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0월말까지 성인 80%, 고령층 90% 접종이 완료되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각 분야 종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시민기자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
아침 등교 학생들 발열 체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숨 소리가 컸는지 몇몇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많이 힘드시죠' 하며 위로한다. 그러나 내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쉰 것은 선생님들 말씀처럼 힘들어서가 아니다.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에 따른 생활지도, 학습지도의 공백으로 망가진(?) 아이들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네 일 내 일 따지는 선생님들의 날카로움, 이런 것들이 끝날 줄 모르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서다. 이런 날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수다가 약인데 그마저도 어렵다. 그저 상상으로 즐길 수밖에.
'위드 코로나' 대비 부장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들
상상 속 술자리 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다 부랴부랴 학생들 전원 등교 및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대비 부장회의를 들어갔다. 나만큼이나 무채색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피곤함과 무력감에 잔뜩 찌든 얼굴들이다.
"지침이 내려와 봐야 하겠지만 제 생각엔 교육부에서 전원 등교를 강제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2/3 등교 때처럼 전원 등교 가능하다고,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학교 자율로 결정하라고 할 거 같아요. 아마도 지침이 이번 주중에 나올 것 같은데, 그러면 10월 5일부터 전원 등교하기엔 준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이렇게 모이시라고 했어요. 그리고 정부에서 준비 중인 위드 코로나에 대해서도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교감선생님의 말씀 이후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런 침묵이 불편했는지 몇몇 부장 선생님들이 말했다.
"하루 확진자가 2000명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데 가능할까요? 더욱이 위드 코로나는 너무 이른 것 같아요."
"정부에선 10월 말부터 위드 코로나를 준비한다고 했지 바로 시행한다고 하지 않았잖아요. 시행해도 코로나 발생 상황과 예방 접종률 등을 봐가며 단계적으로 하지 않겠어요? 예방 접종률도 80% 가까이 올라가고,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은 감염돼도 중증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잖아요? 지금부터라도 전원 등교는 물론이고 코로나와 함께하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게 아니잖아요?"
부장 선생님들의 반복적인 실랑이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긴장감도 주지 못했다. 이 장면마저도 이젠 지겹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담당 부장인 학생부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생활지도와 학습지도를 위해서는 전원 등교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위해선 먼저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교육부의 지침 및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2/3 등교와 전원 등교는 단순히 등교 인원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방역 체계를 새로 짜야 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해 우리 학교가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 그런 역량이 있는지는 좀... 회의적입니다."
"그동안 우리 학교는 어떤 학교보다도 방역을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담당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당혹스럽네요. 부장님, 그럼 전원 등교, 나아가 위드 코로나를 위해 학교가 준비해야 할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교장선생님의 서운함이 잔뜩 묻은 물음에도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좀 더 정리된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회의는 위드 코로나는 시기상 문제일 뿐 시행은 정해진 것이니 그전에 학교가 준비할 수 있는 건 미리 준비하기로 하고 끝났다.
부장 회의를 마치고 나와 위드 코로나를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정리해 봤다. 정리하다 보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었다. 맞다. 복잡한 상황을 탓하기보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소중히
지금까지 학교 운영은 교장, 교감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고 나머지 구성원들의 의견은 형식적으로만 묻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선 특수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생략해 버리는 경우가 잦았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학교 결정에 대한 불신과 비협조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래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소수의 일하는 사람만의 희생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 협조는 위기 극복의 필수적 요소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존중하는 민주적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리더십은 구성원들을 더 강하게, 더 뭉치게 할 것이다.
② 세심한 예방 접종 관리
학생들은 학교를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등교할까? 아니다. 지금 학생들은 학교가 안전해서가 아니라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등교한다. 학교에선 나름대로 열심히 방역 대책을 세워 불안함을 줄이려 하고 있지만, '코로나 걸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학생들의 불안한 마음은 줄지 않고 있다. 나는 예방 접종 확대가 이 불안한 마음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9월 27일 질병관리청은 12~17세 소아청소년 예방 접종 계획을 발표했다. 10월 5일부터 보호자 동의하에 접종 예약을 받고 10월 18일부터 접종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방 백신에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백신 접종의 효과가 더 크다는 전문가들의 과학적 견해를 더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예방 접종 희망 여부를 물은 적이 있었다. 예방 접종 후 사망했다는 뉴스가 쏟아질 때라 많아야 50% 정도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반 33명 중 25명(76%)이 희망을 하고 3명은 모르겠다, 5명만이 맞지 않겠다고 해서 희망 비율이 높아 내심 놀랐다. 불안하지 않냐고 하니 안 맞는 게 더 불안해요라고 했다. 학생들 역시 예방 접종을 불안하지만 현재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맞은 학생에 대한 부작용 여부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맞지 않는 학생에 대한 비난, 따돌림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사의 철저한 정보 관리와 세심한 주의 관찰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③ 교육청·교육부의 약속 지키기와 학교 여건에 맞는 현실적 지원 필요
지난 1학기 교육청에 요청하여 추가 인력 4명을 지원받은 적이 있었다. 2학기 때도 당연히 지원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행정실에서 방역 인력을 계약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추가 인력의 인건비를 정산하려고 교육청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더니, 처음 약속과는 달리 전부 학교에서 부담하라고 해서 학교가 부담했다고 했다. 그럴 줄 알고 신청 안 하려고 하다 담당자 다짐을 받고 채용했는데 역시나였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2학기 추가 지원 인력 채용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 예산이 없다고.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일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만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또 학생수라는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학교 형편에 맞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학생 수는 물론이거니와 학교급, 건물 수, 식당 규모, 칸막이 설치 여부, 급식소 여부, 보건교사 근무 여부, 등교 인원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 학교 여건에 맞는 세심하고 현실적인 방역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부는 그동안 코로나 대응 방안에 빠짐없이 학교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지원책을 믿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원한다고 했으면 지원해야 한다. 또 그 지원은 학교 형편에 맞는 맞춤형이어야 한다.
④ 치명률 등 코로나19 정보의 투명한 공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의심이 생기고 그 의심의 틈으로 가짜 뉴스가 들어가 학생들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7, 8월에 접종한 고3 학생들에 대한 예방 접종 부작용 유형도 공개해야 한다.
또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해서는 확진자 수보다 치명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등교 확대 주장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청소년들은 코로나에 걸려도 중증이나 사망하는 비율, 즉 치명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이틀 단위로 발표하는 교육 분야 확진자 현황을 봐도 고3 학생들의 부작용 유형과 치명률은 알 수 없다. 부작용 걱정할 필요 없다고, 치명률이 낮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수치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로 인해 약간의 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⑤ 비난보다 서로 믿고 격려를
앞으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2년 가까이 지속되는 거리 두기에 따른 피로도 역시 더 커질 것이다. 또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운동으로 방역 대책에 비판은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위기 속에서 더 빛나는 민족임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정상 직전의 깔딱 고개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요즘 느끼는 지겨움과 무력감, 허탈감도 이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분명 정상이, 끝이 멀지 않았다. 내년에는 코로나 치료제도 나온다고 한다. 조금만 더 이 악물고 서로의 손을 잡고 간다면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