로 한번 가볼까?'라고 했던 말은 당분간 기억이 나지 않을 예정이다. 언제가 되었든, 여행에 관한 말이 나오자마자 몸살이 다시 도질 것 같다.
아기를 사랑으로 기르고 계실 모든 어머니와 아버님들께 진주에서 만났던 남강변의 시원하고 산뜻했던 공기를 닮은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몸살이 난 내게도 의미가 깊었던 아래 명언과 응원, 격려를 이 시대의 부모님들께 건네며 글을 마친다.
여행과 병에는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케우치 히토시
약상자에는 없는 치료제가 여행이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이다
-다니엘 트레이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추후 브런치와 블로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